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소시 Jul 11. 2022

외국에서 크는 사춘기 아이들과 한 뼘 더 친해지기

세 아이를 매번 낯선 곳으로 발령 따라 옮겨 다니며 키우면서 아이들 어릴 땐 '몸'이 많이 힘들었. 나이 터울 많은 세 아이라 10여 년을 제대로 못 자서 늘 피곤에 찌들어 있었고 셋 다 예민하고 다 달라서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몰라 헤매기도 많이 헤맸다. 돌아가며 자주 아파서 아이들도, 돌보는 나도 고생 정말 많이 다.


"제발 빨리 커주라 ~~" 노래를 했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기를..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울지 않고 의사표현 잘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랬었다.


그랬었는데.. 너무 많이 외쳐서였을까..

어서 커주길 바랬었는데 아이들이 커갈수록 시간은 정말 날개 달고 날아가듯 빨리도 지나가고 있다.

"빨리 커라~"는 완전 취소다. 지금은 매 순간 누가 시간 좀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하고 있다.


'좀 크면 편해지겠지?' 그럴 줄 알았다..

시간이 무섭게 빨리 지나가고 아이들이 쑥~ 커갈수록 이번엔 '마음'이 점점 힘들어졌다. 

아이들에게 차례로 사춘기가 찾아온 것이다. 몸이 편해지면 훨씬 쉬워질 줄 알았는데 갈수록 점점 더 어려운 문제를 받아 든 심정이었다.


아이들은 매번 낯선 곳에서 새로 시작해야 했고, 싱가포르에 와서는 너무 다른 문화 차이와 언어 문제까지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니 힘듦은 배가 되는 거 같았다.


아이들에겐 세상 어려운 문제인 친구 문제로 어려움을 표현해왔다. 사춘기는 만국 공통이었다. 영어가 부족할 땐 무시와 따돌림도 심했었고, 친구와 좋은 관계 맺기의 어려움은 다른 문화 차이라며 흘러 넘기기엔 속상한 일도 많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 공부도 너무 어렵고 해야 할 게 너무 많다며 힘겨워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진로에 대한 걱정과 고민도 많아졌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사춘기.. 호르몬이 변하는 과정에서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변화.. 

아이가 문득 내가 아는 모습이 아니라, "누구세요?" 싶은 모습을 보이면 혼자 서운했다가 상처받았다가 그랬다. 그 변화가 서운해 이야기해보면 아이는 스스로 잘 모르겠다고 자긴 사춘기 아니라고 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던가..

아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서로가 맘 상하지 않고 더 친해지기 위해 무언가가 필요했다.


외국에서 크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과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한 나만의 방법들을 소개하면 이렇다. 이런 애씀으로 아이들과 한 뼘 더 친해질 수 있었다고 믿고 싶은 걸지도..


1. 우리말로 대화하기 - 이건 의도했다기 보단 내 영어 실력이 한없이 부족해서지만, 그냥 생활대화 말고 마음속 깊은 대화를 의미한다.

사람들 말이 다 외계어 같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던 아이들이 이곳에서 생활에 적응해가면서, 자주 사용하는 영어가 더 편해지는 시기가 왔다. 그즈음부터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대화할 땐 영어로 대화했다. 처음엔 영어가 늘어서 이렇게 자연스레 사용하는구나 싶어 기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만큼 아이들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을 잊어가고 있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요,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아.. 그 단어 뭐죠? 그걸 뭐라고 하더라? 아.. 아는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 하나 설명하려는 데도 아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하는 걸 보면서, '아~ 우리말을 잊어가고 있구나' 싶었다. 그래도 평소 집에서 우리말로 대화하니 무슨 문제일까.. 내가 알려주면 되고 영어가 더 편하면 또 영어로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즈음 아이들 어릴 때 싱가포르로 와서 자녀들을 훌륭하게 잘 키우신 분을 뵐 기회가 있었다. 싱가포르인들도 들어가기 어려운 훌륭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곳에 취업까지 했다는 자녀분들 소식에..

"어쩜 자녀분들을 이렇게 훌륭하게 잘 키우셨어요. 너무 든든하고 좋으시겠어요."하고 건네는 내 진심에 그분은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아이들이 싱가포르에 잘 적응해서 잘 커준 건 고마운 일이죠. 그런데 다 크니 자기가 똑똑해서 잘 큰 줄 아는 거 같아요. 클수록 속마음 얘기를 안 해요. 아이랑 속 깊은 대화를 하고 싶은데 한국어 어려운 표현은 아이가 다 잊어서.. 영어로 대화하고 그 마음을 헤아리려니 내 속이 답답해요. "

무언가 서운한 일이 있어서 그리 말씀하셨나 싶으면서도 속 깊은 대화를 하기 어려워 답답하시단 대답은 내게 작은 충격이었다.


