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넓디 넓은데 언어의 간극으로 그 격차를 더 크게 할 수는 없다.
놀이터 벤치에서 아이들에게 벗어놓은 양말과 신발을 신겨주며 집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한 벤치에 앉아있던 분이 한참 지나고 '너 여기 산 지 얼마나 됐어?'라고 말을 건네왔다.
보통 '아이들이 예쁘네, 몇 살이야?'라던가 '날씨가 너무 좋다' 등등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며 늘여놓는 말들을 열 문장정도 건너뛰고 갑작스레 들어온 질문이라 자연히 눈이 갔다.
"11년 째야, 오래 됐지." 하고 능청스럽게 얘기하는데 내가 자연스럽게 두 언어를 쓰는 게 너무 아름답게 들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다린이냐, 칸토니즈냐라고 물어서 조금 당황했지만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하고 자랑스럽게 나 한국인이야!라고 했다.) 본인이 홍콩에서 일했는데 홍콩 사람들은 중국어와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한국인들도 그러냐고 묻길래 우리도 그렇다고 얘기했다.
아이리쉬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에 사실 영어를 쓰면 굳이 다른 언어를 배울 필요성이 없지 않느냐고 받아쳤다.
영어를 쓰면 제 2 외국어를 배울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된다.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에서 살 건 영어는 '배워야 하는 언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어처럼 다수 민족이 쓰는 언어가 아닌 환경에서 자라나면 더욱 절박하게 제 2 외국어를 배워야한다. 세상이 넓디 넓은데 언어의 간극으로 그 격차를 더 크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아무리 챗GPT가 있고, 파파고가 있다고 한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미래에 더 훌륭한 번역기가 나온다고 한들 내 머리에서 나오는 언어보다 편리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언어를 더 할 수 있다는 건 그 이상의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세상을 넓혀가는 것, 삶의 목적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