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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Sep 20. 2023

남포동과 사랑에 빠졌다는 미국 친구 T

(내 아이를 낳아 살고 싶은 곳)

한 번쯤 여행지에서.. 이런 곳이라면 살아보고 싶다 느낀 적 있으신가요? 우연히 만난 미국 친구 T가 들려준 남포동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사과. 오렌지. 토마토 주스 있습니다. 뭐 드시겠어요?"

"사과 주스요!"


쟁반 가득 주스가 담긴 컵들을 들고 온 승무원에게 나란히 앉은 세 사람 모두 사과 주스를 외쳤다. 제일 안쪽 창가에 앉은 내가 마지막 순서라, 들고 온 게 다 떨어졌다며 다른 주스는 어떠냐 묻는 승무원 얘기에 옆자리 객이 자긴 괜찮다며 방금 받아 든 사과 주스를 내게 양보해 줬다.


T :  "전 정말 괜찮아요. 이걸 먹어요. "

 : "고마워요 ~"

그렇게 옆자리에 앉은 T와 인사를 나눴다.


지난 6월의 어느 날..

아버지가 계단에서 넘어지셨는데 손목이 부러져 급하게 수술받으셔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둘러 비행기표를 끊어 한국에 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빈 좌석이 많이 없어서 가족들과 떨어져 창가 자리에 혼자 앉게 됐는데 가운데 좌석에 앉아있던 T는 자기도 급하게 비행기표를 끊느라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여자 친구와 자리를 바꿔달라는 건가 싶었는데 내게 궁금한 게 있다고 했다.


T;  "한국인? 여행 가는 길인가요? "

나 :  "네. 여행은 아니고 고향 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이에요. "

T:  "아~ 당신은 한국인이면서 다른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군요. 궁금한 걸 물어봐도 될까요?"


미국인이라는 T는 자기소개부터 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살아보기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고,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정착해서 살고 싶은 나라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지난 3개월간 부산에서 살았고 다음 목적지는 여자 친구의 할머니 집에 가서 그녀의 가족들을 오랜만에 만날 거라고 했다.


T : "이번에 살아본 남포동과 사랑에 빠졌어요."

나 : "오~~ 남포동?!"

외국인이 발음하는 남포동이 왜 그리 귀엽게 들리던지 재밌어서 웃으면서 들었다.

남포동의 어떤 모습이 그를 사로잡았는지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러다 보니 그와의 대화가 길어졌다.


그는 말로만 듣던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계인 여자친구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고 본인은 컨설팅 일을 하는데 둘 다 컴퓨터로 일할 수 있는 업이라 인터넷 되는 곳이면 세상 어디든 떠날 수 있다고..


경험해 보니 사람 간의 따뜻한 소통이 있는 아시아가 정서적으로 더 좋아서 아시아에 있는 나라들 중 아이를 낳고 살 나라를 찾고 다고 했다. 아이의 고향이 될 그 나라에서 그 나라 언어를 아이와 같이 배우고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아시아의 몇 나라에서 살아봤고 앞으로도 대만과 일본등 더 많은 지역에서 살아보기를 도전할 거라고.. 그런데 지금 마음으론 우선적으로 한국의 다른 지역을 더 경험하고 싶다고 했다. 무엇보다 남포동이 너무 좋았다며..



싱가포르에 살고 있다는 내게.. 그 역시 싱가포르에서도 살아봤다며 왜 싱가포르를 선택한 건지.. 아이들을 카우기에 어떤지 무척 궁금해했다. 한국과 비교해서 어떤 부분이 좋고 어떤 부분이 다르냐고..

어떤 게 궁금할까 했는데 대화하다 보니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낳고 정착해 살 나라 찾기에 진심인 듯했다.

 

우리 경우는 회사에서 발령받아 떠나왔기에 선택이 아니었고 외국인으로 다른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게 잠시 잠깐의 여행과는 많이 달라서 힘든 점이 많다고 했더니.. T도 경험으로 잘 안다고 했다. 좋은 점도 많지만..


나 : "무엇보다 싱가포르의 비싼 물가 알죠? 집 렌트비는 최근 말도 안 되게 계속 오르고 있고 외국인이 로컬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으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기회를 줘요. 학비도 비싸고 게다가 어렵게 들어가도 교육 과정이 너무 어려워서 계속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하죠. 영어 외에 모국어도 선택해야 하는데 그것도 우리에겐 외국어니  배로 어렵네요."


