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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Apr 26. 2022

쥘 수 있는 만큼만.. 할 수 있는 만큼만..

자려는데 둘째가 어두운 얼굴로 와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열은 쟤 봤는데 괜찮다고.. 손이랑 발은 안 차갑다고..

자주 체하는 이라 체해서 두통이 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우리 나름 이런이런 증상이 있을 때면 이래서 아픈 거야 하고 어림짐작을 한다. 외국에 사니 병원 가는 게 부담스러운 탓도 있다.


약을 먹고 잠든 아이가 괜찮은지.. 혹시 열은 안 나는지 여러 번 깨서 자꾸만 들여다보았다. 머리가 많이 아픈지 자면서도 머리에 손을 얹고 잠든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문득 아이들 한창 키우던 그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는 이 없는 낯선 타지를 다니며 애 셋 이만큼 키웠으니 이젠 제법 육아 고수인 듯 증상을 살펴보고 이런 증상이니 일단 이 약을 먹고 지켜보자고 할 여유가 생겼지만..

(실상은 코로나가 두통부터 온다던데 새가슴이 돼서 열 쟤고~ 목은 안 아프냐~ 난리였지만..)



한밤중에 응급실로 참 많이 달려갔었다.

유난히 약했던 첫째..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염증 치료를 받아야 했던 첫째는 정말 자주 아팠고 아플 때마다 여러 번 우릴 놀라게 했다. 울다가 토하기 시작하면 분수 뿜듯 토하고 잘 멈추지 않아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다. 의사 선생님의 괜찮다 소릴 들어야 안심이 되던 시절이었다. 잘 먹지도 않고 유행하는 질병이 있으면 다 아프고 넘어갔던 아이..


제주 살 때 열감기 하다 폐렴으로 심해져서 많이 아팠는데 소아과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제주 방언으로 내게 혼내는 듯한 말씀을 하셨다. 완전히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엄마가 저만 챙겨 먹나 아이를 안 챙겨서 너무 말라 못 보겠다는 그런..

'어르신.. 제가 제일 마음이 아파요.' 외치고 싶었다. 결국 입원을 해야 했고 도와주러 제주까지 와주신 엄마를 안고 참 많이 울었었다.


아이가 아플 때면 어째야 할지 몰라서 친정 언니에게 전화해 묻곤 했다. 당시 제주엔 야간에 하는 병원이 없었는데 유난히 주말 한밤중에 자주 아픈 아이를 안고 당황하기 여러 번이었다.

"글쎄.. 우리 애들은 그런 적이 없어서.. 잘 먹고 잠들면 아침까지 푹 잘 자."

정말이었다. 조카들은 잘 먹고 잘 자고 우리 아이처럼 잔병치레 잦은 아이가 없었다. 그런데 의지할 곳 없는 타지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던 내게는 너무 서운한 말이었다.


아이가 약하고 자주 아픈 게 다 내 탓만 같았던 시절..

유산 후 내 몸이 그리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임신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입덧이 너무 심해 제대로 먹질 못했는데 그래서 그런 걸까..

아이가 잘 먹게 요리를 잘해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잘 못 먹여서 그런 걸까..


어렵게 태어난 둘째는 새벽에 자주 울고 깼다. 아무리 낮에 많이 놀리고 안 쟤워도 새벽 3-4시면 일어나 울어대던 아이는, 조금 커서는 커피 마시라고 찻잔을 내밀었다. 너무 졸리고 피곤한데 누워서 마시겠다는 내 머리를 밀어 일으키고 뜨거우니 조심해야 한다고 꼭 일어나야 한다고 했었다. 아프지 말라며 주사도 얼마나 열심히 찔러 주던지.. 그 새벽에 무한반복으로 커피도 마셔야 했고 주사도 맞아야 했다. 날마다..


셋짼 울음소리부터 달랐다. "응애~응애~" 하고 아기처럼 운 적이 없었다. 자다 벼락 치듯이 "으앙~~~"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울어댔다. 한번 울면 잘 그치지도 않았다. 바로 아랫집에 사시는 할머니를 종종 뵐 때면 매번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과일도 사다 드리고 했었는데.. 하루는 왜 아이들이 그리 많이 우냐며 본인이 우울증이 있어 약을 드신다고 좀 도와 달라고 하셨다. 얼마나 죄인 된 기분이었던지..

그 뒤론 새벽에 아이가 울면 당장 싸서 안고 집 앞 공원으로 달려갔었다. 아랫집 할머니도 그렇지만 아이가 너무 큰 소리로 울어대니 아파트 단지 아래로 내려와도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끄러워서..


누가 애 많은 집 애들은 저절로 큰다고 했는지.. 순둥이들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나는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며 10년 이상 밤에 통잠으로 푹 자 본 적이 없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은 한 명 아프면 셋 모두 차례로 아프게 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장염이 유행하면 차례로 장염이.. 폐렴이 유행하면 차례로 폐렴이..

