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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줄 친구 상시 대기 중!

by 서소시

"띠링 ~~ "

커피 마시면서 네 글 읽고 있었는데 가든즈 바이 더 베이가 나와 얼마나 반갑던지..


친구 J의 문자였다.

J는 결혼 후 남편의 발령으로 싱가포르로 대만으로, 다시 중국으로 여러 해 계속 옮겨 다니며 지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친구가 드디어 한국으로 들어오던 시점에 내가 싱가포르로 나오게 되었기에 언제 가까이 살아보냐 했던 우리의 바람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J가 보내준 문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맙게도 부족한 내 글을 읽어주며 그냥 일상의 이야기인데 재미있단다. 싱가포르에 갑자기 오게 됐을 때 친구는 내게 좋은 책을 여러 권 선물해 줬었다. 경험해보니 막상 외국에서 살면 우리글로 된 책이 많이 그리웠다면서.. 와서 보니 친구의 선물은 참 요긴한 선물이었다. 역시..

책 좋아하는 친구의 칭찬이라 기분이 더 좋았다.


최근에 있었던 황당하고 속상한 일 때문에 힘들다고 했더니 친구도 답답한 일이 있어 심란해 나왔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한데 문자로 대화하려니 답답해서..

"아~ 당장 통화해야겠구먼~" 했다.

밖이라 긴 통화면 어렵다는 친구 말에 문득 추억의 장면이 떠올랐다.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있던 커피점 기억나?"

"기억나지~ 좋았었는데.. 그때가 그립네!" 하며 그렇게 또 웃게 된다.

(삐삐 있던 옛날 옛적 그 시절엔 호출하면 전화 통화가 가능하게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놓여있던 커피점이 인기였다.)




사람 사는 게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답답하다고..

문자에 실려오는 친구의 마음이 무겁구나 싶었다.


멀리 있어 늘 말뿐이지만, 행여 속상하고 어려운 일 있으면 같이 울어줄 친구 상시 대기 중이라고 전했다. 물론 울 일 없이 행복하길 늘 바라지만..

농담처럼 가볍게 전했지만 혼자 외롭다 느끼지 않길 바라는 진심이었다. 네 옆에 나 있어~ 그런 마음이었다.


늘 혼자 멀리 산다는 건.. 경험해보니 참 아쉬운 게 많았다. 그럼에도 세상이 좋아져서 외국에 앉아 이렇게 친구와 대화도 나눌 수 있고 통화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 역시 지난해부터 힘든 일들이 줄줄이 엮여서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하고 끊임없이 강펀치를 날려오는 기분이었다. 하나 넘으면 더 큰일이.. 또 겨우 넘으면 더더 큰일이 줄지어 밀려왔다.

어쩜 이래 싶을 만큼..

잠시 쉴틈도 안 주고 밀려오는 힘든 일들에 지칠 때면 고마운 지인들과 통화하며 지혜를 구했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한 발 밖에서 보면 조금 더 현명한 조언을 해줄 거 같아서..


남의 이야기라도 들으면 답답하고 머리 아픈 이야기에 고맙게도 같이 마음 아파해 주고 속상해하며 울어줬다.

낯선 나라에서 마음고생 많다고..

같이 울어주는 그 마음이 지친 내게는 너무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때 알 수 있었다.

같이 공감해주고 마음 아파해 주고 안타까워하며 울어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멀리서 홀로 버티고 있는 내게 그보다 더한 응원은 없었다. 힘든 일 맞다고.. 울어도 된다고.. 그렇게 알아주는 기분이라 맘 놓고 울 수 있었다.


그 뒤로 나도 지인들에게 이야기한다.

당신을 위해 울어줄 친구 상시 대기 중이라고..

당연히 울 일보다 웃을 일이 많길.. 늘 행복하길 바라지만..




친구 J를 만난 건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였다. 고3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마음 무겁고 긴장되던 그 시기에 우리 담임 선생님은 정말 열정적인 분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엄격하기로 유명한 무서운 선생님이었다.


당시 살던 동네에서 통학 차량을 구하지 못해 먼 통학 거리에 힘들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왜 그렇게나 가파른 비탈길 위에 있는 건지.. 그중에서도 우리 학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경사를 자랑하는 학교였다. 무거운 가방에 야쟈를 위한 보온 도시락 두 개까지 메고 등교하다 보면 가뿐 숨을 몰아쉬다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긴 하루를 어떻게 버티나 앞이 아득했었다.