말하다 보니 너무 단점만 얘기했나 싶었다.

T는 자기도 그런 제로 싱가포르가 힘들었다고 했다. 물가가 너무 비쌌다고..


T는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경험하면서 아이들이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연 것과 같으니 당장은 어려워도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경험을 자신의 아이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이쯤 되자 너무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나 : "그런데.. 남포동의 어떤 점이 좋았어요?"

남포동 이야기에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신나게 자기 경험담을 들려줬다.


T :  " 사실.. 부산에서 다른 동네도 가 봤는데 지나가면 사람들이 많이 쳐다봤어요. 자꾸 쳐다보는 게 그리 편하진 않았죠. 그런데 우리가 살았던 남포동은 조금 달랐어요.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 매일 나와 앉아있는 할머니들이 있었어요. 매일 지나다녀도 낯선 시선으로 쳐다보는 게 아니라 편했는데.. "


"하루는 매일 모자를 쓰고 다니다가 모자를 벗고 머릴 풀고 나갔더니 그 할머니들이 막 웃으며 아는 척을 해 줬어요.

(T는 길고  웨이브진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한국어를 모르지만 그 상황상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 수 있었죠. 매일 모자 쓰고 있어서 머리가 이렇게 긴 줄 몰랐다고.. 그래서 놀랐다며 웃는 할머니들을 보는데.. 그게 싫지 않고 지날 때마다 관심을 가져줬구나 싶어 반가웠어요. 사실 미국은 남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거든요.."


"그 뒤로 나와 여자친구가 지나가면 할머니들이 한국어로 말을 걸어줬어요. 정확히 못 알아듣는데 신기하게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손을 들어 먹는 행동을 하며 밥 먹었는지 묻고.. 우산 들어 보이고 하늘을 가리키며 비 올 거 같으니 우산 챙기하고..

그녀들의 관심이 너무 우리 할머니 같아서 반갑고 고마웠어요.. "


남포동 느 골목의  할머니들이 한국인의 다정한 정을 나눠주셨나 보다.. 외국인이 이리 좋았다 얘기하니 그분들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낯선 남의 나라에서.. 따뜻하고 다정한 관심이 얼마나 고마웠을지는 타향살이 중인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라 T가 왜 이리 남포동 사랑을 외치는지 알 거 같았다.


T는 나중에 살고 싶은 나라를 고르게 되면 자기 아이와 함께 꼭 그 나라 말을 배워서 그 나라 학교에서 공부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래야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경험하는 거라고.. 그래서 더 신중하게 나라를 찾고 있다고 했다.


아직 20대인 그가 살 나라 찾기에 꽤나 진심이구나 싶던 순간, 그는 이런 질문도 해왔다.

T: " 남포동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예요. 집 앞 식당에서 먹은 음식들이 다 너무 맛있었는데 랍게도 한 끼에 요리 종류가 정말 많았어요. 진짜 한국인들은 집에서 그런 요리를 다 해 먹나요? 여자친구가 그걸 제일 궁금해해요. 만약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다 요리사여야 말이 돼요. "

이번 남포동 살이가 꽤나 만족스러웠나 보다.


그런 T가 한국이 정말 마음에 드는 이유를 또 하나 들려줬다.

T :  "나라를 선택할 때 제일 중요한 부분은 바로 <안전!>이에요. 내 아이들이 자랄 곳이잖아요. 한국이 폭력적이지 않은 나라라 그 점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총기 사고 같은 끔찍한 일이 없잖아요."


T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외국인들도 이렇게 좋아해 주고 살고 싶은 곳이라 말해주니 괜스레 어깨가 들썩였다. T가 만난 남포동의 어느 골목길에서 그 머리 긴 외국 청년 요새 안 보인다며 담소 나누고 계실 할머니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정 많고 다정한 분들 덕분에 낯선 외국인이 남포동 사랑을 외치고 있으니..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여자친구 손을 꼭 잡고 내리면서.. 곧 한국의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며 인사를 건네던 T..

다음번 한국에서의 경험들이 지금처럼 따뜻하길 바라보며..





(이미지 출처 :  막내가 만들어 줬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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