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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하니?”, “OO 춤요.”

by 서소시

“우리 싱가포르로 이사 갈 거야.”

“거기가 어디예요? ”

처음 이사가 결정되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싱가포르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

“지도에서 어디쯤 있는 나라인지 찾아보자.”

함께 펼쳐본 세계지도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나라.. 점으로도 표시 안 되는 작은 섬나라구나 싶었다.


“엄마, 친구들이 싱가포르 어느 도시로 가냐고 물어봐요? 우리 어느 도시로 가나요?”

아이 친구들은 싱가포르가 우리나라처럼 여러 도시가 있다고 생각하고 하는 질문이었다. 싱가포르 자체가 도시국가란 걸 알고 아이들은 대체 얼마나 작은 나라일까 궁금해했다.


궁금한 나라에 막상 와 보니..

정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이층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구경 다니면서 아이들은 왜 이 나라가 점으로도 표시 안 되는 나라냐며 놀라워했고, 세계가 얼마나 크고 넓을지 상상하며 경이로워했다.

정말 다양한 언어가 들려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의상도 다양해서 아이들은 많이 신기해했다. 여기 사는 동안 진짜 싱가포르를 경험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진짜 싱가포르 체험기..

7세에 싱가포르로 갑자기 오게 된 막내는 만 6세, 싱가포르 유치원에선 K2반이라고 했다. (싱가포르는 유아기 나이에 따라 N1, N2, K1, K2로 구분한다. 7세에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


제일 쉬운 일 일거라 생각했던 막내의 유치원 찾기도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참 막막했었다. 주변에 물어보니 외국인은 국제학교 유치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았고, 로컬 유치원은 1월에 학기가 시작이라 5월 중순에 입학을 원하는 상황에서 6월은 방학 기간이었고, 몇 달 밖에 못 다니는 상황에서 영어 못하는 아이를 받아주겠다는 로컬 유치원은 찾기 어려웠다.


동네 아이들이 다니는 집 가까운 곳부터 몇 곳을 막내와 함께 돌아봤지만, 너무나 근사하고 멋졌던 한국의 유치원 시설과 비교되기도 했고, 엄청나게 비싼 학비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게다가 막내는 싱가포르에 와서 물놀이도 자주 할 수 있고 (싱가포르엔 콘도마다 수영장이 있다.) 영어도 잘 모르니 유치원에서 긴 시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막막하던 어느 날, 우연히 이층 버스를 타고 가다 정원이 넓은 유치원을 발견했고 혹시나 하고 들른 그곳에선 오전반, 오후반으로 구분해서 하루 3시간 정도 운영하는 곳이라 방학이 지난 뒤 받아주겠다고 했다. 시간도 길지 않고 막내가 좋아하는 정원 놀이터가 있는 곳이라 너무 감사했다.


하루 3시간 다니며 무슨 큰 경험을 할까 싶었던 이 로컬 유치원에서, 막내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종교가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싱가포르의 참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고 더없이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싱가포르에는 《THE RACIAL HARMONY DAY》라는 날이 있다. 아이 유치원에서 이 날을 축하하기 위해 자기 나라 고유 의상을 입고 전통 음식을 들고 와서 나눠 먹으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행사를 가진다고 했다. 여러 인종이 모여 사니 이런 행사도 있구나 신기했다. 반 친구들도 차이니즈계, 인도계, 말레이계로 다양한 싱가포리언 친구들과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한국에서 올 때 혹시나 싶어 준비해온 한복을 입은 아이는 너무 덥다고 하면서도 한복이 예쁘다며 기분 좋아했다. 아이들이 어떤 한국 음식을 좋아할까 고민이 됐다. 영어도 중국어도 잘 못하는 막내에게 많은 도움을 준 친구도 있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김밥을 말아야 하나, 부침개 같은 전을 해 보낼까 고민하다 막내가 젤 좋아하는 불고기 쌈밥을 준비해서 보냈다. 미니 상추 위에 불고기를 넣은 작은 주먹밥을 얹은 요리.. 사실 처음 준비해 보내는 한국 음식이라 좀 더 든든하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종교적인 문제로 못 먹는 친구들이 있을까 싶어 나름 쇠고기, 돼지고기 두 종류 불고기로 준비해 보냈다. 어떤 재료와 양념이 들어갔는지 작은 메모도 함께..


