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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온 건 배만이 아니었어요.

by 서소시

"나 담주에 싱가포르 가."

"정말요? 진짜죠? 우와~~~"

반가움에 너무 좋아서 자꾸만 확인을 했다.

H 언니였다.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 나는 이름..

낯설고 아는 이 없는 곳에서 가족 같은 정을 나눠주고 혼자 감당 안 되는 어려운 일들을 참 많이 도와준 고마운 언니..


맛집부터 예약하고 어딜 소개해 드려야 하나 마음이 급해졌다. 도착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공항에서 저 멀리 H 언니가 보이니 반가워서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못본새 언니보다 더 키가 자란 딸아이와 함께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를 들고 H 언니가 싱가포르에 왔다.


오자마자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며 큰 캐리어를 열었는데 김장 김치를 한 포기씩 세지 않게 여러 겹 열심히 포장한 김치가 잔뜩 들어 있었다. 어떻게 포장해야 김치를 가져올 수 있는지 고민했는데 안 터져서 다행이라고 했다. 밑반찬도 잔뜩 들어 있었다. 여행 오며 가져온 캐리어엔 날 위한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언니.. 친정 식구도 이렇게 안 와요. 누가 여행 오면서 이런 걸 챙겨 와요?"

울컥해 눈물이 솟아올랐다. 떨어질 거 같은 눈물을 겨우 삼키며 타박하는 내게 언닌 별 거 아니라며 웃어줬다.

'언닌 긴 세월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고마운 H 언니와의 인연은 첫 아이를 임신한 그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 따라 낯선 곳에서 시작한 신혼 생활..

첫 임신 때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유산을 하고 몸도 마음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다 내 탓 같아서..

몇 달 뒤 혹시 임신일까 찾아간 병원에서..

"임신이에요~ 축하합니다. 이번엔 아이가 건강해요. 괜찮을 거예요."

너무도 듣고 싶었던 그 말.. 손이 떨리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이 기쁜 소식을 가족에게 알리면서도 혹시 또 잘못되면 어떡하나 두려웠다. 그리고 일주일 뒤 친정 언니의 둘째 임신 소식을 전해들었다. 가까이 살면 서로 의지하며 같이 태교도 하고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도 잠시.. 입덧이 시작되었다. 세상 처음 경험하는 이 이상한 경험은 좀 심하게 찾아왔다. 얼마나 심했냐면 방 안에서 부엌 냉장고 문만 열어도 그 냄새를 견디지 못해 다 토하고 잘 먹지를 못했다. 엄마 밥이 너무 그리웠고 힘들었다.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려 전화했더니 친정 언니가 병원에 실려갔다고 했다. 입덧이 너무 심해서 물만 먹어도 다 토하고 정말 아무것도 못 먹고 힘들어 했다고..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것도 유전인가 어쩜 둘 다 이러나 싶었다. 돌봐야 하는 큰 아이도 있으니 엄마가 날 위해 와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언니가 나보다 더 심한 상황이니 방법이 없었다. 음식 배달도 잘 안 되는 동네였고 입덧은 심해 어딜 나가지도 못했고, 요리도 잘 못해서 임신 내내 잘 못 먹어 서러움만 커져갔다.


어렵게 임신했는데 그러고 있을 순 없었다.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건강하게 잘 출산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 수소문해서 <임산부 기 체조교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처럼 배가 불룩 나온 만삭의 임산부들을 만날 수 있었다. H 언니도 거기서 만났다. 재밌게도 다들 출산 예정일이 언제냐에 집중해서 인사를 나눴다. 한두 달 사이에 차례대로 예정일이 줄지어 있었다. 모두 첫아이라 낯선 이 경험에 긴장해 있었고 체조를 하면서도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당황해하며 그렇게 열심히 체조를 했다.


어느 날 체조를 마치고 나오면서 누군가 제안을 했다.

"우리 같이 밥 먹고 갈래요?"

