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장의사진이 편집된 듯 한 장에 담긴 그 사진속엔꼬꼬맹이 시절의 우리 집 세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늘어진 내복에 개구진 표정으로 웃고 있는데 앞니가 빠져 있어 더 코믹해진 아이.. 게 다리를 입에 물고 드라큘라로 변신한 아이.. 지금의 모습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볼 빵빵 젖살 가득한 아이..
이렇게 작고 개구진 꼬맹이들이었는데..
남편에게 웬일로 이런 걸 편집해 보낸 거냐고 물었더니 구글 포토에서 <OO님의 기억에 남는 순간>이란 이름으로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 중 일부를 묶어 보내준 거라고 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어릴 적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가족 단톡방에 올렸단다. 보다 보니 목이 메어 온다며..
너무도 해맑고 천진한 모습에 저땐 그랬지 하며 깔깔깔 웃으며 보다가..
' 어.. 이게 무슨 일이람?'
입은 웃으며 추억을 말하는데 눈은뜨거워지고 있었다. 사진 보다 목이메어왔다는 남편 마음이 오롯이이해가 됐다.자꾸만 눈물이 많아지는 나이인가..
저렇게 작고 귀엽던 아이들이 어느새 나보다도 더 커져서 "내가 진짜 이랬다고요?" 하고 있으니..
세 아이 키우면서 참 많이 힘들었는데..
그래서 이렇게나 이쁜 줄도 모르고.. 귀한 순간들을 놓치는 줄도 모르고 힘들어만 했었다.
두 번의 유산을 경험한 내가 무려 세 아이의 엄마일 수 있어서.. 꿈만 같은 이 현실이 문득문득 참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가끔 정말 내가 다 낳은 게 맞나 싶을 때도 있으니..
첫째는 등에 바닥 한정 초강력 센서를 달고 있기라도 한 듯, 겨우 쟤워서 눕히면 내려놓기무섭게 울어대는 바람에 밤새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었다. 화장실 갈 때도 띠를 둘러 안고 가야 했으니..
첫째만 그랬으면 좋았으련만.. 세 아이 중 누구 하나 쉬운 아이는 없었다.
부모 되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절감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던 내게..
어느 날 시어머니가말씀하셨다.
"신기하게도 내 새끼는하나도 안 무거운 법이다. 얼마나 이쁘니.."
그럴 리가요..어머니..
업고 안고 그렇게 세 아이 키우다 보니 무릎은 염증으로 부어올라 뼈주사를 맞아야 했고 손목은 고장난지 오래라 병뚜껑 하나 열기도 어려워졌다. 새벽마다 깨서 울거나 안 자고 놀자며 눕지도 못하게 했던 꼬맹이들..
유산 탓에 나이 터울 많이 나는 세 아이를 키우느라 통잠은 그렇게 십 년 넘게 자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힘들어서..
아이들은 이렇게나 눈부시게 예뻤었는데..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오롯이 다 느끼지 못하고 예뻐만 해주지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이 아까웠다.
그렇게 한바탕 울면서 사진을 가만가만들여다보다가..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내내 어쩌면 계속해서 그림 찾기를 하고 있었구나싶었다.
1. 같은 그림 찾기
육아는 힘들었지만 눈도 못 뜨던 아이가 살짝 웃어만 줘도 세상을 다 얻은 듯 같이 따라 웃었다. 뒤집기 한판에 손바닥이 터질 듯 손뼉을 쳤고 남편은 운동신경은 자길 닮은 거 같다고 했다. 옹알이 소리를 들으면서 방금 단어를 제대로 말한 거 같다며 이런 언어 천재가 있냐며 말 잘하는 건 날 닮을 모양이라며 좋아라 했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작은 변화에 서로 앞다투어 '나닮아 이런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면 홀로 앉고, 잡고 서고 한걸음을떼는변화의 순간순간마다 큰 박수로 응원을 받던그때가 아이들도 가장 행복했겠다 싶다.
온 얼굴에 이유식을 다 묻히고 엉망으로 어질러도 잘 받아먹는 모습이 예뻐 복스럽게 잘 먹는 게 날닮았네 우겼었다.
