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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Sep 05. 2023

누나를 누나라 부르지 못하지만..

"어젯밤에 자려고 막 누웠는데 막내가 자다 깨서 나오더라고요. 화장실을 가려는지 비몽사몽 눈도 못 뜨고 걸어 나오길래 혹시나 하고 화장실 불도 켜주고 괜찮냐 물었더니 막내가 두 팔 벌려 꼭 안아줬어요. "

아침에 깨서 나오자마자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중학생이 된  남동생이 두 팔 벌려 안아주니 기분이 좋았다는 첫째..


정작 막내는 꿈결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잉.. 엄청 감동받았는데.. 기억도 못하냐.."

아쉬워하는 누나에게 막내가 말하길..

"OO(첫째 이름) ~ 내가 기억하는 순간이든 기억이 없는 순간이든 언제나 OO을 사랑해!"

"어머나~~ 스윗해라!"

"우와~~!"

부쩍 말수가 없어진 사춘기 막내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넌 이런 동생 있어 너무 좋겠다 했다. 첫째 눈에도 하트가 막 보였다. 

"이런 누나 있어서 막내 너도 너무 좋겠다!"

막내 눈에도 하트가 가득이다.


어느 날인가..

친구들과 나갔다 온 둘째가 뭔가를 챙겨 왔다며 막내에게 내밀었다.  

"네가 좋아하는 게 있길래 하나 사 왔어. "

"우와 ~~ 고마워! □□(둘째 이름)"

친구들과 모처럼 나간 거라 용돈을 좀 챙겨줬더니.. 막내가 좋아하는 게 보여 자기 안 사고 동생 걸 사 왔다고 했다. 너 필요한 거 사지 그랬냐 했더니 막내가 정말 좋아하는 거라 꼭 사 주고 싶었단다.

"이야 ~ 이런 누나 있어 넌 너무 좋겠다."

"알죠.. 진짜 고마워! □□이 최고야~! "


제부터였을까..

아이들끼리 이야기할 때 영어가 더 편해진 이후론.. 막내는 누나들을 "누나~"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이름을 부른다.


처음엔 "누나"라고 불러야지 하고 타일러 봤다.

"따라 해 봐 ~ 큰 누나!~, 작은 누나!~~ "

"킁 누나~ 자큰 누나~~"

막내는 이렇게 부르는 게 발음하기 어렵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미스터 OO..  미스 ◇◇ 하며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이누나들에게도 이름을 부르는 게 더 편해졌나 보다.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는 많이 친하고 사이좋은 아이들이다. 낯선 나라에 와서 적응해 나가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서로가 제일 잘 알고 같은 마음으로 응원해 온 사이라 더 그런지.. 수줍음 많은 아이들은 서로의 제일 좋은 친구가 되어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의좋은 남매다. 셋이라 참 다행이다 싶다.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 됐는데..

이런 상황이 한국에 가면 이상한 그림이 됐다.

막내가 늘 하던 대로  "OO~" 하며 큰누나 이름을 부르자 깜짝 놀란 할아버지가 동생이 누나 이름을 부르냐고.. 첫째에게 넌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많이 당황하신 게 보였다.


한순간에 감히 누나 이름을 막 부르는 버릇없는 동생이 되고 말았다. 누나에게 버릇없이 행동하는 동생이 아닌데도.. 한참 어린 동생이 누나를 누나라 하지 않고 누나 이름 부르는 걸 한국에선 곱게 보기 어려운 상황일 테니..


물론 할아버진 막내의 성향을 잘 알고 계시니 '누나 이름을 부르는구나 ~'하고 이해해 주셨지만.. 아이를 잘 모르는 분이 보셨다면 괘씸하게 보기 딱 좋은 상황일 거다.



얼마 둘째는.. 학교의 한 한국친구와 너희 집은 이럴 때 어때하고 이야기 나누다가 친구가 깜짝  놀라 갔단다.

친구는 동생이 널 어떻게 불러하고 물었단다. 자긴 오빠가 있는데 오빠라 부르기 싫어서 주로 "야~" 하고 부른다고 하면서.. 서로 "야~" 하고 부른다고..


"내 동생은 내 이름을 불러."

그러자 친구 눈이 갑자기 커지면서..

"대체 너네 집에서 네 서열이 어떻게 되는 거야?" 하고 물으며 황당해했단다.

"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서둘러 그렇게 대답했다는 둘째..


" 친구가 생각하는 그런 게 뭔데? "

그 상황이 당황스러웠다는 둘째 표정이 재밌어서 다시 물어봤더니..

내 동생이 버릇없는 그런 아이가 아닌데.. 누나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이상한 아이로 볼까 봐 그렇게 답했단다. 다른 나라 친구들과는 이런 대화 자체를 안 하는데 왜 한국은 부르는 호칭이 중요한 거냐고..


누나를 누나라 부르지 않는 동생이라..

한국이었다면 감히 있을 수 없는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분명하니..

친구도 황당했으리라..



이제부터 동생이 "누나 ~"하고 불러주면 좋겠냐고 물어봤더니.. 아이들은 그냥 자연스러워져서 금처럼 이름을 불러도 괜찮다고 했다.

무엇보다 "누나"라 부르지 않지만 다정한 동생이라 기분 나쁘지 않다고.. 부르는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이 더 중요한 거 같다고..


셋이나 되니..

혹시 누가 뭘 더 잘하거나 나보다 더 많이 가진 거 같아 샘나거나 속상한 적 있느냐고 물어봤다.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누가 잘하면 너무 기뻐서 같이 손뼉 쳐주고 싶고 내 일처럼 기뻐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우리 서로 다 봤잖아요. 잘하면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요!"


눈물 나게 고마운 마음들이다..

낯선 나라에 갑자기 와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서로의 노력을 함께 지켜봐 왔고 한마음으로 응원하면서.. 크고 작은 어려운 순간들을 어떻게 넘겨왔는지 알기에..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위하게 된 마음들..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예쁜 마음들이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고, 끈끈하게 엮어줄 거라 믿는다.

비록 누나를 누나라 부르지 못하지만..





(사진: 세 아이.. photo by 서소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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