"아이들과 우리말로 대화 많이 하세요. 키워보니 소통이 중요해요."

나중에 더 커버린 아이들과 서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영어로 말하는 아이의 마음속 진심을 내가 다 알아듣고 그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을까 싶었다. 그 일을 계기로 마음 표현하는 건 더욱더 우리말로 해야겠구나 싶었다.


정말 사춘기가 오니 아이들과 대화에서 자꾸 서운할 때가 많아졌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어식 표현에 익숙해져서 우리말도 영어처럼 하는 탓도 있었다.

우리말은 '동사'가 마지막에 오니 "이런저런 이유로 그래서 안 할래요~"로 표현되지만, 영어에 익숙한 아이들은 "안 할래요~"부터 시작하니.. 의도를 알기 전에 "왜 안 한다는 거야?"하고 듣기 전에 괜히 마음부터 상했다.

서로 오해하지 않고 마음 상하지 않도록 그런 부분이 서운하게 들릴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해줬다.


같은 뜻이라도 우리말 표현이 얼마나 다양하고 어감 따라 다른 말이 되는가..

"네!"로 짧아지는 대답이 사춘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니..

모든 대답이 짧아지고 "네" 한 마디로 많은 상황을 넘기는 아이들을 경험하며, 그 짧은 한마디에도 억양 따라 듣는 사람상처받을 수 있음을 알려줬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오는 "네, 네, 네"는 '그만 고 싶어요.'란 신호임을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님들도 다 안다고..

"아는데 왜 계속 같은 이야길 하는 거죠?" 아이도 물어온다.

그러게 말이다. 사춘기인 아이도, 낯설게 변해버린 아이를 마주해야 하는 부모도 어렵다.

그 어려운 시기에 말이라도 통해야 할 테니.. 더 열심히 우리말로 대화하고 있다.



2. 등하교 시간은 둘만의 데이트 시간 – 오로지 둘만 대화할 수 있는 시간

처음엔 학교 셔틀버스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가격도 너무 비싸고 오랜 시간 타고 여러 곳을 돌아서 가야 했다.

세 아이 학교가 다 달라지면서 거리가 다 멀어서 급하게 운전면허증을 땄고 아이들 등하교를 책임지게 됐다. 운전 방향이 달라서 아이들 태우고 운전하는 게 많이 부담되고 걱정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등하교 시간은 오히려 아주 훌륭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아이가 셋이라 따로 시간을 내서 아이들 저마다의 속사정이나 힘듦, 고민을 일일이 들어주고 이야기 나누기 힘들었다. 자기만의 방도 만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하루는 왜 그리 빨리 지나가는지.. 어쩜 한 명씩 마주 앉아 대화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들을 등하교시키며 자연스럽게 그 시간이 마련되었다.


아이마다 좋아하는 음악 취향이 달라서 그 순간 같이 타고 있는 아이를 위한 맞춤 음악을 틀고 같이 음악을 들었다. 둘만 있다 보니 "엄마~~ 오늘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요~~"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힘들었던 일, 황당했던 일, 짜증 나고 속상했던 일들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웃긴 이야기나 황당한 상황도 들려줬고  너무 달라서 이해하기 어려운 다른 나라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요즘 관심 가는 음악이나 새로 하고 있는 생각들도 들려줬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저절로 만들어졌다. 더없이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저절로 매일 준비되어 있으니, 아이들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 기울여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도 해주고, 뭐 그리 황당한 일이 있냐며 같이 화도 내주고.. 그렇게 한 뼘씩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3. 아이의 관심에 팬 되어주기 – 아이에게도 숨구멍이 필요하다.

한집에서 나고 자랐으나 셋 다 성격이나 관심사가 다 달랐다. 한참 인기 있는 K POP 아이돌 그룹 이름이 뭔지, 멤버가 누구인지 관심 없던 아이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작곡, 작사 스타일, 안무나 컨셉의 변화 같은 부분까지도 디테일하게 관심 갖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의 관심에 같이 열렬한 팬 되어주기로 힘든 아이의 마음을 응원했다.