오랜 시간 대기하다 고3 때 겨우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담임 선생님은 점심시간에 기숙사로 점심 먹으러 가는 내게 고 3이 누가 점심시간에 밥 먹냐며 엄청 혼내셨다. 쉬는 시간에 밥 다 먹고 점심시간에는 공부해야 한다고 당장 기숙사 나오라고 하셨다.

(천주교 재단 고등학교라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기숙사가 학교 안에 있었다. 등교하느라 지치지 않을 수 있고 식사 때마다 맛있고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얼마 뒤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집합해서 점심시간에도 보충 수업을 하셨고 그 시간에 빠지는 걸 용납하지 않으셨다. 아침 메뉴를 싸와서 쉬는 시간에 다 먹고 점심 보충 수업은 꼭 들으라고 하셨다. 기숙사생의 특권인 따뜻하고 맛있는 점심은 그렇게 안녕이었다.

열정적인 선생님은 우릴 위해 그러셨겠지만 잠시 쉬어갈 여유도 없어 많이 힘들었다.


한 친구는 평일 저녁에 예배드리러 가야 한다고 야간 자율학습을 한번 빠지겠다고 했다가 선생님께 얼마나 혼났는지 모른다.

그 어떤 예외도 고 3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던 선생님..

그 시절엔 대학 입시를 위한 성적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게 인생 최대의 결승점인 것처럼..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처럼..

(지금은 조금 달라졌을까?)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어느 대학을 가느냐에 따라 미래의 남편 얼굴이 달라진다고도 하셨다. 이게 무슨 가만히 있는 남편 얼굴 다시 쳐다보게 하는 말씀인지..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 분위기에서 보낸 고 3 시절..

친구 J는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잃었고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무 일 없어도 많이 힘든 고 3 시기에 소중한 어머니를 잃은 친구에게 어떤 위로를 전해야 할지 그땐 잘 몰랐었다.


J 어머님 49재 날..

담임 선생님은 친구에게 학교로 돌아와서 야간 자율학습을 다 하라고 했다. 고3은 공부해야 할 때라고..

그날 하늘이 얼마나 슬픈 빛이었던지..

어떤 위로도 건네지 못했기에 더 마음 아픈 날이었다. 힘들었을 친구를 생각하면 지금도 먹먹해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때인지..

어느 날 J는 찌개 끓이는 법을 배우고 싶어 했다. 아버지에게 따뜻한 식사를 차려 드리고 싶다고.. 그래서 우리 집으로 갔다. 엄마는 우리에게 간단하게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끓이는 방법을 보여주며 가르쳐 주셨다. J가 멋지게 성공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틈틈이 J가 잘 있는지 안부를 물으신다. 어쩌다 찌개가 맛있게 끓여진 날이면 나도 가끔 J 생각이 난다.



제주에서 두 번째 유산을 하고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다 어렵게 다시 둘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본사 출장을 다녀오던 남편은 공항에서 우연히 내 친구 J를 만났다고 했다. 친구는 시댁 식구들과 제주 여행을 오던 중에 우연히 남편과 같은 비행기를 탄 거였다.


너무 보고 싶었는데 왜 연락도 안했냐며 서운해하는 내게, 제주 사니 손님이 얼마나 많았을거냐며 시댁 식구들과 함께 와서 조용히 다녀가려고 했다는 친구 J..


부랴부랴 약속을 잡고 잠시 만날 수 있었는데

첫 아이 낳고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엄청 힘들었다던 친구는, 둘째를 임신했단 소식에 나를 꼭 안아주며 울어버렸다.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둘을 힘들어서 어찌 키우려고 그러냐며..

'그럴 만큼 첫 아이 육아 때 혼자 많이 힘들었구나..'

말하지 않아도 가늠이 돼서 마음 아팠다. 나도 그랬으니..


그랬었는데..

지금 친구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고 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다. 세상 일 참 모를 일이다.

여전히 멀리 살지만 아이들 커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답답한 어려움도 나누며.. 들어주는 네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며 서로에게 의지 중이다.


세상 무서울 거 없던 꿈 많던 시절에 만나 어느새 누구의 엄마란 이름이 더 자연스러운 나이를 거쳐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친구가 있어 그저 고맙다.

별 탈 없이 아프지 않고 평안하길 늘 응원하지만..

혹시라도 힘들 땐 잊지 말라고 힘줘 말한다. 진심으로 같이 울어줄 내가 상시 대기 중이라는 거!







(사진 출처: Photo by. Joseph Pear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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