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고
인류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지구 생명의 역사를 하루로 환산하면 20만 년은 여름밤 반딧불이가 두어 번 깜박인 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절로 겸손해지게 만드는 문장이다. 인류의 시간이 그럴진대 나라는 인간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미미한 점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문과 남자로 살아온 작가가 과학을 공부하며 낯설고 어려운 과학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우선 한 가지만 말하자. '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전통적 인문학과 맞지 않는 형식이다. 인문학의 익숙한 질문 형식은 '나는 누구인가?'다. 인문학의 위기는 질문을 제때 수정하지 못한 데서 싹텄는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누구인지 어찌 알겠는가? 우리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데 본성을 무슨 수로 밝히겠는가? 인간이 무엇인지 탐구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 본문 중에서
생물학적으로 접근한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두지 않는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이며 진화의 연장선 위에 놓고 바라본다. 과학적 사실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질을 좁히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더 넓고 깊게 확장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인간 탐구에 꽤나 진지하다.
하지만 '인간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랐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이론이 옳다는 증거가 있는지 여부를 따져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진리인 양 큰소리를 쳤다. 내가 바보라는 생각을 하니 심사가 뒤틀렸다. 민망함, 창피함, 분함, 원망스러움을 한데 버무린 것 같은 감정이 찾아들었다.
- 본문 중에서
책의 마지막에 작가가 쓴 후기에는 자신을 '바보를 겨우 면한 자'라고 아주 겸손하게 칭하고 있다. 알아가려는 태도 자체가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우리 집에 대한 진실을 말했고 다윈은 엄마를 '생얼' 그대로 보게 했다. 집과 엄마에 대한 생각이 바뀌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달리 보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
참으로 유쾌한 해석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모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세계를 다시 바라보았다.
모든 면에서 오늘의 나는 10년 전과 다르다. 한 달 전과도 같지 않다. 어제의 나와 같은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언제나 나를 나로 여긴다. 남도 나를 변함없이 나로 대한다.
- 본문 중에서
숲 속에서 길을 잃을까 두렵지만 그 두려움 덕분에 비로소 주변을 더 천천히 깊게 바라보게 된다.
책을 읽는 일도 살아가는 일도 어쩌면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렇지만 철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나를 나로 인식하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아'는 달라졌고 더 달라질 것이다. 내 철학적 자아를 어떻게 특정할 것인가. 어느 시점의 내가 다른 시점의 나와 다르다면 어느 것이 나인가? 오직 현재 시점의 자아만 의미가 있다면 과거에 내가 한 일을 이유로 지금의 나를 비판하거나 칭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라고 말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
- 본문 중에서
이해하려는 노력, 알려고 애쓰는 시간, 그리고 모르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 모든 것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다시 강조한다.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지진으로 흔들리는 땅 위에서 해일과 폭풍우를 맞으며 서 있다. 흔들리고 부서지고 퇴락해 사라질 운명이다. 자유의지는 그런 곳에 기거한다. 있다고 말하기엔 약하고 없다고 하기엔 귀하다. 그래서 나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확언하지 못하겠다. 뇌과학을 조금 알고 나니, 나를 포함해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과생이 인문학이 아닌 낯선 과학에서, 그리고 그 과정을 책으로도 엮어냈다.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질문하며 배우는 작가가 참으로 용기 있다고 느껴진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대단히 복잡하고 독특하게 발전한 생존기계다. 유전자가 명하는 본능에 따라 사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감정을 느끼며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모든 종에게 유전자는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성장하라. 짝을 찾아라. 자식을 낳아 길러라. 그리고 죽어라. 너의 사멸은 나의 영생이다. 너의 삶에는 다른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목적을 추구한다. 살아서는 유전자의 굴레를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 굴레에 묶여 사는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호모 사피엔스를 '진화가 만든 기적'으로 본다. 내가 기적의 산물임을 뿌듯한 기분으로 받아들인다.
- 본문 중에서
과학을 공부하는 일도 사람을 이해하는 일도 모두 내 안의 숲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오늘도 바람이 한 장씩 넘겨주는 페이지마다 조용히 내 안의 이야기가 자란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국제적 분업이 이루어져 지구는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그러나 '지구인'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다. 2022년 개체 수가 80억을 넘긴 호모 사피엔스는 여전히 200여 개의 국민국가로 나뉘어 부족인간으로 산다. 인종, 종교, 언어,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와 그들을 가른다.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고 진영을 나누어 대립한다. 기후변화와 해양오염을 비롯한 지구 차원의 문제를 제 손으로 만들어 놓고서도 저마다 국민국가의 이익에 집착한 탓에 기술이 있는데도 해결하지 못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