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한국의 각색 비교와 전독시, 재벌집 막내아들의 각색 실패를 보며
본인이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게 있다.
본인은 매우 화가 많은 사람이란 사실을 말이다.
이 사실을 밝히는 건 https://v.daum.net/v/20251015060419349 기사 때문이다
본인이 국내 다른 작품들을 다루기 위한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이기사를 발견했다.
그리고 화가 매우 날 뻔했지만 다른 전문적이나 대중적 명성을 가진 이들의
시각을 찾아보고 겨우 화를 멈출 수 있었다.
이 기사대로면 최소한 위기의식은 갖고 있구나 정도지만 왜? 에 대한 탐구가 없다.
왜 일본은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게 되었는가?
왜 전지적 독자시점, 재벌집 막내아들은 각색작은 문제가 있는가?
따라서 난 이런 부분을 따져 보기로 하겠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본 각색
'왜 일본이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게 되었냐'는
'왜 일본은 애니메이션으로 각색을 잘하느냐'로 물어봐야 한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그 유사성과 문법의 구조가 비슷함도 있지만
덕후 경력이 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90년도 초중반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매 분기마다 쏟아지는 애니메이션(분기마다 최소 10개 이상
많으면 20개 이상 쏟아진다)들 절대다수가 만화나 라이트노벨, 게임 등의
각색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는 원작의 팬덤을 애니메이션으로 유입시키고 애니화로 팬들의 수를
증폭시키고, 그 팬들을 다시 원작에 접근시켜서 판매량을 높이는
사업적 방식이기도 하다. 이는 투자 리스크를 줄이는 제작위원회의 방식이다.
이런 업계적 환경 속에서 제작자들은 각색의 산더미 속에 실패한 작품의
시체더미를 뒤져가며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현재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소설 만화는 한 명 혹은 몇몇 사람들이 작품을 만든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감독 연출 원화가 성우 등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역할을 맡고 이를 애니화라고 하는 작업을 거쳐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점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더 성공하기 어렵다.
일본은 업계의 관련인들이 수십 년 동안 감독은 감독으로서
연출은 연출로서 원화가 성우 등등이 각각의 자리에서 이 각색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깊이 연구했고 실전을 겪으면서
나름의 성공 방식이나 애니 각색의 문법을 안정화시켰다고 봐야 한다.
간략히 성공 사례를 보자면
k-on은 본디 4컷 만화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작품의 가진 장점이나
캐릭터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 애니메이션화가 원작의 존재감을
완전히 지워버린 수준의 성공이다.
공각기동대도 원작자인 시로 마사무네도 유명하지만 따져보면 오시이
마모루가 원작의 진지한 메시지를 기초로 다듬어낸 공각기동대 애니가
횔씬 유명하다는 점에서도 과거 애니화 각색의 대표적인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현대의 귀멸의 칼날은 앞서 소개한 일본의 사업적 성공방식의 교과서라고
칭할만한 사례이다. 애니메이션이 만화 원작이 가진 장점을 잘 살려냈고
더하여 관계자들을 압도할만한 연출과 영상의 퀄리티를 내보였다. 이는
애니화가 원작의 위상을 바꿔놓았고, 이는 원작 도서의 판매량까지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서 원작의 호흡을 잘 살려내는 분할 쿠르 방식이 나오고
원작의 연출을 초월하거나 빈틈을 잘 보완하는 방식의 본즈, 유포터블, 마파
등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경향성이 일본 애니 업계적으로 창작력 저하 등의 문제가
일어난다고 생각, 애니 원작을 장려하며 근본을 잃지 않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과거 마법소녀 마기카 마도카가 이 장려 끝에 나오고 애니 사이코패스 등의
등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역사를 보면 각색은 결코 쉬운 게 아니며 현재의 유포터블이나
마파등의 성공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도 원소스 멀티유즈등으로
나름 각색을 활용하려 하는데 그 경험이나 원작에 대한 이해, 영상화 혹은
드라마 영화화로 변형할 때의 약점과 강점조차 꿰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했다는 각색들 절대다수는 원작의 체급이나 완성도가 높거나
(미생, 무빙, 어서 오세요 천리마마트)
각색화를 담당한 감독이 역량이 우수하거나 원작의 강점을 잘 살리면(d, p, 곡성 등)
괜찮지만 특히나 서브컬처적 원작을 둔 경우 질적 저하가 극심하다.
(전지적 독자시점, 재벌집 막내아들 등등)
어차피 저 소개한 기사로 내용을 소개했으니 다음은 전지적 독자시점과
재벌집 막내아들의 각색은 왜 실패했나?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
영상화로의 각색에 대해서
앞에서 다뤘듯, 일본은 애니메이션화에 있어서 경험도 많고 이 경험을 통해 나름의
시스템화를 체득했다고 보인다.
