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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덕분에 버텼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방법)

by 서소시

<브런치>에 글쓰기..

외국에서 살다 보니 사실 <브런치>란 글쓰기 공간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

매번 답 없는 문제들로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듯 뱅뱅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는 기분..

왜 이상한 일들은 나한테만 일어나는 건지..

잘하고 있는 건지.. 이렇게 헤매어도 되는 건지 막막할 때 친정 언니에게 답답함을 토로했는데, 하루는 그런 경험들을 한번 써보라고 했다. 흔치 않은 경험이니 재밌을 거라고..

그렇게 언니를 통해 알게 된 <브런치>..


싱가포르에 와서 경험한 일들을 하나씩 돌아보며 '이런 어려움도 있었구나~', ' 이런 멋진 추억도 있었구나~' 하며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다 보니 꽤 잘 버텨 왔구나 싶었다. 그 마음이 지친 내게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글쓰기 덕분에 가장 어려웠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올 한 해 제일 잘한 일이 <브런치>에 글쓰기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버텨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올 한 해를 버틸 수 있었기에..




2021년..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코로나 사태로 모두가 힘들었던 그때..

우리 가족에게도 너무 힘들도 어려운 시간이었다. 해외살이에서 제일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나라 간 이동이 어려워졌고 문을 걸어 잠그는 나라들이 늘어나던 그때..

한국에 가려면 가기 전 코로나 PCR 테스트하고 도착해서 또 테스트하고, 한국에서 2주간 격리해야 했다. 다시 싱가포르 오기 전에 또 코로나 PCR 테스트하고, 여기 와서 또 하고.. 무엇보다 당시 싱가포르에 돌아오면 집도 아닌 호텔에서 2주간 격리해야 하던 때였다.


무엇 때문인지 연초부터 이상하게 몸이 아프고 뭔가 불안했다. 혼자 이런 증상이면 어떤 병인가 검색해보다 더 불안해졌다. 당장 한국에 가고 싶었지만 전 세계 상황이 심각하니 갈 상황이 아니었고, 그래서 해마다 하던 건강검진도 2년째 못하고 있던 때였다.


왜 그럴까 겁이 나서 간단한 기본 검사라도 해봐야겠다 싶었고 혹시나 하고 남편에게도 같이 해보자 권했다. 감기도 잘 안 걸리는 건강 체질이었던 남편은 자긴 괜찮다며 검사를 거부했었다. 나중에 한국 가서 건강검진 받겠다고..


그래도 이왕이면 기본 검사 정도는 같이 받길 권했는데.. 걱정했던 내가 아니라, 정말 말도 안 되게 남편 건강에 문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장 스페셜리스트(전문의)를 만나러 가라며 약속을 잡아주는데도, 별일 아닐 거라며 약 먹으니 좋아지는 거 같다며 약만 조금 더 받아 가자던 남편이었다.

(그때 그 검사를 안 했었더라면.. 그때 스페셜리스트를 만나러 가지 않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섭다. 지나고 보니 하루라도 빨리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


이게 무슨 일인가 놀라서 찾아갔더니 스페셜리스트는 몇 가지 검사를 더 진행했고 당장 며칠 뒤에 바로 수술하자고 했다.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된다고..

싱가포르에서 수술이라니..

당장 한국으로 갈래도 격리 시간만 한 달을 보내야 하고, 당시는 코로나 사태로 병원이 다 마비되던 시기라 너무 오랜 시간이 지체될 거 같았다. 방법이 없어 여기서 그렇게 급하게 수술을 해야 했다.


다 싸서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그해에 첫째는 고3이라 대학 진학을 위한 IB 과정의 마지막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고, 막내 역시 PSLE 시험이 있어서 다 내려놓고 짐 싸서 당장 한국 들어갈 상황도 아니었다. 아이들의 중요한 시험을 챙겨주고 도와줄 여력은 없었지만 시험을 다 포기할 상황도 아니었다.




건강은 자신하던 남편이었기에 남편도 나도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눈앞이 깜깜했지만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에서 수술한대도 겁먹을 상황인데 머나먼 타국에서 수술을 하게 될 줄이야..


갑자기 더 낯설게 느껴지는 타국에서 내가 남편의 보호자가 되어 수술실에 들여보내려니 너무 무서웠다. 수술하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어쩌나..

보호자도 한 명만 허락되는 상황이었기에 홀로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며 제발 무사히 끝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그렇게 남편을 기다리며 얼마나 울었던지..

의사 선생님이 나와서 수술 잘 되었다고 하는데도 혹시 못 알아듣고 놓친 말이 있을까 너무 긴장해서 그 뒤로 무슨 말을 더 주고받았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병실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는데 너무 마음 아팠다. 울면 더 속상할 거 같아 울음을 삼켰다. 그나마도 코로나 상황이라 보호자가 병실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옆에 있어 줄 수도 없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많이 무섭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텐데 겁먹은 내게 애써 의연하게 보이려 애쓰던 남편을 보면서 내가 무너지면 안 될 거 같아 더 마음을 다잡았다. 지켜야 하는 가족이 너무 많았기에..

아이들 놀랄까 봐.. 남편이 너무 상심할까 봐..

하루라도 빨리 발견했고 바로 수술했으니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감사하게 생각하자며 씩씩한 척했다. 그리곤 혼자 숨죽여 참 많이 울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됐다는데도 얼마 뒤 추가로 한번 더 수술을 해야 했고 그 뒤로도 추가적인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아픈 남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스스로 너무 원망스러웠다.




제일 힘든 건 아픈 사람일 거라 무너지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한 채로 한 해를 버텼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한고비 넘겼구나 하고 긴장이 조금 풀리는 순간, 홀로 참고 버티느라 애쓴 마음이 사실은 힘들었노라.. 너무 아팠노라 울부짖었다. 지친 마음을 추스를 무언가가 절실했다.

혼자 속 끓이며 가슴 졸이던 2021년을 보내고 겨우 숨 쉴만할 때 <브런치>를 만난 거였다.


그저 이곳에서의 추억을 쓸 뿐인데..

글을 써내려 가면서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 주던지..

그동안 시행착오 참 많았지만 이렇게 노력해왔고.. 이만큼 잘해 왔구나.. 열심히 크고 작은 어려움 잘 넘어왔구나..

그렇게 나를 다독이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브런치>가 참 고마웠다.


지금까지 잘 버텨낸 만큼 앞으로도 계속 잘 걸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더 지난 어느 날, 지금처럼 그때 힘들었지만 잘 버텼지 하며 또 하나의 위로가 되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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