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by yun

제일 먼저 이 글을 완성하고 나서

다른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하지만 이미 쓴 글을 지우거나 고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의 소개나 머리말이 되어야 할 글이지만

미래에 쓸 어떤 글보다 가장 솔직한 글이 될 것 같다.


우선 하루키의 소설에 대한 탐구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가끔씩 내 안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키에 대해서 너의 생각을 정의하라고.

넌 이거 해야만 한다고.

마치 기사단장의 죽음에서 주인공에게 얼굴 없는 남자가

찾아와 자신의 얼굴을 그려달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옛적 먹은 핀잔도 잊지 못할

동기가 되었지만 이 속삭임은 그보다 더 집요했다.

그 속삭임은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받은 문제집만큼이나

불쾌했다. 하지만 내 안에서 나오는 소리였기에 거부

할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 흑역사가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불킥을 한 경험쯤은 다들

있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잠을 청하다가 '근데

하루키는 왜?'라는 생각과 함께 잠을 이루지

못한 밤들도 있었다.


길고 긴 굴욕과 핍박, 잠 못 이루는 시간 속에서 결국엔

미숙할지라도 내 나름의 답을 글로 표현하게 되었다.

이건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한걸음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겐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내 안의 작은 아이가

속삭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전보다 더 빈번하고도 더 크게.

사실 그전부터 계속 내 안에서 나오고 있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내가 듣기 시작했을 뿐.

경위야 어찌 되었건 이제는 계속해서 들린다.


이 '내 안의 작은 아이'를 밈으로 만든 반페르시에게 맨유로

이적하고 나서는 그 아이가 잠잠해졌냐고 묻고 싶은 만큼

답답한 기분이다. 이대로는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끝나지

않을 문제집을 평생 풀어야 할 것 같으니.


나도 한 때는 나름의 계기로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 나의 열정과

꿈만으로는 그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외면해 버렸다.


한 때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그 이후로는 차갑게 식어버리는

냄비처럼 살아왔다. 내가 열정을 가진 것이 단순한 즐거움을 위한

것이든 뭔가 생산성이 있는 것이든

내 안에서 어떠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뒤돌아서 다시는 보지 않았다.

이런 나의 삶에 대한 형벌일까.


왜 내 안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가? 에 대해 묻는다면

그것은 굉장히 무섭거나 어렵거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대답하겠다.

요사이 노래를 배우고 있는데, 이를 예로 들어 보겠다.

노래를 배우려면 일단 노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아는 노래가 몇 개 없으니

프로들의 노래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고도 멋진 곡들을 고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생에게 발성, 즉 소리를 내기 위한 방법들(호흡, 복부의 압력,

몸의 사용 등등) 배우고 더 잘하기 위해 다양한 노래를 듣고 그 듣는걸 더 잘 듣기 위해

스피커와 좋은 이어폰을 사고 내 목소리가 어떤지 듣기 위해서 녹음기를 샀다.

그 결과 나는 먼지만큼 가벼운 자존감과 천금만큼 무거운 영수증을 얻게 되었다.


보통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귀가 조금이나마 열리게 되고 지식을 얻게 되고

자기 자신의 수준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즉 꿈은 저 하늘이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사실을.

결국 밑바닥을 체감해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건데 그 밑바닥을 알게 되면서

얻게 되는 것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앞으로 가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즉, 말을 길게 끌긴 했지만 난 유약한 사람이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속삭임에 시달리고 있지만 무시하고 무시하다 보면 안 들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야 문제집의 한 장을 풀었고, 그 문제집의 목차를 훑어보고 있는 중이다.

이 속삭임과 함께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모른다. 그동안 학습 된 뒤돌아 보지 않은 채

도망갈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무미건조한 삶 속에서 조금은 모험이란 걸 떠나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모험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만 그 끝에서 밑의 사진처럼 웃고싶다.

존나좋군!.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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