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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May 25. 2024

아들이 삭발을 했다!

(희망은 당신이 주는 것입니다!)

"엄마, 학교에서 열리는 이벤트에 저도 참가 신청을 했어요. 꼭 참가해 보고 싶었거든요."


"어떤 이벤트길래 바로 참가 신청을 했어?"


"그게.. 음.. 이런 거예요."  하며 아이가 보여준 건.. 머리를 삭발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막내 학교에서 참가하는 이벤트는 싱가포르 아동암재단(CCF)의 대표적인 모금 캠페인인 Hair for Hope(HfH)이었다.


"어머나.. 이 행사에 참가 신청했어?"

삭발한 모습은 군대 갈 때나 보게 될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첫째의 반엄마들 단체 채팅방에 올라왔던 사진이 하나 생각났다. 한 친구네 가족 모두가 이 행사에 참여하는데 좋은 일에 함께 기부로 동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빠, 엄마, 사춘기 아들과 딸이 다 함께 삭발을 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삭발까지 감수하는 마음이 용감하고 멋져 보여서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소액이지만 기부로 응원했었다.


그 행사에 막내가 지원했구나 싶으니 기특한 마음도 들었지만 살짝 당황스러웠다.

"곧 방학하면 한국 가야 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오랜만에 만나는데 당황하실 텐데.."


"저는 너무 참가하고 싶어요."

사실 막내는 작년에 이미 학년 대표 선생님께 일로 문의한 적이 있었다. 소아암 환자를 위해 머리를 길러 가발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싶은데 머리카락을 잘 묶고 다닐 계획을 밝히며 허락을 구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의 답변은 학교 방침상 허락하기 어려워 안타깝다 하시면서 다른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길 권하셨다. 그러니 이 행사를 만난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알만했다.


궁금해서 어떤 행사인지 찾아보니..

암에 걸린 아이들에게 대머리가 되어도 괜찮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고, 어려운 일 앞에 혼자가 아님을 알려 암의 영향을 받는 어린이와 가족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한 행사란다.


HfH의 올해의 주제는 " Hope is Yours to Give : 희망은 당신이 주는 것입니다."


행사에 지원하니 암에 걸린 아이들에게 대머리가 되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BALD 진술서를 작성했단다. 얼마 정도의 기부금을 모을지도 정했다고..


삭발하는  맘이 쓰였는데.. 아이는 기부금을 어떻게 모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취지대로라면 주변에 알려서 기부에 동참해 달라고 해야 하는데 내성적인 막내에겐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주변 지인분들께 알려 함께 동참해 주세요 하고 싶었지만.. 부끄럼 많은 막내는 방학 동안 집안일 돕고 용돈을 모아 보겠단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드디어 행사 날이 되었다. 하교 후 진행되는 행사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끝난 후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면서 삭발한 아이의 모습은 처음이라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 웃으며 다가온 아이는 너무도 낯선 모습이었다. 아침에 입고 간 교복이 아니라 나눠준 행사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더 못 알아봤다.


(Photo by 서소시 ; Hair for Hope 2024 기념 티셔츠)


까까머리에 구슬땀을 흘리며 웃고 있는 아이를 보니.. 괜히 찡했다.

언제 이만큼 커서 자기 의지대로 누군가를 위해 마음 나누는 일에 적극적이라니..

 

"친구가 머리 자르는 걸 보다가 갑자기 줄 서서 자기도 자르겠다는 학생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오래 기다렸어요"

이번 행사에 선생님들 포함해서 지원한 수가 140명이 넘는다고 했다. 머리를 잘라주는 분들도 재능 봉사로 참여해 주는 분들이라고..


삭발한 모습이 낯설어 자꾸만 보고 또 보고 했다.  아이와 함께 걸으니 지나가는 이들이 모두 한 번씩 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짧아진 머리를 만지며 기분이 좋다는 아이..


이 행사의 뜻이 바로 이런 거지 싶다. 삭발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는 누군가를 본다면 군인이거나 어디 아픈가 하고 돌아보게 되는데..

당당하게 삭발인 채로 다니는 사람들이 주변에 또 있다면 나만 다른 게 아니구나 싶을 거고 의아하게 보는 주변의 시선들로부터 조금은 씩씩해지지 않을까..




경험으로 우리는 안다.

살아보니.. 우리네 삶은 한 치 앞을 모르는 보이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어디로 갈지 모르는 그 길 위에서 방향을 찾고 나만의 속도에 맞춰 나아가야 한다는 걸..


알 수 없는 그 길 위에서 오늘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네게 선물처럼 주어진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오늘을 즐기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후회가 남지 않을 쪽으로 선택하면 어떨까..

네가 옳다고 믿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함께  나란히 서서 응원해 줄게.. (같이 삭발까진 못해주지만..)


이쁜 모자 하나 사러 가야겠다.






(Photo by 서소시 : 삭발한 막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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