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에화하는 정서 불안 ‘정서불안 김햄찌'

제가 귀여우면 됐지 뭘 더 바라세요ㅜ 귀여움으로 현실 극복하기!

by 도나

“진짜 X 같은 하루여따” 에어팟 맥스를 낀 햄스터가 등장한지 1초 만에 비속어를 내뱉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요즘 AI로 제작한 동물 숏폼 영상이 워낙 많다 보니 처음엔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았지만, 결국 그 작고 하찮은 귀여움에 매료되고 말았다. 현재 구독자 62만 명을 보유한 인기 유튜브 채널 <정서불안 김햄찌> 이야기다. 주인공은 가상의 햄스터로 앙증맞은 비주얼에 어울리지 않는 거친 말투가 반전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디자인 회사에 다닌다는 설정과 그와 관련된 영상 속 에피소드들은 채널 운영자가 직장 생활 중 실제로 겪은 경험을 기반으로 제작해서 그런지 굉장히 사실적이고, 많은 직장인의 서글픈 공감을 이끌어내 채널의 가장 큰 인기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김햄찌’는 채널 이름이 나타내듯 ‘정서 불안’적인 면모(소심한 목소리에 상반되는 과격한 내면, 불안하고 초초한 표정, 흔들리는 눈동자와 영혼 없는 웃음 등)를 많이 보여주는데, 감정 기복이 심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MZ 세대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현실의 청년의 모습을 귀여운 햄스터에 투영한다는 점에서 ‘김햄찌’는 ‘자기 모에화’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모에’(萌え)란 특정 대상을 동물이나 사물 등에 의인화하는 행위를 뜻하는 일본식 신조어인데, 그 투영하는 대상이 본인일 때 “스스로 ‘모에’한다"라는 의미로 ‘자기 모에화’라 부른다. 자신의 외모나 성격에 귀엽고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부과하고 이를 어필하는 일종의 컨셉 놀이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모에화’ 행동은 눈치 없는 ‘나르시시스트’로 낙인찍혀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 쉽다. 본인을 캐릭터화하여 일상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인스타툰’ (인스타그램에 연재되는 만화)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곤 한다. 만화라는 장르 특성상 작가의 캐릭터가 현실과 달리 귀엽게 묘사되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지만, 일상을 과하게(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부풀려 마치 본인이 세상의 주인공인 양 행동하는 게 불편하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김햄찌’는 등장인물 중 본인만 햄스터로 묘사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해 지적하는 댓글은 찾을 수 없다. ‘김햄찌’ 캐릭터의 핵심은 독점이 아닌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에화’는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이다. 우리 모두는 콘셉트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소셜 네트워크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미지를 자기중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지 않은가. MZ 세대 청년들이 ‘자기 이미지’로 선택한 ‘김햄찌’는 어쩌면 축소된 그들의 모습일 수 있다. ‘귀여움’은 아직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의 막중한 책임, 그로 인한 정서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이자 애환인 것이다. 하지만 ‘ㅇㅇ병’(특정 연예인의 매력적인 행동 양식을 따라 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신조어)이라는 단어가 퍼진 사회에서, 스스로 ‘모에화’하는 것은 절대 탐해선 안 되는 선악과이고, 어쩌면 인기 k-pop 아이돌스타만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다.


심리 전문가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 권하는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 비난이 만연한 원인을 이렇게 저술했다. 때때로 타인의 특정 행동은 자신의 두려움 및 수치심을 떠오르게 한다. 그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려 애쓰게 되는데, 그 노력은 남을 험담하고 다른 사람을 따돌리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방법으로 표현된다. 타인의 수치심과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두면, “나는 그런 사람과 다르다”라며 편을 가르거나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데 필요한 ‘공통의 언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김햄찌’가 그 ‘공통’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합법적으로 ‘자기 모에화’ 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정서 불안’까지 ‘모에화’해도 괜찮은 걸까. 개인적으로 이런 ‘모에화’는 환영이다. ‘패션 우울증’(‘패션처럼 우울증을 두른다’는 뜻의 정신 문제를 유행으로 소비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인터넷 용어) 이니 뭐니 개인의 정신질환까지 ‘찐’(진짜)인지 아닌지 구별해 내는 세상이니 말이다. 다만 ‘김햄찌’의 정서 불안적인 모습이 ‘웃픈’(웃기면서 슬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넘어, 그 뒤에 가려진 현실을 발견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길 바란다. 특히 주인공의 설정이 여성이라는 점이 그렇다. 의료인류학자 기타나카 준코는 저서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에서 대중 담론에서 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의 묘사가 문화적으로 동정심을 자아내게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최근까지도 여성 우울증에 대한 명확한 지배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번아웃을 겪는 직장인 남성의 경우라면 초과근무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도 과로로 인한 우울증 임을 나타내는 데 충분하지만, 여성들의 이야기에서는 단지 노동으로 인해 야기된 우울증이라는 명확한 형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회가 승인한 젊은 여성이라는 범주에는 분노나 폭력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통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차곡차곡 쌓인다. 억지웃음으로 타인을 이해해야 하고, 부정적 기억마저 제 탓으로 돌리고 마는 ‘김햄찌’의 모습은 공감의 위로만으로는 가려질 수 없는 큰 현실이다.



#정서불안김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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