모처럼 아이와 영화를 보고온다.
"엄마, 저녁에 치킨 어때?"
"좋지."
시골 면에 새로 생긴 굽네치킨으로 간다. '고추바사삭'을 시킨다.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고 하더니 우리가 그짝이다.
시골에 새로 생긴 치킨집, 너도 나도 신문물 대하듯 한 번씩 가게 된다. 울아이와 엄마도 '너도 나도'에 포함되어 어느새 새로운 단골이 된다.
"영화에 치킨에! 맥주 한 캔 하면 딱인데 말이야?"
"왜? 또 맥주 마시고 배 긁으려고?"
"……."
아니. 아들아,
언제적 이야기를 아직도 하는 거냐?
하아 참.
맥주 두 캔 마시고 배를 긁은 사건이 아이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걸까?
아니다.
좋은 놀림감이다. 분명!
술 마시고 조는 거랑 술 마시고 배 긁는 걸로
엄마를 기억하겠다고 하더니.
진심인가 보다.
"사이다 마셔. 술 자꾸 마시면 습관 돼. 엄마, 요즘들어서 자꾸 마셨잖아."
"알았다. 알았어. 안그래도 습관적으로 맥주 한 캔씩 하는 것 같아서 안 할려고. 이러다 너 없다고 날마다 하게 될까 봐. 엄마도 줄일려고 하고 있어."
"아주 좋아. 엄마."
이러니깐 엄마가 술 중독이라도 된 것만 같다. 그건 아니라고 해명해본다. 어쩌다 치킨을 시키며 생맥주가 포장된다고 하기에 먹기 시작한 것이 습관처럼 먹게 된다.
좋아서 한 잔.
기분이 꿀꿀해서 한 잔.
아이가 엄마 품에서 떠난 후, 날마다 혼술 하는 그림이 그려져서 술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엄마다.
울 아이의 잔소리 덕분에 우리는 건전하게 '치사'를 한다. 콜라도 몸에 안 좋다고 사이다로 사잔다. 이것참!
"영화 본 거 어땠어?"
'가족'이라는 말보다 '식구'라는 말이 더 좋다. '가족'은 한 집에 사는 의미가 크다면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의미가 더 크다.
맛있는 것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저절로 행복이 바사삭하고 소리를 내며 찾아온다. '고추바사삭' 치킨처럼!
"내가 이야기 시작하면 길텐데 괜찮겠어? 엄마, 또 듣다가 듣기 싫다고 배 긁으려고?"
아니, 배 이야기는 좀 그만!
울 아이와 한바탕 웃는다.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사두용미'야."
"사두용미?"
"응. 초반에 실직에 대해서 나오고 그래가지고 또 한국 정서 어쩌고 하는 신파극인가 하고 실망했거든. 살인은 좀 그렇긴 하지만 끝이 좋았어."
아이는 좀 더 많은 말을 한 것 같은데 엄마가 기억을 이만큼밖에 못한다. 이해하시길!
"엄마는 어땠어?"
"엄마? 음……. 쥔 손을 놓지 못하는 자들의 변명?"
아이가 말을 많이 한다고 해놓고는 어쩌다보니 엄마가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다.
"결국은 가진 것을 놓지 못한 거잖아. 총 쏠 때 말한 거, 그게 자신에게도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카페라도 하라고 하던 말. 자신도 그럴 수 있잖아. 집도 포기 못하고, 가진 것을 놓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는 거지. 그들이 누리는 것이 일반인들이 누리는 건 아니잖아?"
"왜 하필이면 종이공장일까?"
엄마의 물음에 아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대답한다.
"영화에도 언급되듯이 환경을 해치는 뭐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엄마는 두 가지로 봤어. 하나는 네가 말한 것처럼 환경적인 것이야. 영화에서 종이공장이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는 장면이 나오잖아? 아무리 그래도 종이를 만들수록 산림은 파괴되는 것이지. 그리고 또 한가지는 '종이'가 가지는 생명력!"
"생명력? 종이가?"
"응, 엄마는 종이가 생명이 있다고 생각해. 전자책 나오고 하면서 종이책이 사라진다고 했잖아? 그런데 어때? 종이책은 지금도 살아있어. 앞으로도 살아있을 거고. 이 생명력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거지. 주인공이 하는 행동의 파괴력, 그리고 끝까지 살고자 하는 생명력. 이것을 종이공장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해"
"오, 엄마 좀 멋진데? 그런 생각을?"
"그냥 보이는 대로 느껴진 대로 말한 거야. 말 나온 김에, 넌 끝이 좋았다고 했잖아?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실직이 길어지고 직업을 구하기 위해 가족이 모두 희생하고 힘들어하는 그런 신파극일 줄 알았던 거지. 잘못된 방법이긴 한데, 말도 안 되게 자신이 이루려던 것을 이루었다는게 좋아. 경찰 등장할 때는 잡혀가는 줄 알고 또 실망할 뻔 했거든? 그러면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되잖아.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아서 좋아. 뻔하지 않는 결말! 말이 안되지만 끝이 이룬 걸로 끝나서 그래서 '사두용미'라고 생각해."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엄마는 좀 달라. 개가 돌아왔잖아? 개가 냄새를 맡고 땅을 파헤치지 않을까? 그걸 과연 막을 수 있을까? 딸아이도 벌레가 꼬인다는 말을 하고, 돼지 바베큐 이야기 할 때 엄마나 아들 반응을 봤지? 그러면 그 아이가 제대로 클 수 있을까? 트라우마가 보통이 아닐 거야. 그리고 마지막 장면 주인공 차를 두고 양 사방이 큰 컨테이너 차로 막았잖아? 그거 보면서 오히려 이 영화는 '열린결말'이라고 생각했어.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우린 이미 알고 있는 거지."
"오! 그렇네. 큰 차들이 양 사방을 다 막았지. 엄마처럼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면, 딸 아이가 마지막에 멋지게 첼로 연주를 하는 거, 그건 뭘 의미할까?"
"그게 나도 좀 그래. 다른 모든 것들은 이 가족의 행복이, 지금 놓지 못한 것들의 행복이 과연 행복일까를 말해주는 것 같거든.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 그것도 아주 암흑같은 불행일 거라고 말이야. 그런데 딸아이의 첼로 연주는 아니거든. 오히려 막힌 것이 뚫린 듯한 느낌? 가족에게 희망을 주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거든. 그래서 엄마도 좀 헷갈려. 첼로 연주는 어떤 의미일지."
"나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어. 엄마 이야기 듣다보니 끝이 좋다는 것이 진짜 좋은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런데 연주를 들려주는 건 좋았잖아? 영화 속 엄마도 되게 감격해하고. 그럼 이건 무슨 의미일까 생각이 들어서."
"'어쩔 수 없다' 변명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일까? 결국 인간은 가진 것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렵네."
"엄마랑 이야기하니깐 좋다. 대화가 돼."
"갑자기? ㅎㅎㅎ 앞으로 너랑 대화하려면 니가 권하는 이과책도 다 읽고 엄마 이과 공부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지금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나중에 여자 친구도 엄마처럼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위험한 발언이다. 여자 친구한테는 절대로 엄마 들먹이면 안돼. 여자 친구 도망간다."
"당연히 안하지. 그런 여자 친구면 좋겠다고."
어허허허.
결론이 이상해진다.
아들아,
엄마도 너와 이야기나누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맛있는 것 먹으며 너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치킨이 '바사삭' 맛있는 소리를 낸다. 행복하다고 '바사삭'!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