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너희 세대에 좀 더 희망을 품어야 해

영화 <해피엔드> 리뷰

by 도나

영화관 매출이 저조하다는 기사가 실감이 난 지 오래다. 금요일 저녁에 예매 순위가 꽤 높은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도 기껏해야 명당이라 불리는 열의 자리들만 꽉 차는 정도니 말이다. 이렇게 극장가 보릿고개가 이어지는 중, 올해 초 개봉한 네오 소라의 <해피엔드>는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수 10만명을 돌파해 일명 ‘해피엔드 신드롬’이라 불렸다. 나도 주말 이른 오전에 C열까지 꽉 찬 모습에 적잖이 놀란 기억이 있다. 감독이 음악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들이라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지던 차에,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는 말에 바로 예매했다. 물론 당시 개봉 첫 주 기념으로 영화 포스터를 나눠주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길래 동네 영화관에, 심지어 제일 작은 아트하우스 관에 이렇게나 사람이 많단 말인가. 기대감에 가득 찬 상태로 영화를 관람했다.


“낡은 틀에 사람을 가두는 세력이 술렁인다. 풍화된 건물이 평소보다 더 삐걱댄다. 사람들을 구분 짓는 체계가 붕괴 중인 일본에서 뭔가 크게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고요한 자막 뒤에 흘러나오는 현악기 중심의 날카롭고 끊어지는 음악은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고,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오프닝의 기대감 때문일까 내가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크고 작은 균열들이 쩍쩍 갈라져 지각 변동을 일으키지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메꿔 지지도 않은 상태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대감을 저버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드>는 되려 묘한 웃음을 지으며 극장을 나올 수 있었다.


영화 제목이 원래 <지진>이었다고 감독이 인터뷰한 만큼, 영화에서 지진은 자주 등장한다. 시시때때로 울리는 지진 경보가 그렇다. 경보는 오보일 때도 있고 실제 지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인물들은 그저 긴장 속에 상황을 지켜봐야만 할 뿐이다. (주인공 유타는 지진 경보를 이용해, 교무실에서 뺏긴 음악 장비를 훔치기도 한다) 지진은 이렇게 사전적 의미 말고도 갈등의 비유적 장치로도 작동한다. 일명 ‘자동차 테러’로 시작된 교내 감시시스템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학교 밖에선 학교 밖에선 극우 정권에 맞서는 시위 단체가 나온다. 유타와 코오를 포함한 5인방의 추억이 가득한 동아리 실은 폐쇄됐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우정 관계에서도 금이 나기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해피엔드>가 흥행한 이유를 동시대의 한국 사회 모습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교내 감시시스템은 펜데믹 시절 감시 체계를 연상시켰고, 코우와 후미가 참여한 시위는 작년 말부터 올해 봄까지 이어진 탄핵 집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불의가 반복 되잖아 어떻게 화를 안내? 우리 세대는 아무도 이런 고민을 안해. 애초에 다 포기했어.” 후미의 불평에 코우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는 너도 애초에 포기한 거 아냐? 우리 세대를 말이야.” ... 담임 선생님은 후미에게 “넌 너희 세대에 좀 더 희망을 품어야 해” 라고 일침을 가한다. 학교 안팎 사회에 무관심해 보이던 유타가 코우를 위해 희생한 것을 희망이라 볼 수 있을까? 교장에게 큰 반항은 하지 않았지만 졸업식 퍼포먼스로 친구들에게 웃음을 준 야타, 떠나는 톰을 위해 꼭 안아주는 장면, 비록 전처럼 돌아갈 순 없지만 평소와 같이 장난 치며 인사하는 유타와 코우의 마지막 모습까지 애매한 희망은 많이 보인다. 어쩌면 영화 안에서 엄청난 갈등이 벌어졌다면 정말 뻔한 영화가 됐을 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엔딩은 진짜로 ‘해피’했다.



#해피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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