그렇게초보 부모였던 우린 '같은 그림 찾기'를 열심히 했었나 보다.
세상 부모는 다 자기 아이가 천재인가느끼는 순간을 경험할 테지만우리아인진짜일지 모른다며유난이었다.
2. 다른 그림 찾기
아이가 커가면서 더 이상 혼자 서고 먹고 걷는 일들이 박수받을 일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고 난 뒤로는 슬슬 아이의 미운 짓도 시작되었다.
자기 고집이 생기고 떼쓰는 일이 잦아지면서 보지 못한 미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도대체 이런 모습은 누굴 닮아 그런 건가'다른 그림 찾기'를 했었나 보다.
분명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날 텐데.. 잘하는 거, 좋은 건 다 나를 닮아 그런 거 같고, 미운 짓, 말 안 듣는 건 다 남편 닮아 그런 건가 하며.. 육아의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나때문일 리없다며 밀어냈었다.
당황하고 긴장하면 순간 머리가 하얘져서 아는 것도 전혀 생각이 안 난다며 순간 얼음, 땡 놀이처럼 동작 그만이 되던 첫째.. 이게 좋아 저게 좋아 선택의 순간에도 둘 다 좋다며 선택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참 답답했는데..
어느 날 남편이 깜짝 놀랄 이야기를 했다.
" 난 첫째가 200%, 300% 다 이해가 돼.난 더 했거든.. 더 심했던 나도 이렇게 좋아졌으니 걱정 안 해도 돼. 좋아질 거야!"
나에게 많이 다른 그림 찾기라어려웠는데 남편에겐 같은 그림 찾기라 완전히 이해된다니..
언제부턴가 감정을 말로 표현하진 않지만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이마에 쓰고 표정으로 다 이야기하는 둘째를 보며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나 역시 사춘기 때 딱 그랬었기에.. 그래서 잃은 게 더 많았기에..
아이에게 엄마가 경험으로 너무 잘 아는 같은 그림이니 조금씩 바꿔 나가면 좋겠다며 달랬다. 반면에 남편은 솔직한 둘째의 표정과 반응이 너무 재밌다며 자꾸 장난치며 표정으로 말하는 솔직한 반응을 보고 싶어 했다.
그렇게 누군가에겐 같은 그림 찾기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다른 그림 찾기가 되는 게 육아였다.
3. 숨은 그림 찾기
"이렇게 키워줘서 고마워요! 엄마 고생 많았어요. "
사진을 보고 가만히 다가와 꼭 안아주는 아이들..
어느새 엄마 마음까지 헤아릴 줄 알게 된, 쑥 커 있는 사춘기 아이들.. 스스로 잘하는 일이 많아지다 못해, 이젠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달라 이야기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부모인 우리가 지금할 수 있는놀이도달라져 있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같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지만 아이들은 분명완전히 다 달랐다.좋아하는 음식도 좋아하는 노래도..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의 모습이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도너무나 달랐다. 힘들 때 스트레스 푸는 방법도 다 달랐다.
사춘기 아이들을 위해더더욱 열심히해야겠구나 싶은 놀이는..
아이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숨은 그림"을 잘 찾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어떤 게 흥미롭고 어떤 걸 하면서 행복한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스스로 자신을 찾고 발견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때.. 지금 부모인 우리가 할 건 숨은 그림 찾기인 듯하다.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어려움을 이겨 내는지..
새로운 도전 앞에 망설이는지한발 내딛고 보는지..
어떤 걸 할 때 즐거운지.. 행복한지..
아이들마다 타고난 본성에 더해진 각자만의 숨겨진 이야기를 잘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함께 귀 기울여 주고 묵묵히 걸어가는 그 길을 지켜봐 줘야 할 때인 거 같다.
" 너희들 키우느라 너무 힘들었단다. "
자주 말했더니..
진짜 힘들 거 같다며 그렇게나 큰 희생이 필요한 일이라면 나중에 아이 낳는 건 자신이 없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