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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Aug 03. 2022

5년 후 미래의 내가 사진을 보내온다면..

저 멀리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아이가 보였다. 수많은 아이들 속 다 똑같은 교복을 고 있어도 면봉처럼 마른 아이, 영락없는 우리 막내다. 포슬포슬 내리던 빗방울이 제법 굵어져서 곧 우다다다 쏟아질 거 같은데 다리가 불편한지 절뚝거리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녀석.. 비 맞지 말고 전화하면 학교 앞으로 갈 텐데.." 하며 보니 양속 가득 들고 있는 게 많아 전화기는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구나 싶었다.


힘겹게 차에 올라타는 아이를 보니 안쓰러웠다. 다리는 왜 그러냔 내 걱정에..

"체육 시간에 운동장을 다섯 바퀴 뛰었는데 좀 불편하네요." 한다.

낮 기온 36도 더위에 다섯 바퀴나 뛰었다니.. 게다가 시간 안에 들어와야 다시 뛰지 않기에 전력 질주하느라 힘겨웠다고 했다.


참 어려운 싱가포르 학교 생활.. 새벽 6시에 일어나 등교하고 오후 6시 40분에 교문을 나선 아이..

지쳐있는 아이를 가만가만 안아줬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한숨 돌렸는지 아이가 물어왔다.

" 엄마, 지금의 내가 5년쯤 전 과거의 나에게 지금 모습을 사진으로 보낸다면.. 그게 도움이 될까요? 그 사진을 봤을까요? "


의외의 질문에 아이의 의중을 살피려 가만히 웃어줬다.

"밌는 질문이네. 글쎄 누가 몇 년 후의 난 어떻게 되나 미리 알려주면 좋으려나.. "

"전 안 볼 거 같아요. 모를래요. 알면 좋은 모습이든 아니든 어차피 그렇게 될 텐데 하고 노력하지 않을 거 같아요."

"여기 와서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그럴 기회를 가지고 이만큼 해 올 수 있어서 전 다 감사해요."


긍정을 말하는데 맘이 아팠다.

뭔가.. 잘 안 풀리고 답답한 어려움이 있나 보다.

과거의 시간에서 미래를 볼 기회를 줘도 안 보고 지금처럼 똑같이 했을 거란 아이의 말속엔.. 여전한 어려움이 보이고 애쓰며 버텨온 스스로에 대한 토닥임이 보였다.


답답하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누군가 속시원히 알려줬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은 많았다.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 수많은 "그때 그랬었다면.."과 무수한 "그때 그걸 안 했더라면.."을 되돌이표처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 같다.


미래의 내가 5년 뒤 내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여준다면.. 문득 무서워서 안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라는 무서운 팬데사태와 지구촌 곳곳의 이상기후 현상을 경험하고 보니 감히 누구도 건강을.. 미래를.. 자신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싶다. 행여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면 앞으로 살아갈 5년 동안 힘이 빠질 거 같다.


미래를 미리 안다는 건 결단코 가벼운 일이 아니구나 깨달은 순간이었다. 매 순간 결정의 순간이면 누가 정답 좀 알려주면 좋겠다고 푸념하던 내가 오버랩되어 보여 씁쓸해졌다. 과거의 일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건 인간에게 신이 주신 선물이란 이야길 읽은 적 있다. 힘들고 아팠던 기억은 다 잊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주기 위해 과거의 모든 순간을 다 기억하지 않아도 되게 '망각'을 선물해 주신 거라고..


미래에 관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은 '뜯지 않은 선물 상자' 같은 걸까? 무엇이 들었는지, 그걸 열어 만족할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받아 든 선물만으로 설레고 기쁠 테니.. 그 속을 열어 선물의 실체를 확인할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정해져 있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기뻤다가 설렜다가 궁금했다가 그렇게 꿈꿀 수 있을 테니..


그 상자 속 미래는 어쩌면 지금의 내가 매일매일 쌓아가는 순간들로 조금씩 변하느라 비밀 속에 포장되어 있는 건 아닐까..


그저 미래의 내가 어떤 상황일지라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으면..

묵묵히 걸어가며 오늘을 열심히 보낸 아이의 5년 후도 건강하고 밝게 웃고 있기를..



(사진출처; photo by SplitShire on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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