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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뭘 본거야?

(너무 야생인 싱가포르)

by 서소시

도로 위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아무래도 앞쪽에 사고가 났거나 고장 난 차가 있는 건지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른 길로 가는 게 낫겠다 싶어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운전하던 중에 갑자기 앞차가 비상 깜빡이를 켜면서 멈추는 게 아닌가..

'여기도 무슨 일이 있나?'

왜 멈춘 건지 의아해 두리번거렸다. 같이 타고 있던 막내가 밖을 보더니 와우~ 소리를 질렀다. 대체 무슨 일인데 하며 같이 고개를 쭉 빼서 보니.. 한적한 주택가라 좁은 일 차선 도로 위에 원숭이 여러 마리가 앉아 있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떼 지어 도로를 차지하고 있어서 지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급한 대로 비상 깜빡이를 켜고 멈춰서 길이 나길 기다렸다.


열대우림 기후인 싱가포르엔 수많은 야생 동물이 살고 있고 야생 원숭이들 역시 공원이나 나무가 우거진 주택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이 도로도 한쪽 편이 우거진 숲이라 원숭이들이 많이 있나 보다 싶었다. 귀엽다 하고 지나치기엔 그 수가 많아서 살짝 놀랐다. 얼핏 봐도 7마리 정도 보였다.


앞차가 지나가길래 따라서 가보려 했더니 어디선가 다른 원숭이들이 더 많이 다가왔다. 아이구나.. 좀 기다려야겠구나 싶었던 그 순간, 아이와 동시에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우리가 지금 뭘 본거야? 이게 말이 돼?"


정차하고 있던 곳 바로 앞쪽 도로 옆으로 주택에 배부되는 쓰레기 수거용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는데, 덩치가 제법 큰 원숭이 한 마리가 그 쓰레기통 위로 점프해서 한 번에 올라탔다. 제법 기다란 통이라 높이가 높은데.. 그러더니 여유롭게 뚜껑을 양손으로 잡고 척하니 열어젖히는 것이 아닌가.. 제법 무게감 있는 뚜껑인데.. 이 원숭이는 이 통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잘 알고, 마치 냉장고 열듯이 뭐 먹을거 없나 하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어보는 듯 했다.


너무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보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님이 확실했다. 몇 번 시도하다 열거나 쓰레기통을 넘어뜨려서 열었다면 이만큼 안 놀랬을 텐데 천연덕스럽게 앉아서 한 번에 쓱 여니, 막내는 너무 똑똑한 거 아니냐며 어떻게 정확하게 한 번에 여는 건지 신기해했다. 흡사 원숭이 모양 인형탈을 쓰고 그 속에 사람이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자연스러움이었다.


우리가 놀라서 쳐다보고 있으니 시선이 느껴졌는지 쓰레기통 위의 원숭이가 고개를 젖혀 우릴 쳐다봤다.

'뭐 이런 걸 가지고 놀래?' 하는 눈빛이었다. 나 잘하지 하고 의시 되는 거 같았다. <혹성탈출> 영화 속 똑똑한 원숭이를 현실에서 만난 기분이랄까.. 어쩜 저렇게 영리한지..

이 원숭이가 뚜껑을 열자 다른 원숭이들도 쓰레기 통 주위로 몰려들었다. 먹이를 찾으러 나온 건지 아주 적극적이었다. 차 바로 옆으로 원숭이들이 모여드니 움직이지도 못하고 어쩌나 싶은 순간, 그중 한 마리가 우리 차를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더는 지체하고 있기 무서웠다. 너무 많은 원숭이가 있었고 혹시 우리 차 위로 점프해 올라타면 어쩌나 겁이 났다. 잠금 버튼을 눌러 확인하고 천천히 옆 차선으로 크게 꺾어서 차를 움직였다. 마침 지나가는 차가 없어서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사이 플라스틱 쓰레기통은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원숭이들은 열심히 그 속을 열어 뒤지기 시작했다. 가끔 이 도로를 지날 때 쓰레기가 도로 따라 흩어져 있는 걸 봤는데 그때마다 저 원숭이들이 그랬을까 싶었다. 쓰레기통에서 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숲에서 나와 여기서 이렇게 뚜껑을 열고 있나 보다. 이 도로가의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괜찮을까 싶을 만큼 떼를 지어 움직이는 원숭이 수가 많았다. 차에 타고 있지 않고 걸어가다 방금 이 친구들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니 아찔했다. 주택에서 살아보는 게 꿈인 막내는 이 동네는 절대 안 되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진출처 : THE STRAITS TIMES, 도로가의 원숭이들 - 이날 우리가 만난 원숭이들은 더 많았다.)


(사진출처 : THE STRAITS TIMES, 쓰레기통을 뒤지는 원숭이들. 저 키 큰 통에 올라타서 뚜껑을 여유롭게 열더라는..)


