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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Dec 16. 2020

리포트 말고 일기를 쓰고 싶어요.

휴학한 대학생이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기록.

글을 쓰고 싶어서 휴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해 온 글쓰기는 오로지 '평가'를 위한 보여주기 식 글쓰기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반 독후감 대회는 물론이거니와 어버이날, 국가 보훈의 날 등을 기념하는 작문 대회에는 언제나 참여했고 언제나 입상했다. 물론 생활기록부는 매우 풍부해졌고 친구들 앞에서 상을 받는 쾌감은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나는 그런 나의 학창 시절이 후회된다. 그런 글쓰기는, 과제물과 보고서로 평가받아야 하는 고등교육으로까지 연장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기록하는 모든 것은 평가의 '대상'이며 그러므로 완벽하게 내놓아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SNS에도 한 줄의 글을 감히 올리지 못했다. 몇 백명의 친구들이 그저 나의 무수한 날들 중 하루의 게시물을 보고 나를 재단하겠지. 하지만 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너무나 쓰고 싶었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나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이를테면 '일기' 같은 글이 쓰고 싶었다. 내 안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가지의 새로운 사유가 떠오른다. 과거에 대한 회상, 자기 성찰, 또는 나의 선호에 대한 새로운 발견까지. 사소하지만 기록해두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은 그런 생각들 말이다.


 이슬아 작가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슬아 작가가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에서 한 말이 나의 바람을 실행에 옮기게 도와주었다. "글을 쓰는 것은 하루를 두 번 사는 것"이라고.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이 바쁘고 정신없이 하루를 다 살고 나서, 시계를 돌려 다시 하루를 시작하며 삶 속의 디테일 하나하나를 즐기던 장면이 떠올랐다. 사랑의 시선으로 나를 둘러싼 인생의 모든 요소를 관찰하고, 그 관찰을 글로 옮기면서 다시금 충만한 나의 인생에 감사하는, 그런 인생이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기에, 글을 쓰려면 나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채우고 비우는 시간에 강의 시간표가 낄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휴학을 결심하고 나서 가장 먼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어플을 삭제했다. 대신, 무지에 가서 깔끔한 노트 한 권을 사서 나의 매일을 여기에 기록하겠노라 마음먹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는 글 대신, 미래의 나에게만 공개되는 일기를 택한 것이다.


 

 휴학하게 된 지 어언 3개월 반이 지났고, 노트 한 권은 금세 채워졌다. 하지만 나는 결핍감을 느꼈다. 그 결핍감은 두 가지 반성에서 온 것이었다. 첫 번째로, 나는 일기의 내용에 만족하지 못했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꼬박 써 놓은 나의 일기장은, 어쩌면 훗날 위대한 작품이 될 아이디어의 원천은 될지언정 어떤 결과물로 수렴되지는 못한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두 번째로, 나는 일기의 형식에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휴학을 하면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결과, 한 달에 책을 50만 원 이상 구매해야 될 수 있다는 교보문고 '플래티넘' 회원이 되었다. 그런데 나의 구매 목록을 보면 9:1의 비율로 논픽션 (특히 사회과학서)이 픽션보다 많다. 즉 나는 말랑한 감성으로 쓴 일기도 좋지만, 내가 읽은 논픽션 도서들의 내용을 나름대로 냉철하게 분석하여 리뷰하는 글을 더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도 정말 많이 봤다. (코로나 시국과 2주간의 자가격리를 겪으며 최대한 생산적인 집콕 생활을 했다고 자부한다) 나의 취향과 영화를 즐기는 방법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후에는, 꼭 리뷰하고 싶은 영화와 드라마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샘 멘데스 감독의 '1917', 알폰소 쿠아론 감도의 '로마'와 '칠드런 오브 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 등이다. 그저 넷플릭스나 왓챠의 '다 본 작품' 리스트에 처박아두기에는, 내게 너무나 큰 인사이트를 준 영화들이다. 그래서 영화들을 본 뒤(되도록이면 직후에) 내가 영화를 보게 된 계기, 영화 속 인상 깊었던 디테일, 삶에 적용할 인사이트 등의 감상을 기록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나의 이러한 글쓰기 욕구를 적절하게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내가 갈망하는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는, 일기처럼 혼자 간직해두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더욱 귀해지는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유랑하는 브런치 유저들이, 나의 글을 우연히 만나고, 또 그 글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거나 글에 막연한 애정을 가지게 되어 '구독' 버튼을 누르고 안착하게 되는 기적 같은 과정을 생각하면 너무나 설렌다. 나는 나의 몇 없는 소중한 독자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매일 지적 매체를 통해 얻은 지식을 꼭꼭 씹어 넣고, 내 안의 사유를 꽉 채워 글로 풀어내는 과정을 반복하겠지.


 어차피 글을 쓰기로 하고 결심한 휴학이다. 그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성대하리라.

지금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본다는 용기를 낸 것만으로도, 내 휴학 생활의 끝은 이미 성대하기로 예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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