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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해외여행 어때요?

by 서소시

"당일치기 해외여행 어때요?"

뜬금없는 남편의 제안이었다. "네?"

"이젠 코로나 테스트나 백신 접종 확인서 제출도 할 필요 없고 규제가 다 풀려서 예전처럼 다녀올 수 있다니 오랜만에 가볼까요?"

"오~ 이게 얼마만이죠?"

당일치기 해외여행이라.. 마지막에 다녀온 게 언젠가 헤아려보니 근 3년 만인 거 같다.


잠시 잊고 있었던 그곳..

무슨 해외여행 가자는 이야기를 집 근처 쇼핑몰 가자처럼 쉽게 말하는 이유는 싱가포르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해외, 말레이시아 조호바루가 있어 가능한 이야기다.

싱가포르와 두 개의 교량으로 연결되어 있는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


코로나 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나라마다 국경을 걸어 잠그던 그즈음, 싱가포르와 조호바루의 국경도 굳게 닫혀 버렸다. 엄격한 국경 통제가 시행되면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곳인데 하루아침에 통행할 수 없게 것이다. 그래서 조호바루에서 싱가포르로 출퇴근하던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일자리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가족들과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언제 규제가 풀려 다시 통행이 가능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던 불안한 상황..

(쓰다 보니 6.25 전쟁 직후 휴전선으로 나눠지면서 어제는 갈 수 있었던 길을 하루아침에 못 가게 되고 가족들과 갑자기 생이별해야 했던 이산가족들의 상황은 더 끔찍했을 거 같아 슬프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자주 가는 단골 미용실 직원분도 조호바루에서 출퇴근하던 분이었는데 국경이 닫혀서 일 년 넘게 집에도 못 가고 아이들도 못 만나고 있다는 마음 아픈 사연을 들었었다.

실제로 조호바루에 거주하면서 싱가포르로 출퇴근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대비 싱가포르의 임금이 높고 생활 물가나 집값은 말레이시아가 훨씬 저렴하니 그럴 테다.

얼마 전부터 규제가 풀리면서 예전처럼 통행이 가능하게 되었다니 남편도 오랜만에 가보자 하는 거였다.



싱가포르에서 조호바루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투아스 방면으로 가는 길과 우드랜드 방면으로 가는 길.

( 사진 출처: 구글맵, 왼쪽 교량이 투아스 방면, 북쪽 교량이 우드랜드 방면이다.)

교통편은 기차, 버스, 택시, 자동차 등 다양한 방법이 있고 국경을 통과하는 거니 반드시 여권이 있어야 한다. 싱가포르에 거주비자가 있다면 거주비자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두 나라의 이미그레이션에서 각각 출입국심사, 세관검사, 검역검사를 다 받아야 한다.


여권도 챙겨서 다른 나라로, 그러니까 나름 해외로 가는데 차 타고 다리 하나만 넘어가면 된다는 게 처음엔 참 많이 신기했었다.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본 적이 없었기에 싱가포르와 조호바루를 잇는 다리 아래 바닷길로 국경을 구분하는 선이 가로질러 놓여 있는걸 구글 지도로 확인하면서..

"이야 ~~ 1초 전에 싱가포르였고 지금은 말레이시아에 있어." 하며 얼마나 신기해했는지 모른다.

( 사진 출처; 구글 맵, 투아스 체크포인트에서 다리 건너 가는 길. 두 나라 국경을 가로지르는 선이 보인다.)

"내일 갈까요? 갈 거면 지금 주유부터 하고 와야 해요."

조호바루 넘어갈 정도의 기름이 안되는지 물었더니 싱가포르에서 차로 조호바루를 넘어갈 때는 기름의 3/4을 채우고 가야 한다고 했다. 불시에 검문을 한다는데 만약 기름 양이 부족하면 통과 못하고 싱가포르로 다시 되돌아가서 기름을 채워 가야 한다고.. 이유는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의 기름 값이 훨씬 싸기 때문에 조호바루에 넘어가서 기름을 가득 채워오는 경우가 많아 이를 막기 위한 정책이라고 했다.




