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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Dec 16. 2020

영화 리뷰_<아메리칸 스나이퍼>

국제 인도법적 관점에서 본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리뷰

                                                                                                                                                                     


『판단은 누구의 몫인가?』                                                


 전쟁을 막는 것은 국제정치 제1의 목표다. 전쟁은 전쟁 당사국 모두에게 negative-sum game이기에 그 어느 나라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쟁은 개인을 국가라는 거대 집단의 부속물로 종속시켜 원치 않는 행위를 감내하게 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첫 씬은, 어린아이의 목숨과 아군의 안위 사이의 판단을 강요받는 크리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총을 쥔 자에게는 판단권이 있지만 판단 거부권은 없다. 매번 총을 발사하기 직전마다, 크리스는 치열한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물론 거의 모든 판단은 미군으로써의 정체성과 아군에 대한 보호를 기반으로 할 테다.


2014년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메리칸 스나이퍼>


 그렇다면 국제인도법의 시각에서 “아군에게 던질 대전차용 수류탄을 들고 달려드는 적국 민간인 아이”를 사살한 행위는 정당한가. 국제적 무력충돌 상황에서 적용되는 원칙은 3가지이며, 그중 첫째는 구별 원칙으로, 군사 목표물과 민간인/민간물자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전투원과 민간인을 엄격히 구별하여 민간인을 전투 대상에서 제외한다. 그 근거로, 헤이그 육전 규칙에 의하면 방수 지역에는 공격 개시 전 경고 의무가 있고, 무방 수 지역에는 공격을 금한다. 영화 상에서는 해당 지역이 방수 지역으로 판단되었으나 미군이 경고했는지는 확실치 않기에 나의 판단을 보류한다. 크리스의 공격의 정당성에 대한 나의 판단은 제네바 협약 제1 추가의정서에 의거한다. 위 의정서 제51조 제1~3항에 따르면, 적대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아니하는 한, 민간인은 보호되어야 한다. 크리스는 수류탄을 던질 기세로 달려드는 아이를 적대행위에 가담했다고 냉정하게 생각했기에 사살했을 것이다. 비슷하게, 영화 상에서 크리스는 죽은 적군의 총을 들고 쏘는 시늉을 하는 민간인 아이에게 “제발 내려놓아라”라고 조용히 되뇐다. 아이가 총을 사격 조준하는 적대행위를 했다면 그 아이 역시 크리스에 의해 “정당하게”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소요사태 속의 약자, 부상자와 민간인』


 전쟁이라는 무질서 속 폭력사태에도 약자는 존재한다. 부상자, 그리고 여성과 아동을 포함한 민간인이다. 제네바 제1,2 협약은 육전과 해전에 있어서의 군대의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 개선을 다룬다. 예시로, 영화 상에서 총상을 입은 미군 부상자를 철갑 차로 재빠르게 수송하는 씬이 있었다.


 또한 제4 협약은 전시에 있어서 민간인의 기본적 권리를 규명하고, 이들의 보호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위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간인 보호 규정이 악용되어 민간인 외관의 악용 문제, 민간인 전투 참가 문제 등이 법의 사각지대로 존재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은, 크리스의 협박으로 미군에게 테러 세력의 개인 정보를 털어놓았다가 테러 세력의 수장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부자(父子)의 씬이었다. 이는 크리스에게도 씻을 수 없이 잔인한 잔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미군과 테러 세력 모두 민간인 아이를 살해한다. 민간인에게 아군과 적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무기를 든 모두가 잠재적인 살인자이며 공포의 대상이다. 양자 모두 협박으로 공조를 유도하며, 민간인을 확실히 보호해줄 세력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본인은 국제적 무력 충돌 상황에서 적용되는 세 번째 원칙, 즉 군사작전 수행에 있어 민간인과 민간물자가 피해받지 않도록 부단한 보호조치를 취할 것을 규정한 “예방조치”를 매우 중요한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제네바 재협약에 대한 제1 추가 의정서 제77조는, 아동의 보호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제1항에서, “아동은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 되면 모든 형태의 저열한 폭행으로부터 보호된다”라고 규정한다. 또한 동조 4항에서는 무력충돌에 관련된 이유로 체포, 구류, 억류된 경우에는 아동을 성인의 숙소와 분리된 숙소에 수용한다고 규정했다. 전쟁 상황에서 아이들은 당연한 정신적 학대와 공포 상황에 노출되며 제대로 된 보호가 어렵다. 이들의 권리를 국제인도법으로나마 규정하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사회적 자본과 법에 대한 보편적 인지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 과연 이 법이 국내적으로 구속성이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평상시에도 아동들은 권리의 주체로 간주되기 쉽지 않은데, 전쟁의 위험에 있어서 얼마나 취약한가.



『크리스의 죄책감, 그리고 우리의 아무렇지도 않음.』


 크리스가 개인적인 행복과 가정의 평안함을 뿌리치고 타국의 전장에 나가 싸울 수 있었던 이유, 나는 그것을 애국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크리스 카일은 네이비 실의 최고의 스나이퍼이자 애국자로 미국인들에게 길이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의 애국심 뒤에는, 전쟁을 겪으면서 보고 느낀 모든 것이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다가오는 후폭풍이 존재했다. 크리스는 그 죄책감을, 장애를 입은 전직 군인들에게 봉사함으로써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판단이 되려 크리스를 죽음으로 몰았다. 폭력행위를 군사적 필요성과 애국심으로 정당화할 수밖에 없는 군인들의 숙명이다. 하지만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행해지는 모든 폭력행위가 정당하지는 않기에, 국제 인도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크리스는, 민간 지역과 방수 지역이 구분조차 되지 않는 폐허가 돼버린 이라크 전장과 잔인하리만치 평화로운 미국의 모습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그는 우리의 ‘아무렇지도 않음’에 대해서 분노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지금 행복한 우리는 느낄 수 없다. 어쩌면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타국의 불행을 일부러 회피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적 차원의 국제인도법의 이행과 준수가 필요한 것은, 언제 우리가 속한 나라가 교전국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국제적 무력충돌과 인권침해를 세계 시민으로서의 의무감으로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예방해야 한다. 전시이든 평시이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누릴 자격이 있는 존엄한 개인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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