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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Oct 02. 2022

네가 첫사랑이라 그래..


'쨍그랑~~ 쨍쨍~~"

방 안 가득 채워진 공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소리에 뒤이어 "으~악~~"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에구나.. 돌아보니 둘째가 방금 따라준 우유를 쏟아서 식탁 위며 바닥이 온통 엉망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플라스틱 컵이라 소리만 요란했다.

"좀 조심하지~ 가만히 있어! 엄마가 막내 기저귀 갈고 금방 갈게. 움직이지 마!~~"

놀래서 울먹이는 둘째를 말로 달래며 급히 막내 기저귀 갈기에 속도를 높였다.


마음이 급해 서둘러 막내 바지를 입히면서도 무언가 머리 뒤쪽으로 쎄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하고 고개를 돌려 첫째를 보니 역시나 마음 상한 듯 실눈을 뜨고 엉망으로 우유를 쏟은 둘째를 혼내며 휴지로 우유를 덮고 있었다. 꼭 쥐고 있지 이게 뭐냐 혼내면서 하는 말이..

"뭐 혼나지도 않았는데 우냐.. 언니 땐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너 진짜 덜 혼난 거야! "


정말 그랬다.

유난히 컵에 담긴 음료든 우유든 쥐어주기만 하면 어쩐 일인지 자주 쏟던 첫째였다.

그냥 물이면 좀 낫지만 우유를 쏟으면 아깝기도 하고 옷도 갈아입혀야 하고, 우유 냄새 때문에 바로 세탁해야 하니 여러모로 곤란했다. 잘 안 먹고 자주 아팠던 허약한 아이라 먹기도 전에 쏟는 게 더 속상했었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자주 그러니 아이에게 왜 매번 쏟냐고 많이 혼내곤 했었다. 큰 잘못도 아닌데 큰 일인 것처럼 혼냈었다. 아이 마음속에 혼났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었나 보다.


"괜찮아. 다음부턴 조심하자!"

우는 둘째를 달래며 그리 말하는 내게 첫째는 같이 물티슈를 꺼내 닦아주면서도 입을 삐죽했다. 아이 눈빛에서 '왜 둘째는 더 안 혼내요? 나랑 다르게..'하고 묻는 마음이 읽혔다. 그날따라 아이의 서운한 마음이 크게 보였. 둘째를 혼내서 울리면 젖먹이 셋째도 따라 울테고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뒷정리하는 것보다 달래는 편이 좀 더 낫다고 느낀 건 내 변명일 테지만 첫째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을게다.


예전에 첫째가 실수했을 때 혼냈던 걸 돌아보니 참 무서운 얼굴로 혼내던 못난 내가 있었다.

아이의 눈빛이.. 서운한 마음이.. 마음에 콕 박혀 아파왔다. 설마 작은 실수에 대한 내 반응의 차이를 '사랑하는 정도의 차이'로 받아들였으면 어쩌나 싶어 미안했다.


부모가 되고 첫아이를 낯선 타지에서 혼자 키우면서 많이 부족했던 초보 엄마라 그랬다고 변명해 보지만, 변명이 부끄러울 만큼 첫째에게 참 많은 실수를 했었다.

나름 '우리 아이는 이런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서 <마음 따뜻하고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커주길 바라며 그냥 둬도 마음 여리고 착한 아이에게 "친구들에게 먼저 양보해라. 더 배려하자." 그랬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착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 내가 바라는 모습을 먼저 요구했었다.


작은 실수에도 자주 혼냈었다.

여섯 살 때 한 친구가 첫째에게.. 

"매번 혼내는 너네 엄마는 나쁜 엄마, 안 혼내는 우리 엄만 좋은 엄마야"라고 해서 얼마나 슬퍼했었던지.. 그때도 널 많이 사랑하지만 잘못하면 혼나는 게 맞다며 아일 달래주지 못했었다. 무섭게 혼내지 않고 잘 타이르면 될 텐데.. 왜 그리 몰랐는지..


