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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리언은 장기 기증이 의무라고?

싱가포르 HOTA (사진출처; wtffunfact.com)

by 서소시

"엄마, 오늘 학교 수업 중에 선생님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처음 들어본 전 너무 신기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 알고 있는지 선생님과 그 이야기로 토론하더라구요."

학교를 다녀온 둘째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대체 무슨 이야기가 그리 신기했을까 귀 기울여 들어보니 '장기 기증'에 대한 이야기였다.


선생님이 뉴스에 난 기사 중 <장기 기증을 기다리는 환자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아이들이 싱가포르는 덜하지 않냐고 의아해했다고 한다. 왜 싱가포르는 덜하다는 건가 궁금하던 찰나에, 아이들은..

"그런데 왜 우린 장기기증이 의무예요?"하고 질문했다고.. 그러자 선생님이..

"물론 싱가포리언은 장기 기증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니 덜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수가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어서 HOTA가 꼭 필요한 거야."하고 설명하셨단다.


"HOTA?" 그게 뭔가 궁금해하는 둘째에게 옆 친구가..

"HOTA는 Human Organ Transplant Act(인간 장기 이식법)를 말해."하고 알려줬단다.



"엄마, 그러니까 싱가포르인은 HOTA가 의무라는 거예요. 장기기증을 해야 한다구요. PR( permanent residents, 영주권자)도 포함이래요."

"정말? 그런 게 있대? PR(영주권자)도?"

진짜 처음 들어본 이야기라 그게 정말일까, 아이가 잘못 이해한 건 아닐까 싶었다.

그때 신기하다며 흥분해서 열심히 설명하는 둘째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막내가 외쳤다.

"나도 그거 들어봤어!"하고..

아이구나.. 아이들이 싱가포르 학교를 다니니 이런 이야기도 듣는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막내 역시 학교 선생님이 그 이야길 했었다며 더 자세한 설명을 보태기 시작했다. 막내 학교 선생님은 18세가 되었을 때 본인의 의지로 장기기증에 대한 신청 서류에 사인을 했다고 하셨단다. 그냥 기증하는 HOTA가 아니라 특별한 연구나 교육, 실험을 위해 기증을 약속했다고 하시면서 너희도 관심 있으면 생각해 보라고 하셨단다. 그 경우엔 MTERA라고 부른다고 하시면서..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열심히 설명해 준 걸 정리하면, 싱가포르 사람들은 장기 기증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는 거였다.

'정말 이게 의무라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 이곳에서 십 년 넘게 살고 있는, PR(영주권자)인 지인분께 여쭤보았다. 들어 보신 적 있느냐고.. 그런데 그분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하셨다. 살짝 당황해하시면서 로컬 친구분들께 물어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잠시 뒤, HOTA라는 장기 기증 법이 있는 게 맞다고.. 그런데 장기 기증하고 싶지 않을 땐 안 하겠다고 서류를 내면 된다고 하셨단다. 종교적인 이유나 문화적인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힐 수 있다고..

'아~ 그렇구나!'

아이들은 잘 알아듣고 학교 생활 잘하고 있건만 괜히 의심해서 미안했다. 그런데 이런 걸 법으로 정해 의무화하는 나라가 있다는 게 신기하긴 했다.




듣다 보니 더 궁금해져서 조금 더 찾아봤다. 싱가포르에는 두 가지 종류의 장기 기증에 대한 제도가 있었다.


1. HOTA (Human Organ Transplant Act, 인간 장기 이식법)

1987년 도입된 HOTA는 정신질환을 앓지 않는 싱가포르 사람들과 PR(영주권자) 모두 해당되며 21세 이상이 되면 특별한 사유가 없을 시, 사망한 경우 의무적으로 장기기증을 해야 한다는 제도다. 특별 조직 중 특히, 신장 (kidnet), 간 (liver), 심장 (heart), 각막 (corneas) 등 네 가지는 무조건 기증해야 한다. 물론 고인의 장기가 이식에 적합하고 장기에 적합한 수령자가 있는 경우이며, HOTA는 병원에서 발생하는 사망에만 적용된다고 한다. 특정한 한 가지 장기만 기증하고 싶다거나 장기 기증을 거부하기로 선택한 사람은 거부 의사를 밝히는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포기 후 만약 본인이 장기 이식이 필요할 경우 '장기 이식 대기자 명단'에서 장기 이식을 받을 수 있는 우선순위가 낮을 수 있다고 한다.


2. MTERA (Medical Therapy, Education and Research Act, 의학 치료, 교육 연구법)

1974년에 제정된 MTERA는 HOTA와 달리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 결정이며, 국적에 관계없이 18세 이상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모든 개인에게 개방되어 있다고 한다. MTERA에서는 연구, 의료 또는 치과 교육을 목적으로 병원이나 교육기관에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기증하거나, 장기 기증이 필요한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단다.


( 사진출처: SingHelthㅡ instagram )




문득 연구와 교육 목적으로 장기를 기증한다는 MTERA를 보다가, 둘째를 제주에서 출산했던 때가 생각났다. 제주 살 때라 부모님이 미리 와 주실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첫아이를 자연 분만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때처럼 가족 분만실을 예약했다.

"그럼 태 담을 통은 미리 준비해 올 건가요?"

"네? 뭘 준비하라고요?"

지금 뭘 들은 건가 많이 당황했다.

"태반 담을 통을 준비해 올 건가요? 아님 처리 비용을 따로 내셔야 하는데 비용 내시겠어요?"

첫 아이 출산 때 들어 본 적 없는 말이라 바가지 쓰는 건가 싶었다. 조선왕실에서는 태실을 만들어 태반을 풍수 좋은 곳에 정성껏 묻었다는걸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도 아니고 제주서 출산은 처음이라 .. 모를 땐 지인 찬스라고.. 잠시 기다려 주십사 하고 제주 토박이 지인 언니에게 전화해서 물어봤다.


언닌 가족 밭이 있는 제주 분들은 깨끗한 용기에 아이 태반을 담아 와서 좋은 곳에 묻어 주기도 한다고 알려주셨다. 그렇구나.. 그래서 통을 준비해 올 거냐 물어보셨구나 싶었다. 묻어줄 밭이 없어 아쉬웠다. (십수 년 전 일이었지만 참 신기했다. )


이래저래 당황해하는 날 지켜보던 간호사님은 다른 방법도 있다고 알려주셨다.

아이 태반을 기증하는 방법.. 치료나 미용 쪽 연구를 위해 아이의 태반을 기증하겠다고 하면 처리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어차피 버려질 거 누군가를 위해 좋은 뜻으로 이용된다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좋은 일하는 거겠다 싶었다. 그래서 기증하겠다고 신청했다. 그때 기증한 태반은 좋은 일에 쓰였을까..



문득 떠오른 기억 때문일까.. 아이들이 들려준 장기 기증에 대한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나라의 뇌사 기증자 수는 인구 100만명당 10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에선 이런 제도도 있다하니 소개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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