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사양지심_ Overall
2016년 봄, 전 세계의 이목이 서울의 한 호텔로 쏠렸다. 인류 최강의 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 당시만 해도 인간이 인공지능에 바둑을 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세돌 9단 역시
"이번 대국은 5대 0 아니면 4대 1 정도의 승부가 될 것 같습니다. (중략) 한 판이라도 진다면 알파고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달랐다. 속수무책 3연패. 이를 지켜본 전 세계 인류는 종말론적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4국에서의 기적 같은 1승. 절망감에 휩싸였던 인류는 환호했다. 이 장면은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인류가 진 것이 아니라 내가 진 것입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인공지능을 이긴 유일한 인류가 된 이세돌 9단의 발언은 그래서인지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말은 훗날 "내가 승리한 거지 인류가 승리한 게 아니다"라는 유쾌한 밈(Meme)으로 변주되어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그 본질에는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른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지독하리만큼 높은 자존감과 진짜 겸손이 맞닿아 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인류의 패배'라는 거대 담론 뒤로 자신의 패배를 숨기려 했을지도 모른다.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시대적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는 식의 변명 말이다. 하지만 그는 패배의 무게를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렸다. 이는 철저한 패배감에서 기인하는 비굴함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과 책임의 범위를 정확히 정의하는 최고수만이 누리는 '겸양(謙讓)의 여유'였다.
인공지능과 함께 일하는 시대, 이제 세상은 인간에게 어떤 역량을 요구할까? 시간만 지나면 익힐 수 있는 기능, 기술의 숙련? 누군가 찾아낸 정해진 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암기력? 글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패턴화, 문서화, 가이드화가 가능한 세상의 모든 일들은 인공지능이 이미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행히 우리가 지금껏 논의한 맹자의 사단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본성으로 사양지심 역시 겸손과 희생이라는 가치로 인공지능과의 차별을 분명히 한다. 겸손과 희생은 흔히 착각하듯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비롯되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리더의 위치에 오른 자가 자신의 성과를 팀의 공으로 돌리고, 자신의 오류를 기꺼이 인정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우리가 입이 닳도록 외치고 들어왔던 '솔선수범'은 왜 진부하고 색이 바랜 가치로 전락했을까?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하직원의 공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포장하고, 실패했을 경우 부하직원과 타 부서, 외부 환경에 떠넘기는 못난 리더는 얼마나 많은가?
광이불휘, 빛나되 눈부시지 않게
진짜 리더는 굳이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존재감과 유능함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겸손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을 뿐, 그 안에는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실력이라는 본질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아득히 추월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사양지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과 지식이 대체할 수 없는 리더의 마지막 품격이야말로 사양지심에서 비롯된다.
역설적이게도 책임질 때 나설 줄 알고 공을 이야기할 때 뒤로 물러설 줄 아는 리더가 가장 밝게 빛난다. 팔로워는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파악하고 그에 최선을 다할 때 가장 돋보인다. 다만 예의를 갖춰 반박하고 무조건적이면서 대안 없는 비판은 삼간다면 시너지는 배가된다.
포심(4心) 리더십의 세 번째 마음, 사양지심은 禮로도 표현되는데, 나는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겸손과 자기 절제를 잃지 않고 필요한 경우 양보와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리더십이야 말로 자기 자신과 부하직원, 그리고 조직 나아가 사회공동체에 대한 기본예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 지금부터 이 시대 리더들이 갖춰야 할 겸양과 희생정신에 대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