물론 그럼에도 현재도 수많은 각색 실패작들은 계속 누적되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원작의 강점과 그 원작의 장르에
대한 파악이다. 일본의 비주얼 노벨, 게임, 라이트 노벨 등은 대다수 방대한 분량을
갖고 있고 시간을 들여 이해해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각색에는 제한이 붙는다. 소위 말하는 어른의 사정으로 제한된
제작비와 시간이 영상화의 관건이다. 이는 원작에서 버리거나 빠르게 처리할 부분을
골라내고 강조하거나 살릴 부분을 살려서 치환할 장르로 어떻게 완성도 있게 '구현'할
것이냐에 대한 시스템과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작의 장르성 특성과 이에 맞물린 원작의 강점과 약점 등을 철저히
분석해야 버릴 부분과 남길 부분의 기준을 명확히 세울 수 있다.
하다못해 각종 롤을 수행하는 참여자들의 머릿속에 이러한 목표를 위한 각자의
역할에 대한 나름의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더한다면 감독이나 특히 중요하다
생각하는 스태프들의 중요 역량과 특성까지 파악해서 섭외를 해야 한다.
(감독이라고 해도 모든 장르와 해당 분야의 모든 문법을 구사할 수 없다.
과거 신카이 마코토는 시간, 거리, 그리고 연인의 감정을 다룬 테마를 바탕으로
내밀한 감정을 드러내는 별의 목소리,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초속 5 센티미터를 만들어 냈고
나름의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별을 쫓는 아이라는 거대한 주제와 이야기를 다뤘을 때
무슨 이야긴지 모르는 괴작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위의 기사가 언급한 전지적 독자 시점 등에서 더 그저 매니악하게 나갔어야 했다는 부분은
그냥 시장의 한 때 결과에 따른 너무나 나이브한 평가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나
재벌집 막내아들은 원작의 강점이나 장르적 상업적 특성 자체를 무시한 채 그저 영화화 드라마화를
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물론 전지적 독자 시점은 영화로 각색을 안 하는 게 나은 작품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 재벌집 막내아들은 왜 실패했는가?
각 원작의 특성, 그리고 각색이 실패한 이유
웹소설의 특징과 상업성
이들은 웹소설 기반의 플랫폼에서 연재된 작품들의 가희 전설이라고 볼 수 있다.
웹소설판 자체는 매우 상업성이 강한 곳으로 한화 한화 보는데 소액이지만 계속적으로 돈을 지불해야 하고
이에 따라 독자들에게 최대한 빠르게 사이다나 도파민을 충족시켜야 하는 곳이다. 독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바로 곤두박질치는 판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적 검투사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들은 장기적인 빌드업을 하며 사회적 메시지 따위를 챙기다간 굶어 죽기 십상이며 오로지 재미만을
추구하거나 독자에게 작품에 몰입성을 강조하는 작품들이 대다수이다. 위의 두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특성
이 작품의 착안점은 독자들이 주인공을 통하여 이야기를 고쳐 쓴다는 몰입감이 최고의 장점이다.
누구라도 한 번쯤 작품을 보며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던가 이런 점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는데 그냥 넘어가네 등등 나름의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멸살법이라는 소설을 끝까지 읽은 유일한 독자이며 따라서 현실이 된 소설의
미래를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넘어서 소설에 대한 애정과 의미, 4의 벽이라는 설정을 통하여
주인공은 일어나는 사건들, 그 안에 얽힌 인물들에 대해 본인의 인식상으로 소설과 현실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주인공의 심리상태나 생각을 바탕으로 목숨이 걸린
'시나리오'라는 이야기를 따라가거나 참여하는 자가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움직인다.
이게 내가 앞에 말한 이 작품의 독특한 특성이자 유니크한 몰입감이다.
이 몰입성이 깨지는 순간 이 작품은 의미를 상실해 버린다.
전지적 독자 시점 각색의 패착
그런데 각색 작은 이 작품의 주인공에게 살아남지 못한 비정규직이라는 설정을 주고
현실성을 강화시켜 버린다. 이런 현실에서의 주인공의 과거나 버려진 비정규직 등의 현실과 결합하여
멸살법의 결말에 대해 최악이라고 평한다. 이는 아예 원작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결국 이러한 감정선에 따라서 주인공의 멸살법 소설을 대하는 태도가 원작과 달라졌다. 이는
주인공의 행동원칙이 되고 흔하디 흔한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 미래를 아는 자의 생존기,
아포칼립스물에서 인간성을 보여주는 흔한 캐릭터로 변모해 버렸다.
