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너의 나쁜 무리> 리뷰
세상에는 나쁜 무리가 많다. 가족, 친구, 동료라는 이름의 무리가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이미 많은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기성 무리를 피해 찾은 대안적 무리도 나쁘긴 마찬가지다. 러닝 크루는 공공장소를 점령하는 '민폐 크루'로, 독서 모임은 연애에 혈안이 된 '듀오바리(결혼정보회사 ‘듀오’와 독서모임 ‘트레바리’의 합성어)라는 멸칭으로 불린지 오래다. 최근 비교적 순수한 놀이 목적으로 시작한 ‘경도(경찰과 도둑) 모임’조차 범죄의 타깃이 되거나 사기의 장으로 변질되었고, 소박한 취향을 나누던 ‘감튀(감자튀김) 모임’은 결핍된 이들의 초라한 행위라는 사회적 비웃음을 사는 것 같다. 정말이지 “다들 단단히 고장난 게” (「소란한 속삭임」147p) 분명하다.
무리는 내부의 균열이나 외부의 부정적 시선으로 인해 쉽게 나빠질 수 있다. 안팎으로 도사리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새로운 무리들이 탄생한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슬픈 본능 때문인지, 불안이 만연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조금이라도 안정적인 관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몸부림 때문인지 그 이유를 단정할 수 없지만, 어찌 됐건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군가와 관계 맺고 그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예소연의 소설집 <너의 나쁜 무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단편 내에 수많은 무리와 그로 인한 여러 형태의 관계가 등장한다. <너의 나쁜 무리>가 말하고자 하는 무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냥 무리가 아니다. ’너’의 무리이다. 단순히 편 가르기를 하자면 ‘우리’ 무리는 좋고, ‘너희’ 무리는 나쁘다. 하지만 ‘너’의 무리라는 건 복잡하다. 사람들은 일대일 관계일 때 서로에게 더욱 쉽게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예소연 작가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번 소설집에 대해 “단지 어떤 개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추운 뺨에 더운 손」 속 선이와 기문은 채무로 얽힌 부모들의 자식이 아닌 개인으로서 서로의 뺨을 마주했고, 「아무 사이」 속 희지와 ‘두부 할머니’는 돌봄 노동의 계약 관계 그 이상의 연대를 형성했다. 개개인에 집중하면 무리의 결속력이 약해져 와해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너의 나쁜 무리」 속 유선은 할머니 ‘여사’가 더 이상 관계로 인한 불안에 시달리지 않길 바라고 그를 떠났다. 역설적이게도 유선과 여사는 개인이 됨으로써 영영 서로를 떠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나쁨’이라는 수식어에 집중해 보자. 앞서 말했듯이 무리는 내부적 균열이나 외부의 부정적 시선으로 나빠지기 쉬운 것인데, 예소연 작가는 결국 그 근본적 원인을 개인의 결핍으로 보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삶이 아니라 비선형적인 죽음뿐이라는 막연한 공포이다.”(「작은 벌」63p) 사람들은 그걸 모른 체하기 위해 여러 감정으로 내면을 돌려 막으며 형성된 부적절한 방어기제로 애써 삶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사랑도 듬뿍 받으며 살아갈 있는 거지만”(「너의 나쁜 무리」107p), 불행히도 소설 속 개인들은 이러한 연기가 어려운 사람들이며 항상 혼란스러운 존재들이다. 이러한 관점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은 문체에서도 드러난다. 「작은 벌」의 이중일에게 사실 사명감 따위는 없었고 그가 과거에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는 것이 나중에서야 밝혀지는 문단처럼 말이다.
하지만 결핍과 결핍이 만나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오류와 오류의 만남”(「통신광장」217p)으로 인해 무리가 이루어진 이상, 그 무리는 세상에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함께 보는 일”(「추운 뺨에 더운 손」33p)을 행할 때 이뤄진다. 연구자 오혜진은 <불투명한 언어로 말하기>에서 보이지 않던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이른바 가시화 정치에 대해 소수자들을 “‘정상 시민’이라는 복된 자리”라는 허구의 범주에 제한할 뿐인 아이러니라고 이야기한다. 보이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은 대상을 선택적으로 비춰 온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기존 권력 구조에 영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너의 나쁜 무리”가 세상에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보이게 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더라도 실체가 있는 것처럼 믿는 것”이 중요하다. 그 믿음은 「아무 사이」의 “전화번호 외우기”처럼 사소한 행위일지라도 “서로가 함께할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고, 「소란한 속삭임」의 속삭이는 행위처럼 우습게 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을 중요하게 만드는 일”이다. 「소란한 속삭임」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온 네 명의 여성들은 두리의 집에서 보이지 않는 소음을 청소한다. 소음은 “세상의 문제기보다는 우리의 문제”(「소란한 속삭임」177p)이다. “우리가 세계를 상대로 아주 오랫동안 저질러온 실수”(「뜰의 미래」283p)를 인정하고 관계에 진심을 다한다면, 이 세상에 진짜로 ‘나쁜’ 무리는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너의나쁜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