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끝났으니 마일로 드실래요?

(싱가포르에서 수술을 받다니..)

by 서소시

스르륵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의료진이 이동식 침대를 밀고 나왔다. 벌떡 일어나 누워 있는 이를 확인했다. 조금 전에 들어갔으니 당연히 아닐 텐데도 혹시나 했다. 스쳐 지나가는 그 환자분이 하루빨리 좋아지시길 떨리는 마음으로 응원했다.


눈앞에 보이는 글자가 분명 '수술실'이란 뜻이기에 꿈같은 이 상황이 현실임이 분명한데, 자꾸만 깨고 싶은 나쁜 꿈속 같았다.

흘러내리는 눈물은 참으려고 해 봐도 소용이 없었고 쓰고 있던 마스크는 젖어가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흘깃 쳐다보셨다. 진정해보려 휴지로 꾹꾹 눌러봐도 고장 나 버린 듯 멈추기 어려웠다.

(수술실 앞에서.. by 서소시)


잠시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의료진의 안내를 받으며 휠체어를 탄 여성과 보호자로 보이는 남자분이 내렸다. 그들은 수술실 앞에서 간단한 안내를 들으면서도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수술실 문이 열리자 뜨겁게 키스를 나누며 인사했고 그렇게 홀로 남겨진 남자분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서양 커플은 인사도 다르구나..

'아.. 나도 뽀뽀라도 한번 해주고 나올 걸..' 후회가 됐다.


조금 전 병실에서 이동식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내려왔을 때 어쩐 일인지 의료진은 나도 같이 수술실 안 대기 공간 같은 입구 쪽으로 잠시 들어갈 수 있게 배려해줬다. 와국인이라 그랬던 건지..


이동식 침대 주위에 커튼으로 공간을 가린 곳에서 잠시 대기 중이었는데 잔뜩 긴장한 탓에 그 공간이 너무 춥게 느껴졌다.

누워있는 남편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솟구쳤지만 울 순 없었다. 잡고 있던 남편 손만 더 세게 쥐었다.


의료진은 와서 이름을 확인하고 먹는 약이 있는지, 수술한 적 있는지, 임플란트 한 적 있는지 등을 체크했다. 수술 전 마지막 식사는 언제 했는지, 약에 대한 부작용이 있는지도 물었다. 순간 나중에 마취 깨서 정신없을 때 저렇게 의료진이 영어로 물으면 영어로 답할 정신이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됐다. 많이 아플 텐데.. 같이 있어줄 수도 없는데..


다른 의료진이 와서 같은 질문을 또 했다. 어~ 방금 물었던 질문인데 왜 또 묻는 걸까 싶었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이 질문을 의사, 간호사 등 다 다른 사람이 세 번씩 묻고 맞는지 서명하고 수술실 들어갔다고 했다.)


그렇게 잠시 있다 이제 들어가야 한다며 내게 나가서 대기하라고 했다.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떨리는 마음으로 남편을 안았다. 금방 다시 만나자고.. 잘 될 테니 걱정 말라고..


한번 더 안아주고 나올걸.. 저렇게 입맞춤이라도 해주고 나올걸.. 안타까웠다.

수술실 밖에서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 안에 누워 있을 남편은 얼마나 무서울까 싶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심각했던 2021년..

우연히 남편이 아픈 걸 알게 되었고 급하게 수술해야 한다는데 한국으로 가서 수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긴 격리 기간이 있던 시기였고 예전처럼 병원 가기 쉬운 상황이 아닐 때였다. 지체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 급하게 수술하게 되었지만 싱가포르에서 수술할 일이 생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수술실 앞에서도 로맨틱한 서양 커플 때문에 흐르던 눈물은 조금 진정이 됐다. 저들도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수술받기 어려운 상황이 있나 보다 싶었다. 여기서 급하게 수술하는 외국인이 우리만은 아니구나 싶어 조금 안심도 됐다.


수술실 앞 복도 소파엔 나 외에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자꾸 우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복도 끝으로 가면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수술 끝나면 안내 전화가 오니 여기 있지 말고 어디든 가서 맘 편히 있으라고.. 참 감사했다. 본인도 가족을 수술실에 보내고 긴장되실 텐데 마음 써 주셔서..


이미 안내받은 내용이었지만 불안해서 도저히 수술실 앞을 떠날 수 없었다. 해외 살이 여러 해 경험하며 많이 씩씩해졌다 싶었지만 수술은 또 처음이라.. 수술실 문이 열릴 때마다 혹시 남편 때문인가 싶었고 그 앞을 지키고 있어야 할거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술실 앞에 어떤 안내판도 없었다. 한국 병원엔 보통 수술실 문 옆에 환자 이름과 함께 <수술 중>이란 안내가 표시되어 있었던 거 같은데.. 여긴 아무것도 없었다. 몇 시간 걸릴지도 모르고 중간에 어떤 위급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그냥 문 앞에 있어야 할거 같았다.


아주머니도 떠나고 조용해진 공간, 조용해지니 더 긴장이 됐다. 이럴 때 같이 안아주며 함께 기다려줄 가족들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해외살이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새삼 마음이 무거웠다.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혼란이었고 한국도 병원에서 방문자를 제한하던 상황이었다. )




고요한 적막을 깨고 갑자기 수술실 문이 열렸다. 혹시나 하고 황급히 일어났는데..