“너무 맛있게 잘 먹는 친구도 있었고, 하나도 안 먹는 친구도 있었어요.”

심지어 이 요리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따로 연락해 온 엄마도 있었다. 자기 아들이 배워서 해 달라고 했다고..

그런데 할랄 (Halal) 음식을 먹어야 하는 친구들은 고기도 아무 고기나 먹지 않고 할랄 (Halal) 고기를 먹어야 하고 양념까지도 다 할랄 (Halal) 표시된 걸 지킨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래서 그날 이 음식을 못 먹은 친구도 있었다는 걸 알았고 많이 미안했다. 닭고기만 먹는 친구도 있다고 했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가진 아이들이라 이런 행사에 보내는 음식에도 더 많은 배려가 필요했다는 걸 알게 된 경험이었다.

(빵 같은 간식을 보낼 때도 할랄 (Halal) 밀가루인지 체크해 보내야 한다고 한다. 맥도널드에서 나눠주는 케첩에도 할랄 (Halal) 표시가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렇게 조금씩 유치원에 적응할 즈음..

11월 막내의 유치원 졸업이 다가왔고 아이는 열심히 졸업 콘서트 준비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의 재롱 잔치 같은 거구나 싶었다. 귀여운 율동과 합창, 연주 같은 공연일까.. 이 나라 아이들은 어떤 공연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7월에 들어온 막내는 이제 친구들과 좀 친해지려나 싶은 시기였는데 금방 졸업이라니 아쉬웠다. 영어도 중국어도 많이 부족한 아이가 공연 준비를 잘 따라 할 수 있을까 맘이 쓰였다.


친구들과 함께 준비하는 마지막 졸업 콘서트..

“ 넌 공연에서 뭐하니?”하고 물으니..

“ 난 군인요”

“군인?.. 진짜?”

믿기지 않았다. 유치원 졸업 콘서트에 군인이 왜 나와?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고 막상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군복에 베레모을 쓰고 사랑하는 싱가포르를 노래하며, 나름 절도 있게 대열 맞춰 거수경례 동작까지 하며 군인 춤을 추고 있는 막내를 보고 있자니..

어머나.. 우리나라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군인 춤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이어지는 다른 아이들 공연은 다양한 인종을 자랑하는 싱가포르답게 인도 전통춤, 말레이 전통춤, 인도네시아 전통춤, 중국 쿵푸 춤 등 다양한 공연이 이어졌다. 저리 다양한 춤 중에 하필 싱가포르를 지키는 군인 춤이라니..


왜 군인 춤을 춘 건지 나중에 반 엄마들에게 들어보니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로 모든 남자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군 복무를 2년간 해야 한다고 했다. 중학교 (SECONDARY SCHOOL)에도 국가 생도 군단 (NATIONAL CADET CORPS)이라는 CCA (Co-Curricular Activities, 방과 후 활동)가 있다고 했다. 육군이나 공군, 경찰 등의 생도 체험을 하는 CCA 라고 했다. 국방의 의무가 있는 나라가 또 있구나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 어린아이들이 군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며 무대를 꾸민다는 게 생소하기만 했다.


많은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반 친구들을 위해 평생 처음으로 사탕을 넣은 사탕부케를 만들어 가서 나눠 주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틔어도 너무 틔고 말았다. 아무도 꽃다발 하나 안 들고 온 것이다. 이런 문화 차이가.. 우리나라 재롱잔치에선 아이들 이름에 불빛까지 들어오는 화려한 응원판도 만들어 들고 가는데.. 덕분에 코리아 스타일 전파하고 아이들도 많이 좋아라 했지만..


다른 문화 배경에서 자란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은 몰랐던 싱가포르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이야기.. 문화와 종교가 달라 생활 방식이 조금씩 다를뿐,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배워가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유치원생이 군인 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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