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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Jun 20. 2022

흰돌이는 지켜주세요!

'아~~ 아무리 봐도 흰돌인 너무 낡았다.'


계절이 《 여름 》.. 계절뿐이니 옷 구매에 큰돈이 들지 않는 장점이 있는 싱가포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복을 입으니 그나마 사둔 옷도 몇 번 못 입고 돌아서면 그새 쑥 커 있어서 금세 작아져 못 입는 옷이 많아졌다.


옷장도 정리할 겸, 몇 번 안 입어 깨끗한 옷은 잘 빨아서 지인분 아이들에게 나누려고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일이 아주 커졌다. 애가 셋이니.. 여름옷 한 종류인데도 손발이 바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안 가지고 노는 인형이나 장난감도 나눔 하자 싶어 온 집을 뒤집어 정리하다.. 막내가 아끼는 인형을 발견했다.  

《흰돌이》..

막내가 하얗다고 이름 지어준 사자 모양 인형이었다.


싱가포르 오기 전에 외할머니와 같이 이마트 구경 갔다가 쌓여있는 인형 중 하나를 선물로 받아온 건데.. 막내는 이름도 지어주고 할머니가 사준 거라고 애지중지 아끼며 무척 좋아하는 인형이었다.


그런데 몇 년 세월 앞에 천 인형은 빛을 잃었다. 뜨거운 햇빛에 색이 많이 바래지고 자주 빨았더니 천도 헤져서 찢어질 거 같았다. 무엇보다 흰돌이의 얼굴이 바래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마 형체가 남아있는 뒷 모습)

너무 많이 낡아서 버리는 비닐에 넣었다가.. 그래도 혹시 막내가 많이 아끼는 인형인데 말은 하고 버려야 할거 같아서 비닐 옆에 살짝 빼놨다.




그즈음 막내는.. 갑자기 싱가포르로 와서 부족한 실력으로 초등학교 다니면서 영어도 중국어도 너무 어려워서.. 칠판에 써주는 숙제도 다 못 적어왔다. (적는다기 보다 따라 그리는 수준이던 시기였다) 매번 친구들에게 숙제가 뭐냐고 물어서 겨우 해가던 시기였다. 과목마다 나오는 숙제 해 가랴.. 매주 치는 단어시험 공부하랴.. 마음도 몸도 지치고 힘든 시기였기에.. 지켜보기 참 안타까웠던 시기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막내에게 살짝 물어봤다.

"흰돌이.. 너무 낡아서 이번에 빨면 다 찢어질 거 같아. 이거 버리고 맘에 드는 걸로 하나 새로 사자."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막내는 "안돼요!!!~~ "를 외치며 흰돌이를 안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많이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너무 뜻밖의 반응이라 당황스러웠다. 말 안 하고 버렸으면 어쩔 뻔했나 싶어 더 당황스러웠다.


펑펑 울고 있는 아이가 안쓰러워..

"많이 아끼는 인형인데 버리자고 해서 속상했니?" 하고 물으니..

"흰돌이는 외할머니가 사주기도 했고, 안고 있으면 아무 걱정 없던.. 행복했던 한국 기억이 같이 떠올라서 더 좋아요. 그러니 흰돌이는 지켜주세요." 

 

이제 초등학교 갓 들어간 막내가.. 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다니.. 참..

싱가포르에 와서 못 알아듣는 수업 들으면서.. 아이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힘들구나 싶어 덩달아 눈물이 나려 했다.


"대체 왜 세상 사람들 말이 다 달라서 공부할게 많은 거에요? 하나로 다 똑같은 말하면 좋을 거 같은데.."

"그러게 말이다.. 왜 달라서 공부할이리 많을까.."

"영어도 그렇지만 중국어도.. 다들 외계인이 말하는 거 같아요. 우리 교실에서 저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거 같아요."

수준이 저 정도였던 시기였으니.. 저리 모르는데 학교 수업을 따라가야 했으니.. 아이가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웠을까..




이 낡은 인형이.. 한국에서 행복했던.. 마음 편했던 시간을 떠올려 주었나 보다.

흰돌이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이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으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낡은 인형이라 다시 빨면 천이 헤져서 다 찢어질 거 같았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럼.. 우리 흰돌이 새로 꾸며주자."


작아진 티셔츠 하나와 안 쓰는 비니를 들고 와 흰돌이에게 입혀보았다.

나름.. 나쁘지 않은 모양새였다.


"엄마가 이 티셔츠 바느질해서.. 흰돌이 새 옷 만들어줄게. "

아이는 어떤 모습이 나올지 모르니.. 마냥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동안.. 너네는 흰돌이 새 얼굴 만들어주는 게 어때?"

햇빛에 바래서 다 낡은 탓에 눈, 코, 입도 거의 지워져 가고 있었다. 펜을 주고 덧칠해서 흰돌이 얼굴을 찾아주자 했더니.. 셋이서 혹시 튀어나올까.. 잘못 그릴까.. 안절부절못하며 열심히들 새 얼굴을 그렸다.

(아이들이 새로 그려준 얼굴)

그 와중에 잘못 찍어 점도 생겼지만.. 눈, 코, 입이 생기니 보기가 좀 나았다. 세상 순해 보이지만.. 이 친구는 사자 인형이라는..


막내가 입던 작아진 티셔츠를 가져다가 열심히 바느질을 해 짜잔 ~ 하고 새 옷을 만들었다.


(새로 태어난 흰돌이..)

마침.. 작아진 옷 중 사자 모양 티셔츠가 있길래.. 흰돌이 정체성도 찾아줄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옷에 그려진 사자가 무서워 떨고 있는 거 같아 보이기도..


막내는 우와 ~~ 하며 흰돌이를 아기 안듯 조심해서 안고는 무척 좋아했다.

얼굴 쪽 찢어진 부분도 꼬매 주고 싶었지만, 그럼 상처 난 거처럼 보일 거 같다고 싫어해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너무 고마워요 ~~"를 외치며 아기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눈물이 났다.

구나..


아이에겐 행복했던 더 어린 시절 한국에서의 추억을 품고 있는 흰돌이..

그 어떤 예쁜 인형도 대체 불가일테니..

작아지는 티셔츠가 생길 때마다 흰돌이도 새 옷을 갈아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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