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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린이맘 Jun 03. 2022

따스함을 먹고 자란다

아이 덕분이라는 행복


차가운 커피를 좋아했다. 커피는 차가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뜨거운 커피는 도무지  각성시켜주지 못 한다. 입 안 가득 차가움이 퍼질 때의 짜릿함. 전율이 흐른다. 짜릿한 전율은 몸을 깨운다. 호로록 목으로 커피를 넘긴 후 찾아오는 묵직한 쓴 맛은 정신을 깨운다. 몸과 정신을 모두 일깨운 후에야 비로소 일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추운 겨울에도 차가운 커피를 마실 정도로. 속은 자고로 차가워야 정신이 번쩍 든다는 나의 오랜 지론이었다.


밥도 차가운 것이 좋았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거운 밥을 호호 불어 먹을 만큼 밥 먹는 일에 정성을 쏟지 않는다. 급한 성격 탓에 입천장을 데인 적도 많았다. 식당에 가서 공깃밥이 나오면 뚜껑부터 열어뒀다가 식혀 먹을 정도로 뜨거운 국에는 차가운 밥이 제격이다. 그래야 입으로 들어갔을 때의 온도가 적당하다. 


그러면서도 따뜻한 햇살을 좋아했다. 밖으로 나가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면 따스함이 온몸으로 녹아든다. 따스함을 듬뿍 받고 돌아올 때의 가뿐함과 상쾌함을 좋아한다. 어쩌면 이 느낌이 좋아 차가운 것을 몸으로 자꾸 삼켰는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차가운 커피와 밥과 이별해야 했다. 아이와 산모에게 차가운 것이 좋지 않다는 여러 사람의 조언에 따라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다. 좋지 않다는 말에 반박하며 맞설 배짱도 없어서 순순히 차가움과 거리를 두었다. 따뜻한 커피와 밥. 달라진 온도만큼 내가 세상을 느끼는 온도도 달라졌다. 


특히 아이를 안고 있으면 세상의 온갖 따스함이 내게로 와 푹 안겨 있는 기분이다. 마치 햇살이 내 품에 가득 안겨있는 느낌이랄까. 이 따스함이 좋아 아이를 퍽 안고 있을 때가 많다. 이런 따스함을 내가 누릴 자격이 있나 싶을 만큼 기분이 좋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를 안으면 따뜻하다기보다 따스하다는 느낌이 든다. 따뜻함이 적당한 온도 그 자체의 문제라면 따스함은 나에게로 스며드는 촉각의 문제랄까. 아무튼 나에게는 좀 더 따스함이라는 말에 더 가깝다.


요즘 나의 일상은 크게 보면 단조롭다. 아이의 일상이 먹고, 놀고, 자는 것이니 나의 일상은 먹여주고, 놀아주고, 재워주는 것이 전부이다. 이 틀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단순하기까지 한 일상이 때로 버거운 것은 아이에게 맞춰진 일상 때문이다. 삶에서 나를 잠시 비껴두고 누군가의 삶에 들어간다는 것. 누군가의 삶에 내가 있다는 것. 이렇게 한 발 물러서 나의 삶을 바라보니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한다. 아이가 오늘은 몇 번 울었고, 얼마나 보챘고, 기저귀는 몇 번 갈았고, 이유식은 얼마나 먹었고, 낮잠은 몇 시간 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를 보고 씩 웃어줄 때의 표정, 엄마~ 음마~라고 부르는 소리, 다가와 쏙 안길 때의 느낌, 코를 살짝 찌르는 꼬릿한 냄새, 나를 바라보는 똘망똘망한 눈. 아이의 따스함이 내 몸에 녹아드는 순간만 남는다. 


아이에게 맞춰 나의 삶을 꾸려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엄마이기 이전에 일개 미약한 사람인지라 적당한 마음의 온도를 유지하며 사는 일이 버겁기도 하다. 아이의 따스함을 마음에 품고 있다가도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벌겋게 달아오른 화를 들킬까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며 달래기도 한다. 때로는 아이를 안고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하루에 이렇게나 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아이 때문에 힘들었다가도 아이 때문에 행복한 하루. 차가움과 따스함 그 어느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오늘도 나의 하루는 아이 덕분이라는 행복으로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수많은 느낌표와 물음표 사이에서 행복의 마침표를 위해 적당한 온도로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아마 마음의 평정심을 찾는 일은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풀어나가야 할 평생의 숙제일 테다. 아이의 눈 속에 아이를 바라보는 내가 있다. 나의 눈 속에 나를 바라보는 아이가 있다. 서로의 따스함이 오고 가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어쩌면 아이의 삶에 내가 가장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일지 모르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누군가의 삶에 배경이 되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오늘도 엄마는 아이의 따스함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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