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이다! 이곳에 다시 오는데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나 긴 시간이 지났다니.. 싱가포르로오기 전에 잘 다녀오겠다며 아쉽게 작별 인사를 나눈 게 마지막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사는 동안 간간이 방학 때 한국에 들어왔지만 각기 다른 학교에 다니는 세 아이들의 방학 시기가 다 달라서, 겹치는 기간을 맞추려면 늘 짧은 일정만 가능했다. 들어오면 지방에 계신 시부모님 댁으로 가야 했고, 그동안 못 간 병원 진료 다니기 바빴다. 정작 우리가 살았던 곳은 돌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여기 오는데 8년이란 시간이 흘러 있었다. 너무 그리웠던 분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많이 변해버린 내 모습을 못 알아보는 건 아닐지.. 오래만의 겨울이 춥기도 했지만 너무 설레어서 자꾸만 동동거리고 있었다. 일이 있어 이곳에 잠시 들릴 거라고 소식을 전했더니 모두들 귀한 시간을 내서 먼 길 달려와 주겠다고 하셨다. 다들 일하느라 바쁜 분들인데 그중 두 분은 월차까지 내고 와주시는 길이었다.
잠시 뒤 커다란 차가 멈춰 섰고 스르륵 창문이 열렸다.
"와 ~~ 언니들 ~~"
반가워서 비명이 절로 나왔다.
너무 보고 싶었던 그리운 얼굴들을 보자마자 8년이란 시간은 실감 나지 않았다. 반가움은 그 긴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서 그 시절로 우릴 데려다 놓았다.
'어쩌나.. '
줄지어 서 있는 아일 지켜보려니 긴장된 마음에 조마조마했다. 내 불안이 안겨있던 막내에게도 전해졌던지 막 울음을 터트리려고 했다.
'제발 ~ 지금은 아니란다.'
엉덩이를 토닥이며 이리저리 움직이면서도 제일 뒤쪽에 서서 얼어있는 아이를 향한 시선은 거둘 수 없었다.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식..
제주에서 갑자기 이사 와서 친한 친구를 만들지 못한 채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된 아이는 잔뜩 긴장한 채 겁먹은 얼굴로 서 있었다. 아는 친구가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의지되고 좋았을 텐데..
이사 오자마자 바로 막내가 태어났고 갑자기 '신종플루'란 무서운 질병으로 온 나라가 얼어붙던 시기라 꼼짝없이 세 아이와 집에만 있다시피 하며 겨울을 보낸 이후라 아이도 나도 이 동네가 낯설고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웠다.
초등학교 입학하면 친구가 생기겠지 했던 내 바람은 쉽지 않은 꿈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유치원 친구, 어린이집 친구, 같은 단지 친구, 교회 친구 등등으로 친해진 단짝 친구들이 있었고 방과 후엔 학원 가느라 바빠 보였다. 수줍음 많던 첫째는 눈에 띄는 사투리 탓에 아이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부끄러워했다.
제주에서 너무 잘 지냈었기에 이곳에서 우린 외로웠다. 그렇게 아이도 나도 고향도 아닌 제주를 향한 향수병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 된다며 속상해했다. 한 친구가 영어도 잘하고 일본어도 잘하는데 선생님이 그 친구를 일어나라고 해서 십 년 후가 기대되는 친구니 박수 치라고 하셨단다.
"왜 그 친구만 십 년 후가 기대된다는 거죠? "
아이를 안고 힘줘 들려줬었다.
"누구에게나 십 년이란 시간은 긴 시간이고 수많은 기회를 만나고 변화를 겪기에 충분한 시간이니 당연히 반 친구 모두가 다 기대되고 말고! "
외로운 아이 마음에 이 일은 마음 아픈 일로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친구들은 못하는 게 없었다. 그림도 잘 그리고 피아노도 잘 치도 영어도 잘하고.. 그동안 학원을 제대로 다녀 본 적 없던 아이는 모두 다 잘하는 친구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더 위축되었고 나 역시 우리 아이가 많이 부족한가 조급함을 느꼈었다. 그 조급함은 아이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느린 아이라 스스로 적응하고 잘해 나갈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 줬어야 했는데 나는 많이 부족한 엄마였다.
그럴 즈음.. 반 대표 엄마였던 J 언니는 아이들이 모두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셨다. 반 친구들과 엄마들을 집으로 초대해 주신 거다. 그 많은 인원을.. 그렇게 서로 알아갈 장소와 시간을 만들어주신 J 언니의 큰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지금 돌아봐도 그저 감사하다. 첫째만큼이나 낯가리며 쭈뼛거리던 내게 다정한 손길 내밀어주신 고마운 분들이 오늘의 멤버들이다.