한두 명도 아니고 여섯 명이 모두 잔뜩 배불러서 근처 식당에 둘러앉아 그렇게 밥을 먹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 재밌는 광경이었지 싶다. 만삭의 임산부였던 우린 한 번에 앉기도, 일어나기도 시간이 필요했고 다들 뒤뚱거리며 천천히 움직였으니 여섯 명이 단체로 그렇게 움직였을 그날을 돌아보면 그저 웃음이 난다.


그렇게 밥을 먹으며 같은 초보 예비맘이란 공통점으로 즐겁게 대화하던 그때, H 언니가 다음번엔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모두 몸이 불편하니 집이 더 편할 거라고.. 게다가 밥을 해주겠다고 했다. 배가 나와 움직임도 둔해지고 무언가 다 하기 싫은 막달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인원의 밥을 해주겠다니 의아했다. H 언닌 그동안 아는 사람이 없어 너무 외로웠는데 이렇게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생기니 너무 좋다며 집으로 초대했다.


염치없지만 그렇게 우린 H 언니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날 이후 H 언니 집은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갈 때마다 언닌 김치볶음밥도 해주고 부침개도 구워주고, 짜장을 끓여 짜장 덮밥도 해줬다. 언니네 형부가 담았다는 김치도 너무 맛있었다. 여섯 명 중에서도 출산 예정일이 빠른 편에 속한 언니였는데 언니가 해주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미안했지만 매번 언니 집으로 몰려들 갔다. H 언닌 우리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는 어미새 같았고 언니 집은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였다. 언니도 만삭이었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H 언니가 해준 밥 덕분에 행복한 시간이 흐르고, 남편들과 함께 출산 시 필요한 분만 호흡법을 배우며 정말 코앞으로 다가온 '출산'이란 관문에 긴장했다. 첫아이를 만난다는 설렘도 잠시 출산이 무서웠던 우린 며칠 빠른 출산 경험을 전해 들으며 겁을 먹었다. 양수가 터진 줄 모르고 계속 출산에 도움 되는 체조를 하다 위험할 뻔했단 이야기를 듣고 혹시 나도 그러면 어쩌나 긴장했었다.


차례로 그 시간은 찾아왔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무사히 출산한 것에 함께 축하하고 기뻐하며 그렇게 서로를 의지했다. 너무도 닮은 서로의 아이를 보며 얼마나 신기해했던지..


아이를 어찌 돌봐야 하는지 몰라 마냥 헤매면서 다시 H 언니네 집을 아지트 삼아 함께 여섯 아이 뉘어놓고 같이 도왔었다. 이유식 만들면 같이 나눠 먹이고, 싼 기저귀 정보나 육아 정보도 같이 공유하고 아기띠도 다 같이 샀다.

타지에서 홀로 첫아이를 낳고 키워야 했던 내게 H 언니와 기체조 멤버들은 너무도 든든하고 고마운 존재였다.


잊지 못할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하루는 경기도 어느 곳에 기저귀 공장이 있는데 직접 가면 약간의 하자가 있는 불량품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정보를 누가 듣고 왔다. 한 집도 아니고 여섯 집이니 갈만하다 의견이 모였고, 셋은 H 언니 집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고 셋은 기저귀 사러 가자고 했다. 우리 중 운전을 할 줄 알았던 S는 당시 초보 운전자였는데 그리 먼 길은 아니니 같이 가보자 하고 길을 나섰다. 지도를 미리 보고 잘 찾아가면 되겠다 했는데 "어어~~ 안되는데.."만 외치다 고속도로를 타고 말았다. 아뿔싸.. 초보 운전자 S는 직진만 할 줄 알았던 거다. 직진만 하다 부산까지 갈 뻔했다. 차선 변경을 할 줄 몰라 벌어진 일이었다. 손을 뻗어 양해를 구해봐도 차선 변경은 어려웠다. 얼마나 무섭고 당황스럽던지.. 그날 기저귀를 사 왔는지는 기억에도 없다. 한참을 돌고 돌아 겨우 집에 온 것에 감사했다.


