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열어본 메일에는 가든즈 바이 더 베이에서 <BBC Earth Screening Festival>이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고 이건 꼭 가야겠다 싶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싱가포르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큰 행사는 모두 취소되었었는데 최근 3년 만에 하나둘씩 다시 열리고 있다. 백신 접종으로 상황이 조금씩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꺼려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가든즈 바이 더 베이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니 꼭 가보고 싶었다.
올해로 문을 연지 10주년이 되는 가든즈 바이 더 베이..
싱가포르를 여행 오면 꼭 봐야 한다는 많은 관광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곳이라 가족이나 지인이 오면 꼭 찾아가는 곳이다. 해 질 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돗자리를 챙겨 가든즈 바이 더 베이를 찾았다. 가든 랩소디 (Garden Rhapsody)라 불리는 아름다운 조명쇼를 보기 위해서였다. 매일 저녁 7시 45분과 8시 45분에 두 차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조명쇼를 신나게 즐기는 방법은 누워서 보기다. 슈퍼트리 그로브 (Supertree Grove)와 마리나 베이 샌즈가 보이는 방향을 앞쪽으로 두고, 왼쪽 끝으로 가면 아담한 잔디밭이 보인다. 슈퍼트리 바로 아래에는 사람도 많고 거기서 앉아 보기보다 이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춤추는 조명쇼를 누워서 보고 있으면 꿈속 같이 행복해졌다.
처음 부모님이 오셨을 때도 나란히 잔디밭에 누워 조명쇼를봤었다. 이곳이 진짜 천국인 거 같다며 너무나 좋아하셨던 엄마..
시즌에 따라 음악도 달라지는데 그 덕에 자주 찾아도 질리지 않고 언제 봐도 황홀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 가든 랩소디 by 서소시 )
아름다운 조명쇼가 열리는 슈퍼트리는 깔때기 모양의 캐노피로, 높이 25~50미터 사이의 우뚝 솟은 철제 위에 놓인 강철 나뭇가지와 콘크리트 줄기로 되어있다. 10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이 나무들은 난초, 양치류, 꽃 덩굴 등 약 200종의 착생식물이 줄기에 설치된 패널 위에서 자라는 ‘수직정원’으로 멋지게 변화하고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나무지만 살아있는 나무처럼 매일 성장하고 자라는 식물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 슈퍼트리 앞 잔디밭에서 영화 상영을 한다니.. 제일 좋아하는 곳에서 영화를 볼 생각에 얼마나 신나던지..
BBC Earth Screening Festival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Frozen Planet II>라는 자연 다큐멘터리였다.
(사진 출처: www. gardensbythebay.com.sg)
돗자리에 먹을 간식거리를 챙겨 신난 마음에 달려갔더니 잔디밭엔 이미 많은 가족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기나긴 줄이 늘어서 있었는데 하나는 무료로 나눠주는 아이스크림을 받기 위한 줄이었고, 다른 하나는 천 가방에 스탠실로 영화 속 동물을 꾸며 볼 수 있는 체험 줄이었다.
해지기를 기다리며 아이들을 위한 만화 블루이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잠시 뒤 주인공 블루이가 깜짝 등장해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어디서 왔는지 사람들 머리 위로 수많은 제비들이 날아다녔다. 내일 비가 오려는지.. 날아다니는 제비 구경하느라 둘러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들 잔디밭에 편하게 모여 앉아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먹으며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조금 더 어두워지자 눈앞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 슈퍼트리 아래 영화 보기 by 서소시 )
영화는 우리 행성의 1/5을 덮고 있는 얼어붙은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경이로운 생명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생존을 위한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놀라운 방법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아름다운 별빛 아래 잔디밭에 편하게 누워서 영화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든즈 바이 더 베이에서 지구의 환경변화를 고민하게 하는 영화를 보고 있자니 왜 이곳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는지 알 거 같았다.
싱가포르가 자랑하는 이 아름다운 정원은 아름다운 조명쇼를 무료로 볼 수 있고 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큰 유리온실이 있는 곳, 그 이상의 멋진 곳이다.
한때 이 자리는 바다였고, 매립된 모래와 눅눅한 흙으로 뒤덮인 곳이었다면 누가 믿을까..
5년 만에 백만 개 이상의 식물이 살고 있는 푸르른 녹지 공간으로 탈바꿈한 이 정원은 놀랍도록 친환경적인 곳이다.
가든즈 바이 더 베이에는 클라우스 포레스트 (Cloud Forest)와 플라워 돔 (Flower Dome)이란 두 개의 유리 온실과 슈퍼트리 그로브 (Supertree Grove)가 있다. 이 정원을 지을 때부터 에너지와 물의 지속 가능한 사이클을 계획하고 설계해서 친환경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한 노력이 빛나는 곳이다.
간단히 소개해 보면..
(사진 출처 : www. gardensbythebay.com.sg)
#1. 두 개의 유리 온실은 많은 양의 특수 유리 시트로 구성되어 식물의 건강을 위해 햇빛을 통과시키고 열은 반사한다. 특별한 센서 작동 블라인드는 지붕이 너무 뜨거워지면 그늘을 만들고 내부 환경을 시원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온도 조절을 위한 자동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2. 플라워 돔에는 바닥 내에 시원한 수도관을 설치해 가장 낮은 수준의 공기를 식히는 한편, 뜨거운 공기는 정상에서 배출된다.
#3. 싱가포르 여러 정원에서 버려진 나무 같은 원예 폐기물은 목재 칩으로 변해 바이오매스 보일러를 통해 증기를 발생시킨다. 이 증기가 터빈을 회전시켜 정원에 전기를 발생시키고 냉방 시스템을 위한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로써 에너지 소비의 30%를 절감했다고 한다.
나무 조각의 재는 토양의 질을 향상하는 것을 돕기 위해 정원의 식물에 뿌려진다.
#4. 슈퍼트리는 두 개의 온실에 대한 공기 배출(실제 나무의 생태 기능과 비슷하다)의 역할을 하고, 캐노피 위쪽에 있는 11개의 태양 전지는 태양 에너지를 수확한다. 이 에너지는 밤에 조명 쇼에 사용된다. 빗물까지 모으는 멋진 트리다.
(슈퍼트리의 태양전지. 사진 출처 : www. gardensbythebay.com.sg)
얼마나 멋진 시도인가..
인공적으로 만든 정원이지만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려고 한 친환경적인 노력이 빛나는 곳.. 그래서 더 싱가포르에서 꼭 봐야 할 곳으로 강력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지구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일 수 있기를 희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