같이 그들의 음악을 듣고 안무를 봐주고 어떤 멤버가 어떤 성장을 하고 있는지.. 왜 이 그룹을 좋아하는지.. 같이 관심 가져주고 그들의 성장을 같이 응원해줬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길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낯선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같이 찾아보고 알아가며, 세상 어느 곳도 똑같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임을 배우고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응원했다.

식물 좋아하는 아이와는 잘 키울 자신 없었지만 씨앗을 사다 심고 물도 주며 커가는 모습에 같이 기뻐해 주고.. 잘 못 키워 시들면 또 다른 종류로 도전해보며 소소한 기쁨을 같이 나눴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많으니 친구들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 나라에서 온 누구인지, 그 아이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두었고, 친구들과의 있었던 이야기를 할 때 "그 애가 누구라고? 어떤 나라 친구라고?" 하며 뒷북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처음엔 많이 그랬다. 들어도 참 낯선 이름도 많다.)

소중한 사춘기 시기를 함께 보내는 친구들이니 그 친구들을 같이 기억해주고 잘 지낼 수 있길 응원해줘야 할거 같았다.


낯선 나라에서 나름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 힘듦을 위로해줬을 아이의 관심사.. 아이에게 위로가 되고 숨 쉴 수 있는 숨구멍이 되어 준다는데 같이 응원하고 팬이 되어 주는 것으로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4. 세상에 관심을 갖게 세상 보는 눈 열어주기 - , 뉴스, 감동 사연 공유하

- 다행히도 나는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고 아이들은 내 이야기 듣길 즐겨주는 편이다.


오랜 시간 우리나라를 떠나 있으니 제대로 '우리나라'를 알려주기 위해 최근 일어난 뉴스 기사나 가슴 따뜻한 사연, 꼭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우리 역사를 배울 기회가 없으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기나긴 역사를 가진 나라인지 종종 책도 읽어주고, 그 시절 상황을 알 수 있는 영화도 같이 찾아봤다.

아이들은 믿지 못하는 어릴 적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얼마나 눈부신 발전과 변화가 있었는지도 들려줬다. 다른 나라에서 자라지만 우리나라를 제일 잘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세상으로 나 있는 수많은 창을 살짝씩 열어 보여주기"는 내가 더 즐거워하는 일과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테러나 전쟁 이야기, 사건 사고 뉴스나 감동적인 사연, 마음 따뜻해지는 좋은 글들, 평범한 이웃들의 위대한 이야기,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나 영화 이야기, TV 프로그램에 나온 유쾌하고 재밌는 상황들, 지구가 처한 위기 환경문제..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볼 때마다 "얘들아~~ 와서 들어봐~~" 하고 아이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참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들어와서 그런지.. 아님 말려도 할 엄마임을 알아서인지 열심히 들어줬고 재미있어해 줬다.


세상 제일 힘들고 제일 복잡할 거 같은 사춘기지만.. 돌아보면 어렵고 힘든 사람도 많고, 배우고 싶은 대단하고 위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한 사연들을 이야기 나누며 아이들도 나도 배운다.



5. 밥심이 최고야! - 요리에 자신 없어도 밥 짓는 이유

지쳐있는 아이들을 위한 제일 큰 위로는 '밥'이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네 정겨운 인사도 "밥 먹었니?", "언제 같이 밥 먹자." 아니던가..

한국의 급식을 기억하는 큰 아이는 맛있고 영양가 높은 급식을 먹을 수 없음이 제일 아쉽다고 했다. 캔틴에서 가볍게 사 먹는 음식은 그리 든든하지 못했다. 따뜻한 한식에 담긴 정성과 사랑의 힘이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버티게 해주는 '밥심"이 되어 준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요리에 자신 없고 잘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지었다.  

따뜻한 밥상은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이었다.

힘들고 지칠 때 엄마가 차려주신 따뜻한 밥 한상 비우고 나면, 그 순간만큼은 맛있는 음식이 주는 즐거움과 포만감으로 잠시 걱정이 잊어졌었다. 그 기억을 이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무더운 싱가포르에서 땀 흘려가며 밥을 짓고 도시락을 쌌다.




대단히 좋은 엄마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지만 외국에서 크는 사춘기 아이들과 잘 지내보려 이런 노력들을 해오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게 느껴지고 많이 부족한 내가 보인다. 무엇이든 어떤 결과를 바라고 의도하기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진심으로 대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뒤따를 거라 믿는다.

이런 작은 노력이 모여 아이들과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한 뼘씩 더 친해지며 그렇게 아이들도 나도 같이 성장하고 있다.

 



사진출처: photo by Melissa Askew on Unsplash.

이전 05화 제주 바다만 바라보고 싶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