무사히 집에 와서 놀란 마음 쓸어내리며 완전 똑똑한 원숭이를 만났노라 이야기했더니, 남편은 직장 동료분 중 한 가족이 이사 간 콘도에는 수시로 원숭이가 찾아와서 창문으로 무언가 집어간다고 했다. 어떻게 타고 올라오는지 층수가 낮지도 않은데 자꾸 와서 창문 열어놓기가 무섭다고.. 이사 가고서야 원숭이 출몰 지역인걸 알아서 창문을 잘 못 열어놓고 산다 하셨단다.

자연이 살아있는 곳이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낮에 만난 그 원숭이들이 불쑥 창문으로 들어온다면.. 크기 작은 도마뱀을 만나도 놀라 난리법석인데 원숭이라니 감당이 안 될 거 같았다. 싱가포르에서 이사 갈 땐 이런 면도 고려해야겠구나 싶었다.




원숭이 떼를 보고 놀란 며칠 뒤, 싱가포르 소식지에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HDB 단지에 나타난 원숭이 떼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다. 한 집 창문에서 나와 줄지어 벽면을 타고 내려가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원숭이들이 마치 잘 훈련받은 특공대 같았다는 기사였는데, 집안에서 저렇게 많은 원숭이들을 만난 분은 얼마나 놀랬을까.. 많기도 정말 많다.

(사진출처: Channelnewsasia.com/ 줄지어 HDB 벽을 타고 내려오는 원숭이들)


싱가포르로 이사 온 후 정말 놀라웠던 것 중 하나가 야생 원숭이를 사람들의 주거지역과 무척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거였다. 야생 원숭이들을 처음 본 게 자연보호 공원 지역이 아닌 어느 버스 정류장이었으니.. 아이들과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우당탕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동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놀라 쳐다봤더니 버스 정류장으로 이어지는 셀터 위 지붕에서 원숭이 두 마리가 서로 쫓고 쫓기며 싸우고 있었다. 야생 원숭이들이 버스 정류장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싱가포르가 정말 신기한 야생의 나라구나 했었다. 그 뒤로도 종종 자연공원이나 조용한 주택가 산책로에서 야생 원숭이를 만날 수 있었다.


(사진출처 : Nparks.gov.sg / The Long-tailed Macaque )


싱가포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원숭이는 긴 꼬리 마카크( The Long-tailed Macaque)라고 한다. 공원이나 한적한 주택가에서 원숭이를 만나면 최대한 거리를 두고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주의를 끌지 않으려고 기다리면서 원숭이가 먼저 지나가길 기다리곤 했다. 갑자기 등을 보이거나 뛰어서 도망치면 오히려 공격성을 자극할 수 있다고 들어서였다. 손에 비닐봉지 같은걸 들고 있으면 원숭이를 더 자극할 수 있다고 해서 안 보이게 가방 안에 넣고 잘 잠갔다. 원숭이들이 경험을 통해 비닐봉지를 음식과 연결해서 생각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면 안 된다고 한다.

야생 원숭이를 만났을 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소개해 보면 아래와 같다.


(사진출처 : Nparks.gov.sg / 야생 원숭이를 만났을 때 하지 말아야 할 행동. )




야생 동물을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이 살아 숨쉬는 싱가포르니 최근 이런 일도 있었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유명한 공원에서 조깅 중이던 어떤 분이 수달 떼에게 공격당해서 다쳤다고.. 보통 수달이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는데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건지, 위협을 느낀 건지 사람을 공격했단다.


우리 집 앞쪽으로 나 있는 산책로에도 수달 떼가 산다. 산책 중에 줄지어 헤엄치는 수달들을 보면서 귀엽기도 하고 자연이 살아 있는 깨끗한 지역이라 이렇게 야생 동물들이 많다 좋아했었는데 사람을 공격했다니..

( 집 앞 산책로에서 만날 수 있는 수달들 )

갑자기 야생 동물이 공격적으로 변한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무사히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을지 잘 알고 있어야 할거 같다.

어쩌면 이 지역 숲의 주인이었을 그들과 공존하며 잘 보존하기 위해 사람들 역시 노력하며 지켜줘야 하는 부분이 있으리라.



원숭이 사진을 찾느라 검색하다 영리한 원숭이에 또 한 번 놀랄 기사를 발견했다. 남아프카 공화국에서 어느 분이 촬영한 영상이었는데.. '정말 내가 뭘 본거지?' 눈을 의심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원숭이가 길에 떨어진 마스크를 집어 들고선 얼굴에 덮어 쓰고 걸어 다니고 있었다. 많이 봐서 자연스레 따라한 걸까? 보고 따라한건가 싶으니 진짜 똑똑하다 신기하면서도 지금의 현실이 마음 아팠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원숭이도 마스크 쓰는 세상이 되었다니..

(사진출처: mothership.sg )


지켜내야 하는 자연..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상 기후 현상을 보면서 무섭기도 하고 걱정도 많아진다. 이제 무엇을 할 거냐고 자연이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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