어머나! 아기였다. 갓 태어난 신생아..

신생아 분만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닌 건가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수술실로 갓난아기가 나오다니..

반대편 복도에서 달려온 아빠로 보이는 분이 기뻐하며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렇지.. 이곳은 이런 곳이지.. '

열심히 살아온 삶 중 얻게 된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는 곳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도 하는 곳..

긴장됐던 마음이 작고 소중한 생명을 보는 순간 조금은 편안해졌다. 학교에 가 있는 세 아이가 눈물 나게 보고 싶었다. 저렇게 작았었는데..

방금 새 세상을 만난 저 아기도 늘 행복하길..


잠시 열린 틈으로 날 본 건지.. 아까 수술실 안에서 잠시 봤던 간호사님이 왜 아직 여기 있냐며 수술 끝나면 전화로 알려준다고 하셨다. 아는데 그냥 여기 있고 싶다고 했더니 다시 한번 바로 연락 줄 테니 편한 곳에 있어도 된다 하셨다.

아는데.. 발이 안 떨어졌다.


한국에서 같은 마음으로 애태우시며 보내오는 가족들의 문자나 전화도 받기 어려웠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못할 만큼 긴장하고 있었기에.. 병원 안내 전화도 놓칠 거 같았다. 그래서 더 수술실 앞을 지켜야 할거 같았다. 간절한 내 응원이 남편에게 닿기를 바라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수술실 문이 열리고 수술복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나왔다. 처음엔 너무 긴장해서 우리 담담 의사 선생님인 줄도 못 알아봤다. 수술 상황을 사진까지 보여주며 설명해 주시는데 사실 다 알아듣진 못했다.

"He's ok lah~." (히즈 오케이라~)

그 말만 정확히 알아들었다. 그 말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고맙다고 고맙다고 계속 인사했다.

남편은 병실에 가면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이곳 역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병실이 부족했고 겨우 자리가 난 게 6인실이었는데 병실에서 만난 남편은 애써 씩씩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괜찮다고.. 수술 잘 됐다고 눈 뜨자마자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고.. 그런 남편이 너무 안쓰러웠다.

고생 많았다며 꼭 안아주었다. 그냥 눈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고마웠다. 이런 게 고마울 줄이야..




잠시 뒤 간호사분이 오셔서 저녁 식사 종류를 예약하라고 했는데.. 당장은 따뜻한 마일로를 마실 수 있다며 먹겠냐고 물었다.

"방금 수술했는데 물도 아니고 마일로를 마실 수 있다고요?"


그러고 보니 참 신기했던 것 중 하나인데, 싱가포르에서 초코맛 마일로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싶었다.

호커센터 음료 코너에서 마일로는 인기 메뉴고 마일로 위에 추가로 마일로 가루를 더 올려놓은 '마일로 다이너소어'란 음료도 있다.

학교에서도 행사 있을 때 나눠주는 게 마일로였다. 친구들이 생일 때 반 친구들에게 돌리는 작은 선물 묶음에도 마일로가 자주 들어 있었다. 병원에서 내시경 같은 검사를 받고 나오면 주는 역시 마일로였다. 싱가포르에서 출산한 지인은 갓 출산한 후에 마일로를 줘서 마셨다고 했었다. 이쯤 되면 국민음료일지도..


역시나 남편에게도 따뜻한 마일로를 가져다줬다. 수술 후 마일로라니..

게다가 옆자리 할아버지는 중국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계셨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싱가포르에서 수술한 이 상황이 꿈이 아닌 진짜 현실이니 어서 정신 차리라고 알려주는 거 같았다.


정신 차리고 열심히 치료받아 하루빨리 회복될 수 있게 도와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렇게 수술받을 수 있어서 또 얼마나 다행인지..

걱정 말라며 괜찮다고 희미하게 웃어주는 남편을 다시 안아줄 수 있어 그저 감사했다. 코로나 사태 병실에 보호자가 있을 수 없었고 같이 있어줄 수 없는 게 너무 마음 아팠다.


갑자기 싱가포르로 오게 됐을 때..

했던 수많은 걱정 중에 혹시 가족 중 누가 많이 아프면 외국에서 어쩌나 했었지만..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진 몰랐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삶이라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무너져서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순 없었다. 문제를 바로 알고 마음 다잡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야 했다. 우리 가족뿐인 외국에선 더..




우리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고맙게도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힘겨웠던 그날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가깝게 지내는 YJ 씨가 아이들 저녁에 먹을 게 없을까 봐 조금 만들었다며 도시락을 전해주셨다. 도시락엔 맛있는 반찬이 많이도 들어 있었다. 여기서는 귀한 얼린 홍시 디저트도 있었다. 따뜻한 응원 한가득 들어있는 도시락을 안고 그 마음이 고마워서 또 눈물이 났다. 덕분에 아이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홀로 병실에 있을 남편이 걸려 마음 아팠지만..


(날 울린 YJ씨의 마음... by 서소시)


무섭고 외로웠던 수술실 앞에서의 그 하루가 어쩌면 무너져 내리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감사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 삶인걸..








(사진출처 : Photo by Nica C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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