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은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해외에 정착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직업으로, 누군가는 공부로, 누군가는 비즈니스로 그리고 나는 결혼으로 이 곳에 남게 되었다. 정착을 고민하다 보니 선택의 무게가 결혼까지 가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삶을 계속 살아보고 싶었다. 국제결혼이라고 더 쉬운 것도 더 어려운 것도 더 특별할 것도 없다. 국적을 떠나 두 사람의 인생 타이밍이 우연히 딱 맞아서 벌어진 삶의 큰 이벤트랄까.
남편은 누나가 세 명이다. 세 살씩 차이나는 누나가 셋에 막내 아들. 누군가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라 말하기 실례스럽만 만약 같은 조건의 한국 남자였으면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그대로 돌아서서 그의 행운을 빌어줬을 것이다. 남편이 남자친구이던 시절 남자친구 부모님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 구 남친 엄마, 현 시어머니께서 '한국과 아일랜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뭐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말하고 싶지가 않아서 잠시 생각을 했다. 그러다 시어머니가 'She doesn't understand'라고 말을 했고 나는 바로 'I understood! Just need a minute to think'라고 말했으나 바로 앞에 있는 나를 'she', 제 3자로 표현한 것이 매우 불쾌했다. 만약 내가 이해를 못했으면 '이해 못했니?'라고 말을 해야 하는 게 천번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를, 어쩌면 입으로 들어갔을 첫 식사를 끝내고 돌아왔지만 그 생각이 나를 무겁게했다.
그리고 다음날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 장문의 메세지를 보냈다. 다시 한번 그녀가 나를 그렇게 취급한다면 나는 너를 만나지 않겠노라고 선전포고를 했다. 국적이 다르고 언어를 모른다고 누구도 나를 그렇게 대할 수는 없을 테니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한다. 남편네 가족은 그냥 쉼없이 말을 하는 가족이었다. 나의 몇 초간의 침묵도 말로 채워야 했던 그런 가족이었던 것이다. (시누이 셋, 남편, 시어머니는 정말 틈없이 말한다. 매번 만날 때마다 신기하다.)
이런 내용을 굳이 말하는 건 해외에서 가족없이 살려면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남편과 싸워서 잠깐 친정이라도 가고싶은데 그 친정이 대략 9,234km 떨어져 있는 삶을. 하물며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려고 해도 시차를 생각해야 한다. 내 하소연을 들어달라고 한국 새벽 2시에 전화를 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러다 막상 시차에 맞춰 전화를 걸려면 감정이 조금 사그라들어 있는 장점도 있다.) 결혼으로 정착을 조금 더 쉽게 할 수는 있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말인 즉 도망칠 곳을 잃었다는 뜻이다.
국제결혼은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삶이다. 그래서 더더욱, 남편은 온전히 내 편이 되어야 한다. 완벽해서가 아니다. 외국인 남편이 나에게는 home이고 친정이고 내 남편에 대한 하소연까지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친정은 여전히 9,234km 떨어져있다. 결혼은 나를 자유롭게 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여기서의 삶을 계속 살아보게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