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의 존재를 언제 알게 됐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매해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괜히 안 하던 심부름도 한번 더 하고, 청소며 설거지를한 번이라도 더 도우면서 행여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잠 못 들고 설레어했었다. 그럼에도 우리 집엔 산타 할아버지가 찾아오시진 않았다. 다른 나라의 풍습이라 우리나라까지 오시긴 무리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섭섭함을 달랬었다.서운함보다 어딘가 정말 산타가 있길 바라는 마음이 컸나 보다.
산타와의 추억 없이 어른이 되었지만 선물 같은 세 아이의 부모가 되고 보니저절로 산타 할아버지 대행을 하게 됐다.진짜 산타 할아버지는 많이 바쁘실 테니 우리가 대신하는 거라 생각하며..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게 부모의 자리였다.
"더 큰 선물을 받는 아이가 더 착한 아이인 건가요?"
유치원으로 찾아오신 산타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셨는데 평소 욕심 많고 짓궂은 친구가 제일 큰 상자를 받자 첫째는 속상해하며 울었었다.
(부모님들이 미리 유치원으로 선물을 보냈었는데 유독 그 아이 선물이 컸다.)
산타 할아버지가 왜 낮에 유치원으로 오시냐며 그것도 이상하다 했었다.
아이가 선물을 받고 행복해할 시간이 좀 더 오래오래 이어졌음 하는 바람에 많이 바쁘실 산타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도와주러 오신 산타마을 요정님일 거라 하얀 거짓말을 했었다. 선물이 크다고 더 값진 선물일리 없다고 위로하면서..
친구들이 산타 할아버지는 없다고, 부모님이 산타라고 말했다며 울고 온 해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산타의 존재를 믿어야 그 순수한 마음의 힘이 모여 산타 할아버지가 힘이 날 거라고 달랬었다. '가디언즈' 영화를 보며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기에.. 그래서인지 우리 집 세 꼬맹이들은 산타 할아버지와 12월 크리스마스를 손꼽아가며 기다렸다.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아이들은 참 다양한 꿈을 꾸었다. 무언가 받고 싶다는 소원도 있었지만 무엇이 되고 싶단 소원도 있었다.
유난히 공룡을 좋아했던 막내는 공룡이 되고 싶다고 했다. 산타 할아버지가 마법사는 아니라며 달랬었나 보다. 그후론 공룡 선물이면 너무도행복해했다. 공룡 책이든 공룡 인형이든공룡 옷이든..
그러다가 그런 걸 어디서 사는지 아는 나이가 되었을 땐 산타 할아버지가 'O마트'를 선물로 주시면 좋겠다며 바랐다.
(고작 다섯 살 아이에겐 세상 모든 게 다 있는 곳이 'O 마트'였던가 보다.)
이런 통 큰 녀석을 봤나.. 혹시 산타 할아버지가 'O마트'를 선물 주시면 엄마에게도 맛있는 거 다 공짜로 가져갈 수 있게 해 주겠노라 큰소리쳤었다.
(그럼 나도그 소원 이뤄지길 원하오~ )
황당하면서도 아이다운 소원에 푸하하 많이 웃었다. 얼마나 참신한가.. 어떤 장난감 하나가 아니라 그런 장난감이 가득 들어있는 마트채 받고 싶다니.. 이뤄줄 수 없어 아쉬울 뿐이었다.
첫째가 1학년땐산타 마을로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었다. 편지를 보내면 답장을 보내 준다는 걸 어디선가 보고 아이와 열심히 편지를 썼었다.
(핀란드 산타마을로 편지를 쓰면 해당 언어로 자원 봉사자 분들이 답장을 보내주신다는 걸 듣고 아이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산타가 보내주는 답장이라니 얼마나 근사한가..)
글을 못 깨우친 둘째도 삐뚤빼뚤 잔뜩 튀어나와 엉망이었지만 크레파스로 열심히 산타 할아버지를 그린 편지를 보냈다. 커다란 하트와 함께..
그렇게 보낸 편지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 지나가도록 답장이 오지 않았고, 일 년 중 제일 바쁜 시기이니 답장도 조금 늦어지는 걸 거라며 조금 더 기다려보자 달랬었다. 아이들도 산타 할아버지 힘드시겠다며 안타까워했고 잘 기다려줬다.
오랜시간이 흐르고 따뜻한 햇살 가득한 5월의 어느 날, 드디어 답장이 왔다.
설레어하며 열어본 편지..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첫째도 나도 너무 기대한 탓인지 많이 실망하고 말았다.
<보내준 편지 잘 받았고 너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길 바란다>는 간단한 내용이 한글로 프린트된 편지였다. 아이가 실망한 건 둘째도 똑같은 편지를 받았다는 거였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궁금한 걸 많이 질문했는데 그대답이 없으니 정말 내 편지를 읽으신 건지 모르겠다며 슬퍼했다.이렇게 프린트된 똑같은 편지가 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너무 기대했나 보다. 슬퍼하는 아이를 안아주며 너무 바쁘시니 일일이 질문에 답해주기 어려웠을거라며 위로했었다. 그래도 산타마을에서 답장받은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며..
그런 시간들을 거쳐..
낯선 나라 싱가포르에 온 이후론 모든 게 낯설고 따라가기 힘든 공부를 하며 이곳에 적응하려 애쓰면서, 의지가 되어줄 친구도 없이 외롭고 버거웠을 아이들을 위해.. 산타가 더 절실히 필요할 거 같았다.
노력하고 애쓰며 외롭게 버틴 시간들을 산타 할아버지가 지켜봐 주시고 다알고 있으니.. 산타의 선물이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 줄 거 같았다.
산타의 존재를 믿고 안 믿고, 선물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노력하고 힘들게 버텨온 그 시간들을 누군가 다 알아주고 있고.. 애썼다며 토닥여주는 거 같은 위로가 되는 선물.. 그런 위로가 또 다른 한해를 버티는 큰 힘이 되어 주었으면 했다.
그렇게라도 아이들을 위로하고 싶었나 보다.
아이들의 바람을 다 들어줄 순 없었지만 산타가 전하는 응원과 위로가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름 노력했었다.
그런데..
올해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면서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었다.
남편은 그만 아이들에게 산타의 존재를 알리자고 했다.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을 거라며..
물론 알고 있겠지만.. 그냥 산타를 빌려 아이들의 노력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렇게 아이들과 마주 앉았다.
가장 슬퍼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첫째였다. 자긴 오랜 시간 큰 위로를 받았는데.. 동생들에게 미안하다며 많이 슬퍼했다.
둘짼 아쉬움이 크지만 엄마, 아빠일 수 있겠다 싶었다며 이해해줬는데..
막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라며 진정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 아빠에게 고맙다고..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가 큰 의미였기에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라고했다.
조금 더.. 위로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다. 슬퍼하는 아이를 가만가만 토닥이며 안아주다가 앞으론 우리가 다른 누군가의 산타가 되어주자고 약속했다.
힘든 시간 앞에 열심히 하루하루를 잘 견디며 버텨낸 누군가에게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그동안 애썼다고.. 대단하다고.. 그렇게 위로하고 응원하자고..
힘겨운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그런 산타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산타를 대신해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가.. '행운의 편지' 같은 류로 여기면 어쩌나 싶어 망설여졌다.
그래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분들께 먼저전해드려보자 싶었다.
산타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신.. 열심히 올 한 해를 달려오신 분들에게 조금 늦었지만 산타 대신 전해 드립니다.
"애쓰셨어요.. 당신의 노력에.. 수고에.. 노력하며 달려오신 그 시간들에 감사하고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