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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May 13. 2024

싱가포르에서 중고거래하다 뒷목 잡은 사연..

이사.. 피할 수 있다면 정말 피하고 싶었던 이사를 하게 됐다.

집 없는 서러움은 남의 나라살이에도 다르지 않다. 이사해야 할 시기면 번번이 그 서러움은 더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너무 많이 올라버린 집값도 문제지만, 그저 집 한번 옮기는 것도 남의 나라에서 살다 보니 그 과정의 복잡함은 더 버겁고 힘들기만 하다. 


월세를 200만 원 넘게 올려달라는 집주인 덕분에 오랜만에 이사하려니 묵혀둔 세월만큼 정리해야 할 짐도 많았다. 무더위에 짐을 싸고 정리하려니 손은 더디고 몸은 물에 젖은 솜뭉치마냥 무겁기만 했다. 헬퍼 있는 집이  너무 부러운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보물찾기 하듯이 추억거리 하나씩 발견하면 하던 일을 놓고 사진부터 찍어서..

"이거 봐라~~ 이거 기억나?"

하면서 온 가족에 공유하고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쓸만한 건 깨끗하게 씻고 닦아서 필요한 분들께 나눠드렸다. 추억 담긴 물건들을 나누면서 아이들은 아쉬워했지만 받는 분들이 좋아해 주니 그것도 즐거움이었다.


참고로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나누고 싶다면 싱가포르 내 일부 쇼핑몰에는 나눔을 위한 수거함이 마련되어 있다. 나눔 하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이 통에 넣어두면 된다.

(Photo by 서소시 ; 나눔 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 수거함)




나누던 중 몇 가지 물건은 중고 거래로 판매해 보기로 했다. 싱가포르에도 중고 거래를 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 카로셀 (Carousell)이란 사이트인데 화번호를 넣고 회원가입을 하면 계정을 만들 수 있고, 거래를 위해 사진으로 물품을 올려놓으면 원하는 사람과 문자로 거래할 수 있다. 이때 안전을 위해 서로의 전회번호는 알 수 없고 문자로만 대화할 수 있다. 거래 장소와 시간을 정한 뒤 만나서 물건을 교환하면 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가격을 책정해서 몇 가지 물품을 올렸다. 그중 이 사연의 주인공은..

1) 해먹

(Photo by 서소시; 고이 접어 보관하던 해먹)

코로나 팬데믹이 한참 심하던 시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아이들을 위해 구입했던 해먹은 뜨거운 싱가포르 태양을 간과한 탓에 몇 번 써보지도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해먹에 누워 편히 쉬는 그림을 상상했지만 실상은 너무 더워서 잠시도 누워있기 어려웠다. 거의 새 상품이고 이사 갈 집에 둘 곳이 없어 증고 거래 결정.


2) 영어책

(Photo by 서소시 ; 아껴 읽던 영어책)

아이들이 재밌게 읽었던 해O포터 시리즈도 팔고 싶다고 해서 올려뒀다. 싱가포르에 와서 처음 산 영어책들이라 아이들이 아껴 읽던 책이었다. 스스로 받고 싶은 가격을 책정해 저렴한 가격에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가 왔다. 아들이 재밌게 읽을 거 같다며 책 가격을 더 깎아줄 수 있냐고.. 해먹도 같이 사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아껴 읽은 책이고 스스로 정한 착한 가격이라 깎아주기 어렵지만, 해먹 가격을 깎아주기로 하고 즐겁게 대화가 끝났다.


그렇게 거래하기로 했는데 며칠이 지나자 해먹이 분리되지 않을 거 같으니 사지 않겠다는 문자가 왔다. 아무래도 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나 보다. 남편은 해먹이 손쉽게 분리된다고 설명하며 보여줬는데도 망설이는 것 같자, 위치가 가까우면 가져가 주겠다고 했단다. 아이가 책을 읽고 싶어 하고 해먹을 좋아할 거 같다고 한 문자가 마음에 닿았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했듯이 그 아이도 좋아할 거라고..

좋은 마음으로 호의를 베풀고 싶었나 보다. 정말 거저주는 가격에 팔면서 배달까지 해주다니..


점심시간에 가겠다고 시간 약속을 하고, 짐을 싸다 말고 엉망인 채로 나섰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제법 둘러가야 했지만 책과 해먹을 가져다 주기로 했다. 많이 무겁진 않지만 분리해도 부피 큰 해먹은 바퀴 달린 수레에 싣고 어렵게 운반해 차에 실었다.


이삿짐을 싸느라 늦어진 점심에 아이들은 많이 배고파했다.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나누고 가자 달래며 낯선 콘도를 찾아갔다. 가보니 싱가포르 중심가의 고급 콘도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초행길이라 어느 콘도인지 조금 헤매고 있던 와중에 도착한 문자..

맙. 소. 사!!!

읽으면서도 기가 막혀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문자였다.


점심을 먹으러 집을 나와서 집에 아무도 없으니, 7층 집 앞에 놓고 사진을 찍어 보내면 돈을 송금해 주겠다. 


" 아니 뭐 이런 경우가.. "

조금 전 출발할 때 도착시간을 약속하고 나선 건데.. 무슨 이런 경우 없는 소리를 하는지.. 

콘도를 찾느라 헤매다 보니 더 화가 났다. 겨우 콘도 앞에 도착해서 우린 배달원이 아니라고 답했다. 좋은 호의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무거운 물건을 콘도 앞에 가져다 주기까지 는데 들고 올라가기 싫어서 그 사이에 밥 먹으러 나갔다니..


싣고 온 수레를 놓고 와서 집 앞까지 올려다 줄 수도 없었다. 너무 화가 나서 지금 당장 오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문자 했다.

그러자 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집에 아무도 없다더니..

자기네 헬퍼(메이드)가 곧 내려간다는 거였다. 아무도 없다는 건 거짓말이었던 거다. 순수한 호의를 이용했구나 싶으니 너무 괘씸했다. 차라리 무거울 거 같으니 옮기는 걸 도와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면 이렇게 마음 상하지도 않았을 텐데..


잠시 뒤 입구로 내려와 두리번거리던 헬퍼.. 남의 집 헬퍼가 불쌍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싣고 갈 수레라도 들고 올 줄 알았는데 빈손이었다.

물건을 내려놓으면서도 이런 사람에게 팔지 말고 다시 가져갈까 싶을 정도로 속이 상했다. 정말 착한 가격에 기분 좋게 거래하고 싶어 많이 배려한 건데..


을 가지고 내려올 줄 알았는데 빈손으로 내려온 헬퍼는 상황을 잘 모르는 듯 어리둥절해 보였다. 도착시간을 정할 때부터 집 앞까지 올려주고 가게 할 생각이었나 보다. 거래자의 전화번호를 모르니 돈을 보내줄 때까지 또 한동안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마음 상하는 거래는 처음이라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무리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기분 좋게 베풀고 싶었던 우리의 호의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뒷목 잡 중고 거래..

푹푹 찌는 더운 날씨가 유난히 더 뜨겁게 느껴지는 건 느낌인 건지..







(사진 출처 ; Photo by Dina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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