다음날, 여권 꼼꼼히 챙겨 3년 만에 조호바루로 해외여행을 나섰다. 모처럼의 해외여행을 축하라도 해주듯 날씨도 화창하고 하늘 위 구름도 아름다웠다. 예전에 종종 왔던 길인데 오랜만에 지나가려니 마음이 이상했다. 이 길을 다시 넘어가는데 무려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니.. 코로나 사태 이전과 이후의 생활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싶어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코로나로 국경이 닫히기 전에는 차가 있으니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자주 갔었다. 워낙 생활 물가 비싼 싱가포르니 주말에도 한 시간 삼십 분 정도만 달려오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쇼핑도 할 수 있고, 같은 식당도 싱가포르 대비 반값보다 싸게 식사가 가능했다. 미용실 가격도 한국 슈퍼에서 장보기도, 맛있는 한국 식당도, 심지어 싱가포르에선 가격이 부담스러워 자주 받지 못하는 마사지도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 가능했기에 시간 내서 넘어오는 게 좋았었다.

레고 덕후인 아이들이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레고랜드도 있고 영화관 비용도 많이 저렴해서 영화 보러도 왔었다.


간단히 비교해보면 최근 조호바루 영화 관람료는 주말 1인 RM $15 (4,500원)이고, 싱가포르 경우 기본 상영관이 주말 1인 SGD $14.50 (13,950원)이다. 마사지샵의 경우도 샵마다 차이가 있지만 60분 발마사지 경우 말레이시아는 RM $65 (19,420원)이고 싱가포르의 경우 보통 60분에 SGD $40 (38,500원) 정도 한다.


지인 중 어떤 분은 아이들이 영화 보는걸 너무 좋아해서 주말 아침 일찍 조호바루로 넘어와 영화 보여주고 밥 먹고 장 봐서 가도 싱가포르에서보다 훨씬 적게 든다며 한주가 멀다 하고 조호바루를 찾는 분도 있었다. 싱가포르와 체류 물가를 비교해보고 아이들과 아예 조호바루로 이주하는 가족도 여러 명 보았다.


그랬던 곳인데.. 3년 만에 가다니..

투아스 방면으로 갔는데 아침 일찍 출발했더니 싱가포르 이미그레이션 통과하는데 30분 정도, 조호바루로 이어진 다리 넘어가는데 10분도 안 걸렸다. 바다 위에 놓인 다리를 넘어가면서 눈앞에 건너편 말레이시아 땅이 보이고 해안가로 맹그로브 나무들이 보이는데.. 그래 저기가 말레이시아지 실감이 났다.

말레이시아 이미그레이션에서 여권에 말레이시아 입국 도장 찍어주는 걸 보면서 우리 진짜 다른 나라에 왔구나 싶었다.

(투아스 체크포인트로 향하는 싱가포르 도로 by 서소시)
(투아스 체크 포인트 by 서소시)
(두 나라를 잇는 다리. 건너편이 말레이시아다. by 서소시)
(다리 넘어오면 가로수부터 다른 모습의 조호바루다. by 서소시)
(조호바루쪽 체크포인트 by 서소시)

차량으로 조호바루를 넘어올 경우엔 내려서 줄 설 필요 없이 창문을 내리고 마스크를 벗어 여권과 동일 인물임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 된다.


넘어가자마자 똑같은 열대 우림 지역이지만 섬인 싱가포르와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잘 가꿔진 싱가포르의 가로수를 보다가 정말 자연 그대로의 풍경, 팜나무를 빽빽이 심은 팜농장과 산이 보이는 풍경 등을 보면서 겨우 다리 하나 넘어왔지만 여긴 정말 다른 나라구나.. 섬이 아님을 체감할 수 있었다. 도로 위에 쿠알라룸푸르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보면서 여기서 차로 쿠알라룸푸르까지 갈 수 있지 싶었다. 차로 네 시간 삼십 분 정도 달려가면 된다. 한 시간 조금 더 전에 싱가포르 집에 있었는데 이미 말레이시아에 와 있다는 게 그저 신기했다.

(팜나무 by 서소시)
(쿠알라룸푸르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by 서소시)
(도로 옆 풍경이 다르다. by 서소시)
( 조호바루쪽 도로 by 서소시)


그렇게 오랜만에 달려와 프리미엄 아울렛에 들리고 자주 가던 AEON 쇼핑몰도 찾았다. 이 쇼핑몰엔 싱가포르와 똑같은 상점이 많이 있고 몰 앞으로 맛있는 한국 식당과 한국 슈퍼가 있어 즐겨 찾던 곳이었다. 이곳 역시 코로나 팬데믹 영향인지 문 닫은 상점이 여럿 보여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대부분 예전 그대로라 여기 이랬었지 하며 반가웠다. 싱가포르 대비 저렴한 가격에 아이들 옷도 사고 맛있는 식사도 하고 모처럼의 해외 나들이라 신나서 즐겼다.

