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크리미널 러브> 리뷰
“사랑은... 자해다...” 과격한 표현 때문에 놀랄 수 있지만 팬덤 문화에서는 꽤나 유명한 밈(meme)이다. 그동안 무의식 속에 숨겨두었던 복잡한 감정들을 한 문장으로 내뱉은 것 같달까. 덕질에서 사랑은 스스로 고통받는 행위이다. 왜 그럴까? ‘최애’를 향한 광기 서린 사랑과 욕망을 다루는 이희주의 소설집 <크리미(널) 러브> 속 사례들과 함께 세 가지 의미로 정리해 보겠다.
첫째, 뇌의 이중 표현. ‘케이팝 언어 변역’ 밈에 따르면 “죽고싶다= 사는맛난다”이다. 인간의 뇌는 감정의 과부하로 해를 입는 것을 피하기 위해, 특정 감정이 격해지면 그와 상반되는 감정을 함께 내보낸다. 너무 좋아서 정신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되려 공격성을 내보이는 것이다. 레전드 화보, 혹은 새로 발매된 노래가 좋아서 미쳐버릴 것 같을 때 팬들은 전봇대를 뽑고 싶고, 지구를 부수고 싶고, 우주까지 폭파시키고 싶다. ‘덕후’들의 이중적인 감정은 부드러운(크리미) 사랑이기도 하면서 범죄적인(크리미널) 사랑이기도 하다는 뜻의 제목뿐만 아니라, 소설 구석구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최애의 아이」 속 우미가 최애인 유리의 사인이 담긴 앨범을 “괴로움과 슬픔이 벌레처럼 우글거리는 하수구 뚜껑”(93p)에 비유하고, 「사과와 링고」의 사라가 망상 속에서 사랑하는 뮤지컬 주인공을 보고 “구토처럼 사랑이 치솟았다”(297p)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둘째, 질투. 최근 팬덤 문화는 ‘빠순이’(연예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여성 팬을 비하하는 멸칭)가 최애에게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하는 추세이다. ‘유사 연애’ 감정을 느끼는 것은 가짜 사랑이며, 진정한 사랑은 최애의 ‘커리어 하이’를 위해 돈과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치 어머니의 희생처럼 포장된 이 숭고한 사랑엔 본인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모순이 있다. 최애가 성공하기 위해선 대중들에게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이다. 팬들은 정작 본인들의 욕망은 참으면서도, 불특정 다수가 최애를 ‘공공재 애인’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선배(최애)의 유일한 사랑이 되지 못함에 안심”(44p)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여자로 평가하는 눈빛과 마주치면 등골이 오싹해져”(88p), 차라리 “성적 긴장감이 제거된 융숭한 대접”(93p)을 받고 싶은 걸까. 정작 본인은 이 모순된 감정을 인지조차 못 한다. 이는 소설에서 환각과 실제 현실을 구별하기 어렵게 서술하는 방식이나, 서술어가 생략된 채 미완성 형태로 문장을 끝내다 불쑥 인용 부호 없이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는 문체에서 드러난다.
셋째, 화병. 팬덤이 겪는 부당한 대우에 관한 논의는 항상 있어왔다. 공연장 내 과도한 본인 확인 절차나, 같은 앨범을 수십 장씩 사도록 조장하는 ‘랜덤 포카’ 문화는 팬들을 ‘호구’로 보는 것이 티가 나 ‘현실 자각 타임’이 오게 한다. 사랑하니까 참는다는 말로 애써 포장할 수 있지만, 다른 어떤 시장보다 소비력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덕후들의 현실에 가슴이 쓰라린다. 「사과와 링고」 속 사라가 동생에게 쓴소리 하나 없이 돈을 빌려주는 모습은 마치 ‘수금’ 당하는 팬의 모습 같기도 하고, 「러브 이즈 마이 라이프」에서 쓰레기 같은 남편에게도 평생을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먹였다는 엄마의 모습은 팬들의 ‘공짜 노동’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소설은 팬덤의 창의성이나 활동이 전혀 인정받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에서 ‘홈마’가 찍은 영상이 천만 회를 돌파해도, 팬픽으로 입덕하는 팬들이 수없이 많아도 이들의 활동은 공식적으로 승인받지 못하고 오히려 양지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치부된다.
팬덤 문화는 이러한 구조의 악순환이다. 1세대까지 5세대까지 k-pop 아이돌스타들을 세대별로 나누어 분석한 글을 보면, 기획사 운영 방식이나 글로벌 진출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점차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실상은 여전히 고여 있는 것 같다. 마치 <크리미(널) 러브> 내 많은 단편에서 세계관이 바뀌어도 주인공들의 이름은 여전히 ‘우미’와 ‘유리’인 것처럼 말이다. 「천사와 황새」 속 우미의 꿈에서 알에서 깨어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아닌 본인이 살해한 할머니이다. 치매에 걸려 마치 다시 아기가 된 것 같이 무한히 아기이거나 노인인 상태를 반복하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공포감을 준 할머니. “그렇다면 끝장은 언제 오지? 끝장이 오지 않으면 나는 버틸 수 있나? 계속해서 쓸고 닦는 일을, 계속되는 나빠짐을, 이 모든 일을 반복할 수 있나?”(280p) 실제 본인도 빠순이라고 말하는 이희주 작가는 아마도 이 악순환을 깨트리고 싶은 게 아닐까? 우미가 아들(알)을 죽이는 모티프에서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같은 빠순이 당사자로서 이 소망이 “책 밖으로 빠져나가서 진짜가 되는 일”(41p)을 꿈꿔본다.
#크리미널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