나이 터울 많이 나는 동생들이 태어나고 나서 내 실수는 더 많아졌다.

네가 도와주는 게.. 양보하는 게 잘하는 거라고 칭찬하고 그래야 착한 아이라며 그렇게 따라주길 요구했었다.

두 동생이 생겼을 땐 첫째도 여전히 엄마 도움이 많이 필요한 일곱 살 아이였는데.. 다 컸다고.. 혼자 잘할 수 있다고.. 그게 엄마 도와주는 거라고 아이를 내몰았었다.

아이의 잘못은 큰일 인양 호들갑을 떨어대며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한다고 단단히 약속도 받아가며..


그런데 시간이 흘러 동생들이 같은 실수를 하는 상황이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니..

'이건 아이다운 일이구나. 애들은 다 똑같구나.' 하며 이해도 되고 큰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호들갑 떨던 반응도 무뎌졌다. 내 반응이 무뎌지는 만큼 첫째의 서운함은 더 커졌을 텐데 순간순간 놓치고 있었구나 싶었다.




미안해서 첫째를 꼭 껴안았다.

"사랑해 우리 딸~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예상치 못했는지.. 꼬옥 안아주자 아이의 작은 눈에 눈물이 맺혔다.

생각보다 더 많이 서운했었나 보다..


"사랑"이 뭔지 아냐고 물으면 매번 두 팔 벌려 꼬옥 안아주며..

"사랑은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자꾸 안아주고 싶은 거야."

 살 때 첫째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그런 아이에게 참 많이 부족한 엄마였다.


마음 따뜻하고 여린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겠구나 싶었다. 아이를 가만가만 안아주며 이야기해줬다.

엄마한테 넌 첫사랑이란다.
너 첫사랑이 뭔지 아니?
네 말처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자꾸 안아주고 싶은 사람을 마음 다해 사랑해 주고 싶은데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정말 잘 사랑해주는지 방법을 잘 몰랐단다.  
무엇이든 다 잘해주고 싶고 위해주고 싶고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한 마음인데..
그걸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데 마음만 먼저 앞서서 자꾸 서툰 실수를 하게 되기도 해.
엄마가 그랬단다. 널 너무 사랑하지만 방법을 몰라서..
널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서 혹시 잘못될까 봐 무섭게 혼내기도 하고 실수도 많이 한 거 같아.  
정말 네가 어떨 때 행복한지 즐거운지 너의 마음을 더 잘 들여다보고.. 실수해도 괜찮다 더 많이 안아주고 했었어야 했는데..
그럴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진심 담아 울면서 사과했다.


첫째가 그 말을 다 알아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냥 같이 끌어안고 엉엉 울었었던 것 같다. 아이가 다 이해하고 알아주진 못할 테지만.. 그간의 서운함이 조금은 녹았을런지..

그 뒤로도 비슷한 상황이 되면 매번 진심을 담아 사과를 했다. 첫사랑에 서툰 엄마라 실수가 많았고 너에게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살아보니..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었다고.. 그저 지혜가 생기고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는 건 아니었다.  

좋은 부모 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어 가르쳐주면 좋겠다 싶다. 

사랑하는 마음은 넘치나.. 제대로 사랑할 줄 알아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


최근에 첫째에게 썼던 편지 중 하나를 봤더니 그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사과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실수하고 있으니 그럴 테지 싶다.

"잘하고 있다고 더 칭찬하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다시 해보면 된다고 격려하고.. 그럴 수 있다, 누구나 하는 실수라며 안아주고.. 그런 따뜻한 엄마였어야 했는데..

매 순간 왜 이러냐고 너를 혼내고 다그치는 못난 엄마여서 정말 미안해. 마음 따뜻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가 누구보다 널 많이 사랑하고 또 사랑한단다. 엄마 첫사랑~~"

아직도 나는 그렇게 매번 사과하고 고마워하며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사진출처 : Photo by Nick Fewing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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