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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이름..

by 서소시

벌써 몇 번이나 울리는 알람 소리에 겨우 실눈을 뜨고 한 손으로 머리맡에 둔 핸드폰부터 더듬어 찾았다. 알람 울리는 시간이야 당연히 알지만, 밤새 침대와 하나가 되어 무거워진 몸은 정말 일어날 시간인지 눈으로 확인해야 겨우 일으킬 수 있기에..


그렇게 시간을 확인하다 보니 새벽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누가 이 새벽부터.. 엄마였다!

< 우리 딸 좋은 하루, 생일 축하해 즐거운 하루 보내라 사랑합니다 >

멀리 사는 딸 생일 챙겨주시려고 새벽 일찍부터 여러 가지 모양의 하트 이모티콘을 총 동원해서 축하해 주셨다. 문자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엄마가 있어서.. 늘 한결같이 사랑해 주고 응원해 주는 엄마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가였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뜨거운 감정이 온 마음을 채우는 기분.. 눈물이 핑 돌았다.


보시면 좋아하실 거 같아서 영어교실 친구들이 생일 축하한다며 밥도 사주고 케이크도 사준 날 함께 찍은 사진을 얼른 보냈다. 외롭지 않게 잘 지내니 걱정 마시라고..


< photo by 서소세 ; 친구들이 사준 인도 음식 >
< photo by 서소시 ; 케잌까지 챙겨준 고마운 마음>




해마다 잊지 않고 축하해 주시지만 오늘 아침 엄마의 문자가 유난히 더 특별하게 느껴진 건.. 최근 나눈 친구들과의 대화 때문일 거다.


실력이 늘진 않지만 꾸준함으로라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어 일주일에 한 번씩 몇 년째 다니고 있는 영어수업.. 대부분 남편 따라 싱가포르에 오게 된 외국인들이니 자주 멤버가 바뀌지만 여러 해 함께 수업하며 친해지게 된 친구들..

나고 자란 나라와 문화는 다르지만 타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엄마로, 아내로, 딸로 살아가는 입장은 비슷해서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도, 나 역시 그렇다며 공감해 주는 부분이 많았다.


타국에서 크는 사춘기 아이들이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은 정체성의 혼란스러움이나 앞으로의 진로 문제, 연로하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멀리서 안타까워만 하는 마음까지..


얼마 전 갑자기 고향에 다녀온다며 수업을 여러 번 빠진 친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급하게 다녀왔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게 됐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와 있는 같은 입장이니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기에 모두 한마음으로 마음 아파하며 위로했었다. 그렇게 하나둘 본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마지막 임종을 보지 못했다는 사연도 많았고, 많이 편찮으신데도 멀리 있는 딸 걱정 안 시키려고 아픈 걸 알리지 않으셨다가 나중에 알고 마음 아팠다는 사연도 있었다.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신 분, 기억을 잃어 알아보지 못하는 게 너무 마음 아프다는 분, 아픈 어머니를 싱가포르로 모시고 오고 싶지만 비자 문제 때문에 쉽지 않다는 분..


서로의 사연에 마음 아파하며 꼭 한 번만 떠나신 부모님을 뵙고 싶다고 하는데 같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멀리 계신 부모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고 당장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국에 살 때도 늘 멀리 살아서 자주 뵙지 못했지만 비행기를 타도 여러 시간 걸려 가야 하는데 내가 너무 멀리 와 있구나 싶었다.


그러고 얼마 뒤 엄마가 새벽부터 챙겨주신 문자를 보니.. 건강하게 계셔주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크게 와닿은 거 같다.


생일날엔 따뜻한 미역국을 먹어야 인복이 있어서 사랑받고 산다며 매번 미역국을 정성스레 끓여주셨었는데.. 엄마 덕분에 머나먼 타국에 와서도 외롭지 않게 잘 지내고 있는 거구나 싶었다. 생일 축하한다고 김밥을 말아와 맛있게 먹으라고 전해주고 가는 지인의 정성에 어린 시절 따스했던 기억이 스쳐갔다.


6학년임에도 어려운 집안 형편을 잘 몰랐던 철없던 딸은.. 생일 잔치 해주신다는 말씀에 몇 명에게만 초대장을 주면 행여 원망 들을까 하는 마음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오라고 해 버렸고.. 그렇게 반 아이들 절반 정도가 모인 생일잔치를 하게 됐었다. 예상보다 많았던 아이들에 놀라셨을 텐데도, 탓하기보다 말던 김밥을 잘라주시고 시장까지 달려가서 떡볶이며 과일이며 먹을거리 잔뜩 이고 지고 오셔서 챙겨주셨던 그날의 엄마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런 사랑으로 키워주셔서, 그런 엄마 딸이라서 너무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전화 걸어 말씀드렸다. 축하를 건네며 안아주는 아이들에게도 엄만 그런 사랑으로 컸다고 그래서 엄마의 사랑으로 너무 배부르고 행복한 생일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생일은.. 나를 위한 날이 아니라, 나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애써 기억해 주고 잊지 않고 축하를 건네주는 그 따뜻한 관심과 애정에 눈물겹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날이구나 싶었다. 그런 응원들이 모여 또 열심히 잘 견디고 어려움을 헤쳐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가 저금되는 날이구나 싶었다.



감사합니다. 기억해 주고 신경 써서 챙겨주심에..

건강 조심하시고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봅니다.

정말 많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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