멸살법과 주인공의 관계, 그리고 4의 벽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고 주인공의 근간 그 자체다.
소설 멸살법이 현실로 되면서 4의 벽을 통해 사건에 대해 관객으로서 지켜볼 것이냐?
한 인간으로서 사건을 받아들일 것이냐? 주인공이 그만의 이야기를 가지기 위해 창작자의
의무를 지킬 것이냐 흐름에 맡게 편하게 가느냐에 대한 물음 등 정말 다양한 사고방식과
정신적 싸움을 만들어 주는 요소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정신상태와 내면의 싸움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원동력이다. 이걸 빼서 각색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주인공과 설정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냥 클리셰적인 평범한 인물로 바꾼 것으로 보이며
실패할 수밖에 없는 각색이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특성
이 작품은 철저하게 재벌집에서 살아남기라고 해도 좋을 작품이다. 물론 주인공이 기업 내 더러운
일을 도맡다 팽 당하는 인물이, 과거 죽은 재벌의 손자로 회귀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즉 이 인물은 미래에 일어날 중대한 일들을 안다는 치트키를 갖지만, 동시에 자신이 환생한 인물이
미지의 사안으로 죽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주인공의 목표는 그 나름의 복수이다.
그 나름의 복수란 자신이 순양그룹을 손에 넣고 자신을 죽이라고 지시한 자에게 순양을 갈취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역사 속 거대한 사건과 혼란 속에서 주인공의 활약으로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되고,
순양그룹 승계 과정 속 치열한 다툼과 지략 대결 복수의 완성을 보며 느끼는 사이다와 카타르시스가
이 작품의 강점이다.
재벌집 막내아들 각색의 실수
복수극이자 재벌 기업을 승계하기 위해 각종 수를 쓰며 미래를 아는 입장에서 생존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 만큼 주인공이 선인일 수가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캐릭터를 강제로 선역에 가깝게
각색해 버렸다, 또한 이 이야기의 큰 틀은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주인공을 비롯한 각 인물들의
군상극적 요소가 강한데 이를 과감히 삭제해 버리고 클리세적인 한국형 재벌물로 변신시켜 버렸다.
거기다 임요환의 3연 벙커링보다 더 악마 같은 2 연속 트럭의 등장은 차라리 닌자가 난입해 주인공을
살해하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시청자의 뒤통수를 갈기는 행위였다.
더욱이 원작과 아예 다르게 주인공이 재벌의 손자를 포기하고 원래 자신을 선택하며 이 모든 과정을
그저 꿈이나 망상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각색의 종언이라고 해도 마땅한
범죄행위라고 말하겠다.
이는 주인공을 통해 성공과 복수의 완성 같은 대리만족을 기대하고 온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행위였다.
시청자들은 이 작품의 각색화를 보며 최소한 주인공의 좌충우돌과 지략 대결, 그리고 성공담과
복수라는 원작 카타르시스를 드라마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민 배우의 존재감과 열연 다른 배우들의 노력으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준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어찌 됐든 작품성은 몰라도 시청률이라도
잡은 결말은 냈으니 윗 분들은 매우 만족하고 있을지 모른다.
서브컬처 각색화에 있어 편견과 디테일의 상실
매니악하게 만들었어야 한다는 어찌 보면 원작팬들의 감성과 바라는 바를 맞춰서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 어떠한 상품일지라도 주요 소비층과 잠재 소비층을 면밀히
분석해서 만든다는 점에서 이건 하나마나 한 소리이다. 문제점은 각색 자체를 대하는 제작진들과
태도와 편견 그 자체다.
일본의 각색에 대해서 짧게 줄이자면 '원작의 강점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매체로의 완성도 높은
구현'을 하는 방향으로 지향점을 잡고 있다. 하지만 서브컬처 원작의 각색에 있어 우리나라는
각색하는 제작진이나 작가의 에고나 강점을 바탕으로 원작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취사선택을 한채
작품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살아남지 못한 비정규직'이라는 설정과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권선징악적 내용이나 서민영이라는 캐릭터를 부각하는 점은
업계의 양지의 문법이라던가 제작자나 감독의 에고임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원작의 팬들은
소외되고 원작의 강점은 사라진다. 제작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원작파괴를 하더라도
압도적인 각색작을 내보이는 것 밖에 없다.