(조호 프리미엄 아울렛 by 서소시)
(다양한 브랜드가 한곳에 모여있어 쇼핑하기 좋다 by 서소시)
(조호바루 AEON 쇼핑몰 by 서소시)


그렇게 3년 만에 반가운 조호바루를 만끽하다 싱가포르로 넘어오는 길에 사건이 생겼다. 오랜만에 조호바루를 넘어오면서 사실 차량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 한 싱가포르인이 고급 차량을 타고 조호바루에 와서 한 쇼핑몰 주차장에 주차해 둔 사이 누군가 차량 바퀴를 빼가는 사건이 있었단다.


우린 싱가포르에서 렌터카를 이용하고 있는데 며칠 전에 렌터카 회사 측 사정으로 이용하던 차가 필요하다며 가져가고 새 차로 교환해준 상황이었다. 바퀴 도난 사건이 최근에 있었던 일이라 고급차는 아니지만 새 차를 타고 가도 될까 걱정이 됐다. 방법이 없으니 일단 타고 넘어왔는데 괜히 주차할 때도 더 밝고 안전한 주차장을 찾아 주차했다. 새 차라 조심한 건데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조호바루에서 싱가포르로 다리를 넘어오면 이미그레이션 통과할 때 차량 검색을 한다. 싱가포르로 반입 금지된 물품을 가져오는지, 무얼 사서 오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라 제법 삼엄한 분위기다. 모든 차량 대상은 아니고 검사하는 분이 지목하면 내려서 트렁크 열어서 확인시켜 주면 된다.


마침 우리 차량 옆으로 다가온 검사원이 트렁크를 열라고 했는데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던 남편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왜 안 열리지?"

무슨 일인지 트렁크 문이 열리지 않았던 거다. 남편이 많이 당황해서 여러 버튼을 눌러보고 수동으로 트렁크를 열려고 시도해 봤지만 고장이라도 난 건지 꼼짝 않고 열리지 않았다. 조금 전 장 본걸 실을 때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새 차라 탑재된 새로운 기능이 많더니 무슨 기능 때문인지 락이 걸려 작동이 안 되는 거 같았다.

그냥 열어서 쇼핑한 물품 보여주고 지나가면 될 일인데 트렁크가 안 열리니 검사하는 분 얼굴이 굳어져서 아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차 문을 열고 구석구석 일일이 검사하기 시작했다. 트렁크 문이 안 열리니 그분 입장에선 의심스러운 상황이었을 거 같은데 우리 역시 많이 당황스러웠다. 보통은 확인 안 하는 차량 안 서랍들도 다 열어보고 가방 안도 다 열어 보여달라고 했다. 지은 죄도 없는데 괜히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마시던 음료도 뭐가 들었냐 묻고 담배 사 오냐며 체크했다. 담배 피우는 사람도 없거늘.. 쇼핑백 안의 물건도 꺼내보며 일일이 확인을 했다. 일부러 뭘 숨긴 것도 아닌데 한참을 잡혀 그렇게 검사받았다. 초행길도 아닌데 이런 일도 있구나 황당했다.


한참을 검사하더니 여전히 못 미더운 얼굴로 가라고 하는데 한편으론 억울하고 많이 당황스러워 통과하면서도 새 차 타고 와서 이게 무슨 꼴이냐며 새 차의 풀옵션 기능이 원망스러웠다. 아직 파악하지 못한 무슨 기능이 있어 트렁크가 안 열렸던 걸까.. 당연한 일이지만 무사히 넘어와서 참 다행이었다.


"국경을 넘을 때 이런저런 위험한 상황이 간혹 일어난다"더란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 마약 관련이나 테러 위험인물 관련해 사건이 생기기도 해서 다리 하나 넘어 국경을 통과하는 거지만 허술하게 보면 안 된다고 들었다. 싱가포르 대비 치안이 안전한 곳은 아니라서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에 갈 때마다 조금은 긴장하고 조심해서 다닐 필요는 있다.


3년 만의 당일치기 해외여행..

나름 다리 넘어 다른 나라 바람 쐬고 올 수 있어서 반가웠고 무엇보다 다시 열린 국경이.. 국경을 걸어 잠그던 그때보다 나아진 현 상황이 반갑고 다행스러웠다.


( 다시 넘어오면서 볼 수 있는 싱가포르 도로 by 서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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