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 많은 애교쟁이 둘째는 다둥이를 키우는 내게 숙제 같은 아이였다. 위, 아래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포지션.. 나 역시 언니와 칠삭둥이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어렵게 살아난 남동생 사이에서 샌드위치로 자랐기에.. 누가 특별히 차별하지 않아도 서운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더 마음이 쓰였다. 게다가 둘째의 말은 숨은 뜻 찾기를 잘해야 했다.
사실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기쁨으로 찾아온 첫 임신은 7주 차에 자연유산이 되었고, 다 내 탓인 것 같은 불안과 죄책감에 다시 임신하기 무서웠다. 아픔에 대한 위로였을까 다행히 금방 임신했고, 임신 기간 내내 그저 건강하게만 해달라고 배를 감싸 안고 다녔다. 그렇게 소중한 첫아이를 만났고 제주로 이주 후 둘째를 임신했었다. 그런데 우리와 인연이 아니었을까..
임신 7주 차에 간 검진에서 아기집에 아기가 안 보인다고 했다. 너무 놀라 말이 없어진 내게 의사 선생님은 유산해 봐서 알지 않냐고.. 바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남편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병원 바닥에 주저앉아 목 놓아 꺼이꺼이 울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한 번은 그렇다 쳐도 두 번이나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지켜주지 못한 아기에게 미안했고 세상 비극은 다 내 몫 같았다.
큰아이가 물었다.
"엄마,왜 동생이 오다 만 거야? 내가 좋은 언니 해 줄 건데. "
아이를 끌어안고 나도 좋은 엄마 돼 줄 건데 하고 큰 소리로 한참을 울었다.
남편은 우리가 첫 임신으로 아이를 낳았다면 지금의 큰아이를 만나지 못했을 거라고.. 그러니 진짜 우리 가족을 만나려고 이런 일을 겪나 보다 생각하자고 위로했었다.
두 번이란 경험은 날 움츠러들게 했다. 임신했다가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건 너무 큰 공포였다. 동생이 생기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공포보다 힘이 셌던지.. 어렵게 찾아온 우리 둘째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산해진미 덕분인지 행복하게 우리에게 찾아왔다.
어렵게 찾아온 둘째의 육아로 정신없이 행복한 탓이었을까.. 셋째가 찾아왔고 놀라고 기뻐한 것도 잠시.. 하혈 증상을 보이며 유산기가 있었다. 경험 있으니 알 거라며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생기다니..
뱃속 아가에게 열심히 말했었다. 엄마가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엄마 되어 줄 테니 부디 꽉 붙잡고 버텨달라고.. 엄마랑 꼭 만나자고.. 그 위험한 순간을 아기가 잘 버텨준 덕분인지 나는 그렇게 세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돌아보니 세 아이 모두 참 어려운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 왔다. 아이들과 동화책을 읽다가 아기나라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왔을까 이야기 나누게 되었는데, 코끼리 기차 같은 아기 기차 타고 왔을까, 황새가 물어다 줬을까, 누가 여기가 좋겠다며 가라고 했을까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세 살 둘째는 하늘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다 이 언니 있는 집에 가면 좋겠다 하고 찾아왔다고 했다. 언니 좋아 왔다고.. 정말 그랬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 와 줘서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리 귀하게 찾아온 아이들인데.. 현실에서 난 약속한 만큼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늘 부족하고 동동거리는 실수투성이 엄마였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기면 부탁해도 될 가족 같던 좋은 지인들을 제주에 남겨두고 갑자기 이사 간 낯선 곳에서 셋째를 낳았고, 얼마 뒤 무시무시했던 신종플루로 온 세상이 혼란이었기에 아이들 어찌 될까 무서워 집에만 있었다. 홀로 세 아이 돌보는 건 많이 힘겨웠고 늘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같이 있는 시간이 긴 만큼 난 내 아이들을 잘 안다 믿었었다.
애교 많고 해맑은 성격의 둘째는 유치원 보내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무난하게 잘 적응해 줄 거라 생각했고 하교 때 데리러 가면 환하게 웃으며 오늘도 재밌었다고, 밥도 맛있었다고 했다. 아이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내 믿음은 그리 믿고 싶었던 바람이었단 걸 알게 된 일이 있었다.
5살 유치원 상담에서 만난 담임 선생님은 만삭의 임산부셨다. 우리 아이가 장난감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그래서 새 장난감이 오면 다른 아이들은 다 달려드는데, 우리 둘째는 그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다. 같이 놀자 하면 그 장난감 안 좋아한다고 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아이가 많이 좋아하는 장난감이었기에 더 의아했다. 말씀하신 날이 언제인가 여쭙고 기억을 맞춰보니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는 활짝 웃으며 재미있게 놀았다 했던 날이었다.
