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연락온 어릴 적 친구가 그러더군요.
"너 이민 간 거 같아.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으니.. 한 10년쯤 되지 않았어?"
매번 놀라지만 시간 참 빨라요.
아직도 가끔은 꿈같은 싱가포르에서의 생활이 어느새 10년을 넘어가고 있어요. 여기 올 거라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는데 남편 발령으로 갑자기 오게 됐고, 삶에 파묻혀 정신없이 적응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10년이란 시간이 훅 지나가 버렸네요.
언젠가 이 나라를 떠나게 되면 소소하지만 많은 것들이 그리울 거 같아요.
"이게 없다고?"
싱가포르에 없어서 놀랐던 몇 가지를 재미로 소개해 볼까 합니다.
1. 껌은 안 돼요!
싱가포르에는 "껌"이 없답니다.
'껌이 없다고?'
흔한 껌이 왜 없어 싶겠지만 없는 정도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큰 벌금을 내야 한답니다.
싱가포르에 처음 왔을 때 '벌금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법이 엄격하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지라 어떤 경우에 벌금이 있나 찾아봤었어요. 그때 본 질문들 중에 이런 황당한 질문도 있더군요.
"싱가포르에서 껌을 씹으면 태형을 맞나요?"
'흔하디 흔한 껌을 씹는데 태형이라니.. 껌이 왜? 엉덩이를 때린다는 그 무서운 태형을?'
질문만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해요. 정말이냐고요? 당연히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선 보기 힘든, '껌' 금지와 '태형'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로 묶어 표현한 질문이었나 봐요. 껌 씹는다고 태형을 맞진 않습니다!
공식적으로 싱가포르에는 <껌 금지법>이 있어요. 그래서 마트나 편의점에서 껌을 구매할 수 없답니다.
싱가포르의 <껌 금지법>은 영화관, 공원 등 공공장소와 엘리베이터, 계단, 복도 등 주택 단지의 공용 공간( 싱가포르 인의 70% 이상이 HDB라는 공용주거 공간에 살아요.)에서 껌 쓰레기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와 쓰레기 청소에 드는 높은 비용을 근절하기 위해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못 먹는다고 하면 더 먹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잖아요. 풍선껌으로 커다란 풍선을 만들었다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은 싱가포르에서 껌을 못 먹으니 많이 그리워했어요. 오랜만에 한국 갈 때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껌부터 사러 달려가곤 했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면 한 두어 개 정도는 들고 오고 싶어 했어요.
"그거 들고 가다 걸리면 큰일이란다. "
매번 그렇게 아이들을 달래야 했었죠. 하나라도 들고 오다 걸리면 큰 벌금을 내야 하는 건가 싶었거든요.
" 우리 반 친구가 껌을 들고 와서 나눠줬어요."
누가 이렇게나 용김한가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좀 더 정확하게는..
"껌의 판매나 수입이 금지! "입니다.
싱가포르에서 껌을 판매하려는 경우 불법입니다. 의료용인 경우를 제외하고 껌을 수입하고 판매하는 것은 위법입니다.
위반할 경우 벌금은 첫 번째 위반 시에는 SD $500 ~ SD $1000 ( 약 50 ~ 100만 원), 반복 위반 시에는 SD $2000 ( 약 200 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고 해요.
개인 소비를 위한 껌이라도 다량의 껌을 들여오면 안 되겠죠?
2. 우린 상속세 없어요!
한 번은 일본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싱가포르인 C와 대화하다 깜짝 놀란 일이 있었어요.
그녀가 정말 궁금하다며 한국에서는 부모님 사망 시 자녀가 내야 하는 상속세가 어느 정도냐고 묻더군요. 아직 경험하지 않은 일이라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 근무하고 있는 일본 은행 고객 중 최근 재벌급의 한 고객이 사망했는데 자녀가 세 명이에요. 자녀들이 물려받은 유산이 어느 정도일까요? 일본은 상속세를 많이 내야 해서 세 명이 각각 물려받게 된 유산이 얼마 안 되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린 안 그래요!" 였어요.
뭐가 아니란 건가 의아해하는 나를 보며 빙그레 웃던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
"우린 상속세 없이 전부 자녀에게 물려줘요!"
듣고도 믿기지 않아 그게 정말이냐며 여러 번 되물었답니다.
그래서 찾아봤어요.
"싱가포르에서는 사망 시 상속세를 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 사망하였는지 날짜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상속세가 사망일과 무슨 상관이냐고요?
상속세는 사망한 사람의 총 자산 시장 가치에 부과되는 세금이지요.
싱가포르에서는 2008년 2월 15일 또는 그 이후에 사망하면 상속에 대한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속세는 2008년 2월 15일 이전에 사망한 사람 에게만 적용된다고 해요.
그렇다면 싱가포르에서 상속세는 왜 폐지되었을까요?
찾아보니 상속세는 원래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새로운 세대로 부를 재분배하는 방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를 통해 부가 가족 내에서 물릴 때마다 특정 가구에 부의 집중이 줄어들어 사회적 형평성이 증가할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기업적 수단 등 다른 방식으로 부가 창출되면 초기 자본이 거의 없더라도 상속세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한, 이 세금이 폐지되면 싱가포르에 투자하고 부를 축적하려는 고액 자산가들을 유치할 수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경제와 사회에 이익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작은 도시 국가임에도 전 세계 기업들이 찾아오는 나라 싱가포르이기에 가능했던 정책일까요..
3. 지진과 태풍.
매해 동남아시아 지역에 불어온 태풍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자주 들려와요.
가까운 나라에서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피해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어요.
얼마 전 미얀마에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가족들의 소식을 몰라 걱정하는 미얀마인 헬퍼(메이드)를 위해 비행기표를 끊어주고 위로금을 전달한 가족의 사연이 뉴스로 알려지기도 했답니다.
싱가포르는 세계 지도에서 찾기 힘들 정도로 작은 도시국가지만 이웃 나라에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특징으로 인해 태풍이나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랍니다.
그런 싱가포르도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해 스콜은 더 자주, 더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스콜현상은 일반적으로 짧고 강렬한 폭우를 의미하는데, 이 비는 열대 지역에서 자주 발생해요. 이 현상은 대기 중의 수증기가 급격히 응결되어 발생하며, 보통 단시간에 강한 비를 내린 후 빠르게 사라지는 특성이 있어요.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갑자기 폭우가 내리고 금방 그치는 게 싱가포르의 매력일 정도예요.
그런데 최근 들어 스콜현상은 더 자주 나타나고 강한 바람을 동반하며 한국의 장마철처럼 종일 강한 비를 쏟아내기도 해요.
우산은 필수로 챙겨 다녀야 합니다. 쨍쨍한 햇빛에 속아 빈 손으로 나섰다가 갑작스러운 폭우에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답니다. 특히 11월부터 시작되는 우기에는 더 잦고 강력한 비가 내립니다. 그래서 갑자기 나무가 쓰러지는 사고도 종종 일어난답니다.
이 무더운 나라에서 한국의 보일러가 그립다면 믿으실까요? 그러고 보니 난방시설도 없네요. 잦은 비로 자다 추워서 깨기도 하고 습한 집안에 보일러 돌려서 보송보송하게 만들고 싶을 때가 많아요.
여기 너무 추워졌다고 불평하는 제게 싱가포르 친구들은 시원해져서 밤에 아주 잘 잔다며 즐거워하더군요. 추운 겨울이 있는 한국 사람이 왜 그러냐고요. 숨 막히게 무더운 싱가포르의 쨍함에 적응했나 봅니다.
아름다운 한국의 봄이 자꾸만 그립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행복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