언젠가 남편이 갑자기 회사에서 연수를 갔는데 당시 첫째는 많이 예민해서 잘 울고 바닥에 누워 자지 않았다. 화장실 갈 때도 안고 가야 할 정도로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는데 혼자 아이를 밤새 돌볼 자신이 없었다. 그런 상황을 안타까워해준 H 언니는 같이 돌보자며 집으로 오라고 했다. 혼자 돌볼 자신 없던 나는 덥석 "감사합니다"하고 아이를 안고 언니네로 갔다. 우리 때문에 형부는 작은 방에서 불편하게 주무셔야 했다. 얼마나 죄송하던지.. 그리고 감사했던지..


여섯 아이들은 차례로 뒤집고 기어 다니고 잡고 일어섰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성장이란 기적에 같이 기뻐하고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다 아이들 돌 즈음이 되었을 때, 남편들 발령 따라 뿔뿔이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우린 제주로 가게 되었고 H 언니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너무 잘 지내고 있었기에 낯선 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게 두려웠지만 H 언니와 기 체조 멤버들이 있어 다시 떠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세상엔 마음 따뜻한 좋은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해 줬고 나도 따뜻한 마음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마음먹게 해 준 고마운 분들..


그 뒤로도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힘들 때, 어려울 때, 기쁜 일 있을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어미새처럼 따뜻한 밥 해주던 H 언닌 그 뒤로도 언제나 내게 꿈처럼 찾아와 매번 감동을 안겨줬었다. 제주로 내려간 얼마 뒤 둘째 임신했다가 또다시 유산을 하게 됐을 때도 제주로 달려와 따뜻하게 안아주며 위로해 주었다. 언니 품에 안겨 얼마나 엉엉 울었던지.. 그날 언니 품은 참 따뜻했었다.


유산기가 있어 위험했던 셋째를 무사히 낳았을 때도 찾아와서 "내 말대로 진짜 셋을 낳았네~"하며 같이 기뻐해 주었다. 왜 그랬는지 첫아이 낳고 얼마 뒤에 언니가 그렇게 얘기했었다.

"넌 애 셋 낳을 거 같아."라고.. 그땐 하나도 힘든데 그런 엄청난 소리 하지 말라며 소릴 빽 질렀었는데, 정말 그리 되고 보니 신기했다.


싱가포르로 갑자기 발령이 나고 남편이 먼저 출발하고 홀로 짐 싸느라 정신없던 그때도, 요리 재료를 다 챙겨서 짊어지고 기차 타고 와서 따뜻한 한 끼를 차려줬었다. 낯선 나라에 가면 먹기 힘들 거 같아 준비했다며 맛있게 요리해주고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낯선 곳에서도 잘할 거라며 응원해 주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었나 보다! 아님 전생의 내가 언니에게 좋은 일을 아주 많이 해줬던 인연인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어느새 우리보다 쑥 더 커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흘러간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놀랍기만 했다. 의젓하고 대견하게 커준 배꼽친구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모두가 내 아이같고 기쁘고 든든하고 행복했다. 꼬물꼬물 기어 다니던 그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 함께 웃고 있다니..


언니가 만들어주던 어묵 넣은 김치볶음밥이 잊히지 않는다 했더니 그땐 아끼느라 어묵 넣었지만 이젠 돼지고기 듬뿍 넣는다며 더 맛있게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기 체조 멤버들 다 같이 모여서 함께 밥 해 먹고 옛이야기 나누고 싶다며 언젠가 함께 모일 그날을 꿈꿨다.


이렇게 먼 나라에 와서 세 아이 키우느라 애쓴다며 잘하고 있다고 토닥여주던 언니.. 그 따뜻한 진심에 또 눈물이 났다. 정말 눈물 버튼 언니다.


"언니.. 그때 제대로 고마움을 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입덧이 심해 제대로 못 먹고 서러웠던 임신 기간을 보낸 제게 언니의 따뜻한 밥은 그냥 밥이 아니었어요. 배불러서 표는 안 났겠지만 정말 배 불렀어요. 불러온 건 배만이 아니었어요. 마음이 가득 불렀답니다. 정말 고마웠어요."






(사진 출처 : 맘스홀릭베이비/ 네이버 포스트. m.po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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