홀로 타지에서 세 아이 돌보는 엄마가 힘들어 보였는지 늘 엄마 힘들지 말라고, 아프지 말라고 하는 둘째였기에.. 뭔가 알 거 같았다. 아이들과 새 장난감 갖겠다고 부딪혀 마음 상하기 싫어 미리 그 자릴 피했을 아이.. 엄마 걱정할까 봐 마음 아플까 봐 재미있었다고 안심시켰을 아이.. 그런 마음을 헤아리다 나도 선생님도 같이 울었다. 아이의 말이 그 의미만은 아니었던 거다. 선생님도 배웠다고.. 좀 더 아이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해 주셨다.
집에 와 물어보니.. 내 짐작은 맞았다. 엄마 걱정할까 봐 그렇게 말한다고 했다. 가끔은 재미없고 집에 오고 싶다고.. 5살 아이.. 내가 갖겠다고 투정 부리는 게 당연할 텐데.. 힘들었다고 외로웠다고 이야기하는 게 당연할 텐데.. 그래도 된다고.. 엄마 걱정돼서 마음 안 숨겨도 된다고.. 말해주며 참 많이 울었다.
그 뒤로도 둘째의 착한 거짓말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제 난 안다.. 둘째의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2학년이 되자마자 싱가포르로 오면서 아이는 열심히 싱가포르가 좋은 점을 찾기 놀이하듯 찾았다. 초록색이 많아서 좋아요, 집에 수영장이 있어서 좋아요 (싱가포르 콘도에는 수영장이 다 있다), 싱가포르 음식이 맛있어요, 달팽이가 주먹만큼 커서 신기하고 좋아요, 집에 도마뱀이 있어서 신기해요.. 정 붙이려고 애쓰는 걸까.. 열심히 좋은 점 찾기를 하는 아이를 보며 낯선 곳이지만, 저렇게 좋은 점 찾기하며 학교 가면 친구들과 뛰어놀면서 잘 적응하겠지 생각했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싱가포르로 와서도 난 여전히 실수하고 있었다.
영어가 부족한 학생들이 수업받는 ESL 반에는 일본 친구들이 유난히 많았고, 한국 친구들은 다 남학생에 우리 아이보다 1살 많은 오빠들이었다. (영국제 국제학교는 한 학년을 학기 시작하는 9월생부터 다음 해 8월생까지 같은 반으로 배정한다) 오빠라고 부르기도 그렇고, 이름을 부르기도 애매하고 아이는 일본 친구들과 같이 밥 먹고 지낸다고 했다. 누구랑 놀았어? 오늘은 어떤 게 기억에 남아? 어떤 놀이했어? 이어지는 내 질문에 아이는 늘 웃으며 잘 놀았어 그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일본 친구들이 같이 밥 먹고 같이 놀지만.. 사실은 아직 영어가 불편한 아이들이 일본어로만 이야기한다는 걸.. 아이는 외롭게도 같이 있으면서 홀로 있었던 거다. 마음이 아팠다. 토닥토닥 안아주며 힘들 땐 힘들다고, 어려움이 있을 땐 어렵다고 이야기해도 된다고.. 엄마는 그런 이야기 들어주고 도와주라고 있는 거라고 말해줬다.
아이의 어려운 시간을 다 안다고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별로 없겠지만, 힘들어할 때 고생 많았다며 따뜻한 손 잡아주고, 쉬어갈 품이 되어주고, 그렇게 다시 걸어갈 힘이 날 수 있게 응원해주는 엄마이고 싶다.
영어와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작은 성장 하나에도 칭찬을 해주신 선생님의 도움도 컸다. 아이가 쓴 에세이를 보여주시면서 And와 But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아이가,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같이 기뻐해 주셨다. 아이들이 이렇게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경험이 얼마나 고마운 기회인지 얘기해 주시는 선생님의 칭찬이 아이에게도 힘이 되었으리라..
시간이 갈수록 둘째는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했다.
“에펠탑이 그냥 기둥인 줄 알았는데, 그 안에 밥 먹는 레스토랑이 있대요.”
“호주에 가면 하트 모양 섬이 있대요.”
“호수 물이 핑크색인 호수가 있대요.”
늘 긴장해 있던 어깨가 펴지고 웃음이 늘어가면서 그리 신기한 곳에 꼭 가보자는 꿈도 생겼다.
세상살이 어떻게 좋은 일만 있고 즐거운 일만 있을까..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 하루하루 머물러 있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분명 어딘가에 닿아 있을 거라고.. 그렇게 손잡고 응원해왔다.
이제 둘째는 “ 오늘도 재미있었어요~ ”라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늘 있었던 일을 통해 어떤 마음이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제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이로 커 가고 있다. 오늘도 난 아이의 말속에 숨은 뜻을 찾으려 귀 기울여 열심히 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