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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Mar 24. 2022

모든 순간.. 누구에게나 이 순간은 처음이다.

그리고..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늘.. 익숙해질 만하면 떠나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 가족..


아이가 문득 내가 즐겨봤던 “응답하라 ~” 시리즈 이야기를 하며 물어봤다.

“엄마도 저렇게 어릴 적 모습을 다 아는 오래된 친구가 있어요?”

“같은 동네에서 같이 자라 속속들이 사정을 다 아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해서요..”

왜 묻는지 조금은 알 거 같아.. 마음이 찡했다.


아이가.. 또 외로운가 보다..

친구들 속에서 함께 웃고 있어도..

혼자 섬이 되는 거 같은 기분..


언젠가 갑자기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 한가운데 있어서, 아이는 깊은 정을 주지도 않고 자기 마음을 온전히 열어 보여주지도 않는 거 같았다. (세 아이 모두 내성적인 편이라 더 그런지 셋 다 그런 면이 있다.)


마음을 나눌 친구가 제일 중요한 청소년기..

많이 외롭냐고 물어봤더니, 아이는 자긴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매일 노는 것 같은 다른 아이들 성적이 더 잘 나왔다고 속상해했다. 자기 고민은 영어권에서 온 다른 아이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으니 답답한 마음을 의논하기도 애매하다고..

출발점이 다르니 가는 속도도 당연히 다르다고.. 느리게 가더라도 꾸준히 가는 거북이처럼 그렇게 가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며 꼭 안아줬지만, 당장 주어진 짐이 무거운 아이에게 이 위로가 닿았을까 싶다.


남편의 발령 따라 제주도로.. 다시 육지로.. 또 갑자기 싱가포르로..

우리가 계획하거나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갑자기 정해지는 이사.. 게다가 연고 없는 낯선 곳..

그래서 싱가포르에 사는 동안에도 언제 다시 한국으로 갈지 모르는 상황이라 아이들이 중요한 시험을 준비해야 할 때마다, “이 시험 우리 안치고 갈 수도 있어. 걱정하지 마!”하고 당황하는 아이들을 다독였는데..

결국은 그 시험들을 다 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학교를 다니고 공부했다면..

아이들이 지금보다 덜 어렵고 덜 힘들었을까? 시행착오도 덜 겪었을까?


같은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과 한 동네의 추억을 공유하며, 집 앞만 나가도 다 아는 친구라 더 행복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싱가포르로 오기 전에 영어 공부를 많이 해 왔다면.. 아이들이 적응하기 훨씬 쉬웠을까?

그래서 맘고생이라도 덜 했을까?


아이가 던진 질문 하나에 나는 수많은 ‘그랬을까?’를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엄마 어릴 땐 말이야 ~ ~”라며 학교생활이나 친구 문제, 진로 문제를 막힘없이 속 시원하게 조언해 줄 수 있었을까?

어떤 커리큘럼으로 공부하고 있는지, 아이가 준비해야 하는 시험이 어떤 건지 경험하지 못한 경우보다는 해 줄 조언이 많았을까?


내가 공부한 그 먼 옛 시절과는 모든 게 너무 많이 달라졌을 테고, 나이 터울이 큰 아이들이니 매 순간 다 처음이긴 마찬가지였을 거 같은데..


한 달 뒤, 1년 뒤, 5년 뒤를 예측할 수 없고, 아이들의 다음 학교 진학과 같은 고민도 결정하기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학비 지원이 됐다면, 그냥 세 아이 같은 학교에 보내면서 서로 의지하라고 했음 좀 더 나았을려나..

학비 지원이 없어 더 그랬지만, 셋 모두 다른 도전의 연속이었고 매 순간이 참 어려운 시간이었다.


한 번은 어떤 한국분이 내게 너무 의아하다며 물어봤었다.

“왜 아들을 국제학교에 안 보내고 딸만 보내나요?”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그걸 왜 딸과 아들로 구분하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사실, 자유롭고 성적보다 아이의 노력 과정을 평가해주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국제학교 분위기와 모든 게 성적을 기준으로 반도 나뉘고 학교도 나뉘는 싱가포르 공교육 사이에서..

어떤 아이는 친구들과 필드 트립을 가는데, 어떤 아이는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 나 역시도 혼란스러웠고, 서로가 가지는 기회와 가지지 못하는 기회에 대해 균형을 어떻게 맞춰줘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물론 국제학교의 시험도 어렵고 중요하지만, 학업의 강도와 스트레스 면에서 차이가 매우 크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고맙게도 서로에게 처해진 상황과 과정의 어려움, 그리고 지금 저마다 가진 기회에 대한 내 설명을 이해해주고 국제학교에 다니는 첫째가 결코 쉬운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님을 헤아려줬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엔 서운함과 내가 갖지 못한 기회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을 거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매 순간 고생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어려웠던 마음 열심히 들어주는 것과 따뜻하고 정성 담긴 밥 해 먹이기, 그리고 매일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모든 순간.. 누구에게나 이 순간은 처음이다.”

그리고..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을  잘 안다고 당장 다음 순간에 나에게 일어날 일을 아는 사람이 없듯이..

누구에게나 지금 이 순간은 처음이고 낯선 이 순간에 어떤 결정이 최선일지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고민이며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덜 후회가 되는 방향으로 열심히 걸어가자고.. 그렇게 다독였다.


그리고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고 들려줬다. 너희가 낯선 학교에 가서 어려운 과정을 견디며 공부하고 있는걸 한 번도 당연하게 여겨본 적 없다고.. 아빠가 열심히 일하시는 게 당연한 게 아니고 엄마가 열심히 요리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듯이, 일상의 이 평범한 순간은 묵묵히 걸어가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너희의 노력을 엄마가 당연히 여기지 않고 고마워하고 있다고 그렇게 응원하며 안아줬다.


세 아이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 똑같은 시간을 선물할 순 없지만, 오늘도 나는 아이들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무탈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응원하고 당연하지 않은 하루에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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