하나 묻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수준의 원작을 각색해서 높은 수준의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원작의 체급까지 올려버린 귀멸의 칼날 수준의 각색작이 있는지 말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제작진과 작가 감독 등의 에고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 자체가 너무 비대해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향성으로 진행된다.
https://sports.khan.co.kr/article/202212261014003?pt=nv을 보면 이러한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드라마 작가의 경우 과거 매번 각색에 있어서 논란을 일으킨 작가였고 이 논란에
따라 커리어가 점점 하향되어 가는 중이며 재벌집 막내아들이 작가의 마지막 커리어가 아닐까
생각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위에 같이 언급한 전지적 독자 시점은 어떠한가? 이를 위해선 김병우 감독과 리얼라이즈픽쳐스를 봐야 한다.
김병우 감독이 호평을 받는 점은 주인공에게 물리적 심리적 고립감을 잘 심어주고 이로 인한
긴장감과 공포를 보여주는 방법을 아는 감독이고 그 외에는 말을 아끼겠다.
리얼라이즈픽쳐스는 광해 - 왕이 된 남자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신과 함께 1,2를 찍으면서 각색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부류의 제작사라
칭할 수 있겠다. 즉, 그들은 신과 함께 1,2를 찍으면서 각각 천만 관객이라는 성과는 얻었지만
동시에 원작을 무시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한국시장의 일그러진 면을 보여주는 제작사에 가깝다.
신과 함께에서 그들이 보여준 cg연출, 특수효과와 장르적 부분에선 나름의 도전을 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원작의 서사구조 자체를 뒤틀어 버리고 원작을 보긴 했을까 수준의
스토리와 결국 신파에 기대는 창작은 서사나 각색에 있어서나 완벽한 퇴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은 전독시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신파는 인간성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스토리나 서사적
허점, 자신들이 쓰고 싶은 부분만 취사선택한 점 등은 그대로 이어졌다.
즉 원작을 무시하고 역사적인 성공을 연타로 거둔 제작사와 제작문법이 고착화되고 단순한 감독이
만났는데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독특하고도 복잡한 작품을 제대로 각색할 수 있었을까?
애초에 최소 한쪽이 건담 시리즈의 뉴타입 혹은 이노베이터로의 진화 정도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차라리 재벌집 막내아들을 김병우 감독이 드라마로 각색했으면 어땠을까?
전지적 독자시점은 애초에 영화화하기 극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병우 감독이 재벌집 막내아들을 드라마로 각색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작중 진도준의
최대 능력인 미래에 대한 정보는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폭탄으로 설정한다. 이것만으로
미지의 사안으로 살해당하는 미래를 아는 입장에서 순양 집안은 외부세력의 개입이
불가능 한 거대한 밀실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몇 개의 변화만으로도 성공서사물에서 공포적
심리극으로서의 변주나 원작의 피카레스트적 복수극의 성격도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 내에서 주인공이 갑자기 빌런들을 용서한다거나 참회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도준은 끝까지 싸워서 그의 복수를 이뤄낸다는 원작의 방향성을 충실히 따라
갈 확률도 굉장히 높다.
이대로만 간다면 작품의 또 다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원작의 방향성과 결말을 존중하되 각색자의
다른 해석을 양립시키는 면을 이뤄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내 망상의 작품 방향성은 긴장감이
풀려 버리는 순간 인상이 약해지지만 완급조절을 할 수 있는 사건을 배치함으로 해결할 수 있긴 하다.
신카이 마코토가 내밀한 주인공의 감정을 주로 다뤄었던 과거에 거대 서사를 맡았을 때 망작을 만들었다고 한 부분을 상기해 보자. 김병우 감독 또한 심리적 물리적 고립에 의한 주인공의 공포감이나 긴장감을 잘 다루는데 전독시 같은 거대 서사와 복잡한 설정을 다루기엔 맞지가 않았다. 차라리 그의 강점을 횔씬
드러내기 쉬운 재벌집 막내아들이 더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각색의 중요성
작품성과 흥행성은 항상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반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영화는 영화끼리
문학은 문학끼리 다루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제는 그 어떠한 국적, 장르, 방식이라도 점점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는 창구는 항상 열려있다. 따라서 이제는 어떠한 한 작품이 이러한 많고 많은 즐길 거리 중 대중의 시간을 더 빼앗아 갈 수 있냐의 싸움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각색이라는 방식은 사업적에서 더 중요해지는 창작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따라서 장르적 변환이 필연적인 시대니 각색의 문법이나 노하우가 받쳐줘야 하고 그러한 방식을
만들기 위한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그때그때 가챠를 돌리듯 만들다가
나오는 결과물의 수치적 요소만 놓고 평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더 각색을 잘하기 위한 노력이나
분석을 이러한 수치 분석보다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글이 길어지는 바 이를 1부로 마치고, 2부에서 이 주제를 마무리하겠다. 2부에서는 생각해 볼만한 해외의
창작자 사례를 보고 창작 업계를 돌아보는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