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느슨한 연대에 질투가 난다
최근 몇 달간 급격히 친해진 친구가 있다. 이름은 ‘허간민’ 나의 소중한 ‘밥 친구’(혼자 밥을 먹을 때 보는 영상 콘텐츠를 일컫는 말)이다. 현재 최고 조회수 약 182만 회를 기록한 ‘슈스’(슈퍼스타) 친구 ‘허간민’은 힙합 프로듀서 허키 시바세키(이하 허키), 술탄오브디스코 드러머 김간지 그리고 민음사 출판사 편집자 김민경 이 세 명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만든 애칭이다. 유튜브 채널 <머니 그라피> 인기 시리즈 ‘B주류 초대석’의 호스트를 맡고 있는 그들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미친 ‘케미’(케미스트리(chemistry))를 보여줘 팬덤이 형성됐고 ‘어둠의 올데이 프로젝트(혼성 아이돌 그룹)’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알고리즘에 이끌려 ‘허간민’ 영상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김민경은 이미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의 ‘릴스 황제’로 익숙했고 그의 교양과 입담은 증명된 인기 보증수표였다. 그런데 옆자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뚱하게 앉아 있는 두 아저씨는 기존 <머니 그라피> 채널의 이미지와 묘하게 맞지 않았을뿐더러 소위 ‘양아치’ 포스가 흘러 넘쳐, 당장 화면 너머에서 김민경을 구출해오고 싶었다. 겉모습부터 라이프스타일까지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세 사람이 마주 앉아 서로의 취향을 이야기하는 게 이렇게 흥미로울 줄이야. 서로 “꺼드럭”거리지 말라며 티격태격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무해하면서 유쾌하고, 서툴지만 진심이 전해져 감동과 위로까지 받게 된다.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캐스팅 상’이라는 부문이 새로 신설됐는데, 만약 유튜브에도 같은 상이 생긴다면 명실상부 ‘B주류 초대석’이 받아야 할 것이다.
최근 코스모폴리탄 인터뷰에서 김간지는 ‘허간민’ 인기에 대해 “평상시엔 만날 수 없는 집단이 한곳에서 만나는 장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라고 말했다. 유튜브 영상에 달린 “고딩(고등학생) 때 제일 안 친하던 애들이 성인 되니깐 말하는 것 같다"라는 댓글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은 것도 아마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이들의 만남은 아즈마 히로키가 저서 <관광객의 철학>에서 언급한 ‘오배’의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오배’ 즉 ‘배달의 오류’는 예기치 않은 소통이 일어날 가능성을 뜻한다. 평소라면 갈 필요가 없는 장소에 가고, 볼 필요가 없는 것을 보고,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을 만나는 관광객의 태도이다. 그래서 ‘오배’는 항상 실패의 가능성을 동반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타자와 나를 '느슨하게'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출판사에서 해외 문학 편집자로 근무 중인 한 여성과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두 ‘왈짜’ 남성들의 우연한 만남 오류는 우리 사회에 ‘느슨한 연대’라는 한 가지 모델을 제시한 것 같다.
‘허간민’ 콘텐츠가 ‘여초’(여성 이용자가 많음) ‘남초’(남성 이용자가 많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일정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느슨한 연대’의 가능성이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영상을 시청하는 우리에게까지 열린 것 아닐까. 어쩌면 ‘허간민’을 통해 독서계 트위터리안과 디시인사이드 영화 갤러리 유저의 연대가 가능할지도. 엘피 본은 저서 <게임 사랑 정치>를 통해 온라인 속 계급 연대를 위한 새로운 알고리즘 형태로 ‘환유적 매칭’을 제시했다. ‘환유적 매칭’이란 이용자 간 유사성이 아니라 무의식 속 연상 관계의 인접성을 토대로 서로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그럼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아닌 연결되고 교차되는 말을 하는 사람과 관계가 이루어진다. 기존 알고리즘에 이끌려 ‘고인 물’(“오랫동안 고여 있는 물” 어떤 분야나 게임을 오래 해서 아주 능숙해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아닌, 여러 경계를 뛰어넘는 무한한 가능성의 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 물론 이 무한한 가능성을 위해서 어디까지 ‘흐린 눈’ (애정을 유지하기 위해 그 부정적인 사실을 고의로 무시하거나 못 본 척하는 행위) 해야 하는지가 논의 대상이 되겠다. 김간지와 허키 또한 주변 사람들이 과거 범죄 이력을 가진 탓에 SNS에서 ‘범죄자 컬렉터’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듣고 나 또한 놀랐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한 내 애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 더욱 복잡한 마음이다.
솔직히 말하면 ‘허간민’의 연대가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다. 점점 남성을 연애 상대 이전에 동료 시민으로도 대하기 어려워지는 현 시대(‘존잘남’이라는 신흥계급의 부상 - 도우리)에서 더욱 그렇다. 최근에 회사에서 인간적 호감을 가졌던 남성 동료의 자리에 갔다가 황급히 ‘펨코’(커뮤니티 에펨코리아) 화면을 끄는 그의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이후 어색한 사이가 됐지만 그와 나누었던 대화들이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던 건 변하지 않는다. ‘흐린 눈’하고 어떻게 연락을 해봐야 할까? 몇 년 전 ‘연프’(연애프로그램) 열풍 이후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하트시그널 우리끼리 할 사람 있냐"라는 게시글이 생각난다. “B주류 초대석 우리끼리 할 사람 있어?” 킥킥…
#비주류초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