내가 모자라고 부족한 엄마라.. 양육을 잘 못해서 우리 아이들만 자주 아픈가 싶었다.


자주 안 아프고 건강하게 키우려고 좋다는 건 다 해보기 시작했다.

고가의  스팀 청소기를 사서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고 아이들 장난감도 스팀으로 열심히 청소했다.

그런다고 안 아플 수 있을까만은 그렇게 해야 덜 아픈 거 같고 마음이 편해졌다. 밤에 푹 못 자고 몸은 너무 힘드니 애들이랑 놀아줄 힘은커녕 얼굴 보고 웃어줄 힘도 없었다.


그런데도 자주 아파서 "우리 애들은 왜 이리 자주 아플까요?" 하고 단골 소아과 선생님께 여쭈었더니, 오히려 그리 깨끗하게 하면 밖에 나가 조그만 병균을 만나면 바로 아프다고.. 적당히 더럽게 키워야 면역력도 생기는 거라고 하셨다. 기관지가 약한 아이들이라 제주의 습한 공기와 차가운 바닷바람이 만나니 자주 아픈 건 당연하다고 육지 가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면역력을 키워줘야 했는데.. 보호만이 최선은 아니거늘.. 흙도 만져보고.. 더러워지면 잘 씻기면 그만인걸.. 그때는 몰랐다. 아니 셋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는 게 맞다.)

그 말씀을 듣고도 하던 패턴이 있으니 매일을 쓸고 닦고 그랬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거실에서 놀고 있던 막내가 누나들이 재밌는 만화가 시작됐다고 같이 보자고 하니, 놀고 있던 장난감을 손에 쥐고 방에 들어가려고 했다.

공룡을 너무 좋아해서 온갖 종류의 공룡 모형 장난감이 많았는데 한 번에 다 쥐고 가려다 보니 손가락 사이로 자꾸 빠졌다. 맘에 드는 장난감을 다 쥐고 가겠다고 용쓰고 있었다. 겨우 세 살 된 아기 손에 쥘 수 있는 장난감이 몇 개나 되었겠는가.. 가져갈 수 있는 건 조금인데 만화는 시작됐고 다 가져가고 싶고.. 아이는 자꾸 떨어지는 장난감을 몇 번이고 다시 집으려다가 결국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그런데 그 아이 모습이 나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흔한 모습인데 그날따라 아이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내가 딱 저러고 있구나 싶었다.

다 쥐고 못 가면 쥘 수 있는 만큼 쥐고 가면 될 것을.. 다시 와서 처음부터 다시 들고 가면 될 것을..

아이는 아이라 모른다 하지만 난 왜 몰랐을까.. 두 번 세 번 다시 시도해야 하는 그 수고를 하기 싫었나 보다.

손가락 크기는 정해져 있고 가져갈 수 있는 건 한정적인데.. 그 욕심 하나 내려놓기가 이렇게 어렵다.


내가 해낼 수 있는 능력이란 손바닥 크기는 막 늘릴 수 없고 정해져 있을 텐데..

한 번에 다 쥐고 가려고 하는 막내처럼 다 쥐고 가고 싶은 욕심이 앞섰나 보다.

못하면 다음에 와서 다시 하면 되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하면 될 것을..

한 번에 다 해내야 하는 숙제처럼.. 나쁜 엄마 프레임에 나를 가둬 괴롭혔다..

그 시간에 차라리 우리 아이들 더 안아주고 눈 맞춰주고 웃어줬어야 했다.

 


그 뒤론 좀 더러워도.. 덜 깨끗해도.. 아이들이 종종 아파도..

내가 쥘 수 있는 만큼만 쥐고 가기로 했다.

다 쥐고 가려고 용쓰고 애태우며 버리는 시간에..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책도 읽고 함께하는 시간에 더 집중했다.


살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고 음식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는 그런 엄마일 수 없는데..

(물론 없을 거 같은 그런 엄마들이 주위에 있긴 하지만..)

내 손안에 쥐고 갈 수 있는 걸 들여다보며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야지..

손이 더 크다고 또는 작다고 쥐고 있는 행복이 더 크고 더 작을까..


그 경험을 제법 큰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한번에 다 쥐고 가고 싶어도.. 다 잘할 수 없고 대단한 결과는 내 것이 아닐 수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노력은 해보지만.. 다 내 것이 아니라고 애달파 하진 말자..

오래 걸리더라도 다시 돌아와서 다시 도전해 들고 가면 될 것을..

내가 쥐고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르나.. 그 속에 어떤 행복과 기쁨이 들어 있는지 모르니..

쥘 수 있는 만큼 꼭 쥐고 열심히 가보자고..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보고 이루어낸 거라면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감사하며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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