그렇게 모인 엄마들은 세 달 단위로 생일인 아이들을 모아 '단체 생일 파티'를 해서 반 아이들이 모두 모여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자 하셨다. 일하는 엄마가 못 와서 그 아이가 소외되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그렇게 세 달에 한 번씩 반 아이들이 모두 모여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함께 뛰어놀면서 서로를 알아갈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친해질 수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수줍음 많던 첫째도 그렇게 조금씩 친구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제 막 친해져서 너무 즐거웠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그곳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1년! 첫짼 이곳에서 겨우 1년 같이 공부했고 다시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었다. 어쩌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수 있었는데 고마운 엄마들은 늘 안부를 물어봐주고 아이들 커가는 모습을 함께 공유하며 자주 못 봐도 따뜻한 정을 전해주며 그렇게 소중한 인연을 이어주셨다.
아이들은 방학 때 함께 모여 시청 앞에서 스케이트도 타고 놀이동산에도 같이 가며 추억을 만들었고 엄마들도 그렇게 반가운 만남을 이어왔다. 우리가 갑자기 싱가포르로 오고 난 이후에도 그동안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 사진과 함께 반갑고 그리운 엄마들 사진도 보내주셔서 함께하지 못했지만 함께인 듯 그렇게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사진 좀 봐. 신기하게 애들이 여기 다 있어. 얘가 OO이 맞지?" 하며 H 언니가 사진을 보여주셨다. 어머나~ 어쩜 이 한 컷에 아이들이 다 있는지.. 앞친구에 살짝 가려졌지만 울 첫째였다. 귀염뽀짝한 입학식날 아이들의 앳된 모습을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오기 전 제일 걱정했던 H 언니는 여길 오려고 면역 주사도 맞고 왔다고 했다. 추운 날 먼 길 와야 해서 걱정했는데 건강해 보여서 너무 감사했다. 언니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고맙다고 했다.
못 본 시간 동안.. 어떻게들 지내셨는지 종종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얼굴 보고 손 꼭 붙잡고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자꾸 눈물이 솟구치는 걸 참느라 무던히 애썼다.
"그거 알아? 우리 모임 이름은 <OO초 엄마들 모임>인데 이 학교를 졸업한 아이는 오직 Y 한 명이라는 거!"
모두 중간에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음에도, 아이들 때문에 학부모로 만났지만 엄마들이 다 너무 좋은 분들이라 이어지고 있는 모임!
이분들이 계셔서..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고작 1년을 함께했고 또 8년이나 멀리 떠나 있었는데..
오랜 시간 동안 고맙게도우릴 잊지 않고 챙겨주고 지금까지도 안부를 전해주며이렇게 먼 길 달려와주신 마음에..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의젓하게 잘 자란 아이들.. 마음 따뜻한 엄마들.. 긴 세월 좋은 인연으로 이렇게 반갑게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멀리 떠나 있기에 내겐더 많이 고마운분들이었다.
그동안 있었던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 전에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었다. 조금씩 전해 들어 안다고 생각했는데.. 긴 시간 동안 다들 저마다 너무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다고 하셨다. 경제적으로 큰 고비를 넘긴 분, 많이 아파 큰 수술을 받은 분, 아이가 겪은 어려움으로 마음 고생 하신 분, 아이가 크게 다쳐 놀랐던 분..
그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 잘 견디고 버텨냈는지를 들려주시는데 마음이 아렸다.커다란 어려움에 맞서 멋지게 잘 이겨내고 계신 모습들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모두들 담담히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힘든 시간이 지나가면 이렇게 웃으며 그랬네 이야기하는 날이 오더라며 당장의 어려움 앞에 잘 견뎌보자 응원해 주셨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잘 견딘 서로를 안아주고 토닥이며 칭찬하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했다. 오랜 시간 함께 아픔을 나눈 정은 모두를 가족으로 만들어 놓았나 보다.
오래 못 만나도 잊지 않고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주고 그리워해주고, 다시 만날 때 더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이길 응원하는 따뜻한 인연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일인가..
멀리서 왔다고 맛있는 밥 사주시는데 자꾸 목이 메어서 잘 먹지 못했다.고마움에 자꾸 울컥해서.. 사실 귀한 시간 내서 날 위해 멀리까지 만나러 와주신 게 감사해서 저녁을 사려고 했는데 눈치 빠른 M 씨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아이와 내 선물에 정성 가득한 손편지까지 써주신 M 씨의 고마운 마음..
잊지 않아 줘서.. 반가워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전하며 결국엔 울고 말았다.
너무도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숙소까지 데려다주셨는데 뒤돌아서며 또 울고 말았다. 다음 만남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길 바라보며..
다시 만날 때까지 예쁜 아이들과 함께 모두 건강하시기를 행복하시기를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J 언니, H 언니, M 씨, J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