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도 락이다? 연프 시청도 연애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연프’(연예 예능 프로그램)가 생겨나는 것 같다. 채널A <하트 시그널> 열풍 이후 연프가 시청률 일등공신 소재가 되자, 몇 년 사이에 비슷한 포맷이 우후죽순 튀어나왔다. 전 애인과 함께 출연하는 TVING <환승 연애>나 남매가 서로의 연애를 조언하는 JTBC <연애 남매>에 이어, 아예 연애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모솔’(모태 솔로)들을 불러 모은 넷플릭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까지 방영했다. 하다 하다 옆 나라 일본 불량배들의 연애(넷플릭스 <불량 연애>)까지 챙겨 보고 있으니 정말이지 연프의 ‘춘추전국시대’다. 나는 연프를 ‘본방 사수’하진 않지만 가끔 유튜브로 클립 정도를 챙겨보는 편인데, 최근 들어 영상마다 비슷한 댓글이 발견되는 것 같아 흥미롭다. 바로 “여주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연프에는 각 시리즈를 대표하는 ‘여주’(여자 주인공)가 있다. 몇 년 전 우연히 만난 사람을 재회한다던가, 첫사랑과의 장기 연애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남을 시작한다는 등 해당 시즌에서 중심으로 다뤄지는 커플의 여성 출연자가 ‘연프 여주’가 된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른바 “서사 깊은” 이야기에 몰입한 시청자들은 여주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방송을 보게 된다. 여주가 남성 출연자와 어긋나면 눈물을 흘리고, 새로운 ‘메기남’(연프에서 중간에 투입되어 긴장감을 불러넣는 출연자)이 여주에게 플러팅 하면 ‘도파민 대폭발’이라며 환호한다. 여주의 서사에서 “얼마나 진정성이 느껴지느냐”가 해당 연프의 흥행 여부를 결정한다. 제작진이 심사숙고 끝에 엄선한 여주의 서사가 ‘감다살’(“감각이 다 살았다”의 줄임말로 센스가 좋다는 칭찬) 연출로써 시청자들의 마음에 와닿으면 ‘역대급’ 연프라 호평받겠지만, 단지 화제성을 위해 자극적인 장면에만 비중을 두면 텅 비어버린 서사를 메꾸기 위한 시청자들의 “진짜 여주 찾기” 토론회에 불과한 ‘감다뒤’ (“감각이 다 뒤x다”의 줄임말로 기대 이하라는 뜻) 연프가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있다면 당연히 ‘빌런’(악역)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연프 초창기 빌런은 소위 정석적인 비호감 (예를 들면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캐릭터였다면, 이제 프로그램 종류만큼 빌런의 유형도 다양해졌다. 본인 감정에 지나치게 충실하여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사람, 반대로 아예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는 ‘회피형’ 인간 모두 빌런이 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연출에 따라 같은 행동이더라도 신분(주인공 또는 빌런)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연프에서 오직 한 사람에게만 직진하는 출연자는 ‘순애’라 불릴 수 있지만, 도파민 충족에 방해가 되는 ‘노잼’(no재미)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빌런으로 낙인찍힌 이상, 방영 기간 중에는 웬만한 드라마의 악역 캐릭터보다 더 비난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는 유튜브에 연프 리액션 콘텐츠가 유행한 뒤로 더 심해진 것 같다. 제작진의 의도대로 편집한 한낱 예능 프로그램에 그렇게까지 과몰입할 필요가 있냐는 몇몇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핵심을 놓친 질문이다. 연프 시청자들은 이미 그것이 짜인 각본이란 걸 이미 전제하고 있다. ENA <나는 솔로>가 ‘국민 수요 연속극’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처럼, 연프는 이제 리얼리티 연애 예능보단 드라마로서의 역할이 크다. 리얼리티보다 연출이 첨가되더라도 “찐사”(진짜 사랑)의 서사를 원한다. 출연자들을 캐릭터로서 분석하고 애정하고 비난한다.
주인공이나 빌런이 되는 것도 연프에 출연한 사람들만 얻는 호사지, 현실에서는 곧 ‘남/여미새’(남일봬요누나자/여자에 미친 새X의 줄임말)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하트시그널 우리끼리 할 사람 있냐"라는 게시글은 박제되어 아직까지 조롱 받고 있다. 최근에 방송인 강유미의 유튜브 채널 ‘좋아서 하는 채널’에 올라온 ‘남미새’ 영상이 큰 화제였다. 물론 영상에서 묘사되는 건 “남자에 미쳤다”라고 표현할 만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이고, 이성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인간 군상은 현실에서 적지 않게 발견된다. 하지만 사회에 “ㅇ미새”라는 단어가 만연해진 만큼 연애, 특히 이성애에 대해 점점 각박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단지 여성이 끊임없이 연애를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남미새’라 비난받으니 말이다. 검열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관심 있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플러팅 하는 게 100% 용납되는 상황은 오직 ‘연프’라는 가상 세계뿐이다. 이를 시청자들은 콘텐츠로 즐기고 욕망을 충족한다. 연프는 현실 연애의 대체 용도로써 가상 연애의 역할을 수행 중인 것이다.
모이라 와이글의 저서 <사랑은 노동>에서 데이트의 사회문화사를 엿볼 수 있다. 과거의 구애 체계 ‘방문calling’은 남성이 특정 연령이 된 여성의 집에 방문하여 감독관(여성의 부모 혹은 친지)과 함께 만남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산업혁명 이후 젊은 여성들이 집 밖으로 나와 돈을 벌게 되자 데이트할 만한 곳이 많아지고 자유로운 만남이 가능해졌다. 데이트가 사적 영역에서 공공장소로 이동한 것이다. 스마트폰이 발명되고 나서는 데이트 장소의 범위가 온라인까지 무한으로 넓어졌다. ‘데이팅 앱’은 레스토랑, 바, 놀이공원 등과 함께 ‘데이트 플랫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마찬가지로 현재 연프를 시청하는 행위로도 연애의 기능을 충족할 수 있다면, 연프 또한 데이트 플랫폼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방문(calling) 의례가 ‘결혼’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는 것과 달리, 현대의 데이트의 목적은 모호하다. 방문(calling) 과정을 감독한 부모와 친지에게는 구애를 통해 자식이 가정을 꾸리고 후손을 생산할 것임을 확실히 한다는 동기가 있지만, 레스토랑, 바, 놀이공원의 성공은 "커플들이 그곳에서 데이트하고 결혼까지 해 얼마나 잘 사느냐"가 아닌 "커플들이 얼마나 많이 오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들에게 연애는 사람들을 집 밖으로 끌어내 시장으로 가져올 수 있는 수익성 좋은 사업일 뿐이고, ’데이팅 앱’ 또한 사용자들이 아무도 매칭되지 않고 앱에 계속 머무는 상황을 더 바랄 것이다. 연프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마 제작진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출연자는 추후 인플루언서로의 성공을 바랄 것이다. 오직 연프로 연애를 대신하는 시청자들만 ‘찐사’를 원한다.
#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