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사양지심_ Humility_1. 내적충만
2018년 9월, 뉴욕 UN 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단상에 올랐다. 7분간 이어진 그의 연설 ‘Love Yourself’는 청중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제 실수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제의 나도 여전히 나입니다. 오늘의 나는 과거의 실수들이 모여 만들어졌습니다.”
이 연설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건 단순히 잘 쓰인 원고 때문이 아니었다. 데뷔 전 연습생 시절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으며, 철학적 사유와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RM과 BTS의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성공 앞에서도 그는 자신을 낮추며 '팀의 리더'이기 이전에 '평범한 한 청년'으로서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정상의 자리에 섰지만 한낱 인간으로서의 겸손, 무엇보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는 RM과 BTS를 단순한 아이돌을 넘어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든 진정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19세기 조선에도 BTS 못지않은 '한류 스타'가 있었다. 바로 추사(秋史) 김정희다. 추사는 왕실의 외척이자 명문가에서 태어난 '금수저' 천재였다. 24세의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베이징)에 갔을 때, 그의 명성은 이미 국경을 넘은 상태였다. 당시 청나라 최고의 학자였던 옹방강과 완원 같은 청나라 석학들이 어린 김정희의 천재성에 감탄하며 "해동제일의 유학자"라 칭송했고, 청나라 문인들은 그와 필담 한 번 나누는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여겼다.
명성에 비해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1819년)에 문과 급제를 한 추사는 정치에서도 탄탄대로를 걷는다. 병조참판, 성균관 대사성 등 요직을 거치며 권력의 중심에 섰지만 비판에 거침이 없었고, 자신의 학문적 잣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을 철저히 무시하곤 했다. 그런 오만함은 결국 도처에 적을 만들었고 안동 김씨 세력은 추사를 모함해 제주도로 유배를 보낸다. 유배길에서도 그 오만함은 꺾이질 않는데 전주를 지나며 당대 문장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를 보고 "글씨라고 할 수도 없다"라며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전남 해남 대흥사에 들러서는 당대 최고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현판을 보고 "조선의 글씨를 망쳐놓은 저런 현판은 떼어버려야 한다"며 자신의 글씨를 대신 달게 했다.
그런 추사를 변하게 한 건 혹독한 제주도 유배 생활이었다. 바람과 돌 뿐인 척박한 땅에서 그는 오직 글을 쓰고 제자를 양성하며 자신의 오만함을 반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9년 만에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오던 길, 추사는 더 이상 예전의 그 기고만장한 선비가 아니었다. 그는 대흥사에 다시 들러 자신이 떼어냈던 이광사의 현판을 다시 달게 했고 이삼만의 묘를 찾아가 자신의 무례를 사과하고 비문을 써주었다. 이후 또다시 이어진 유배 생활과 가난 속에서 그는 '추사체'라는 독보적인 경지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기교를 덜어내고, 잘 쓰려는 마음마저 비워낸 끝에 도달한 '졸박(拙樸, 서투른 듯 소박함)'의 경지. 그것은 억지로 낮추는 겸손이 아니라, 내면이 꽉 찬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충만함의 발현이었을 것이다.
회사가 그룹 구조개편으로 지주회사에 합병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 부임한 L상무는 꽤나 거만한 사람이었다. Y대 출신에 매출규모만 수십 조씩 되는 종합상사에서 성장한 덕에 수천억짜리 마이너 계열사가 우스워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구조조정이라는 그룹의 '오더' 수행이 최우선이었던 그는 조직문화를 담당했던 우리 팀과의 미팅에서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니들이 하는 말은 도통 못 알아듣겠어. 내가 무식해서 말이야..."
L상무는 정말 스스로를 무식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했을까?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듯한 시선과 깔아보는 듯한 눈빛은 내뱉은 말과는 전혀 다른 속내를 증명하고 있었다.
콘데센션(Condescension)은 '생색내는 듯한 겸손' 혹은 '깔보는 듯한 태도'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짐짓 낮은 자세를 취함으로써 상대방의 설명 능력을 시험하거나 무안하게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험블브래깅(Humblebragging)은 '겸손(Humble)'과 '자랑(Bragging)'의 합성어로 겉으로는 불평을 하거나 자신을 낮추는 척하지만, 실제 목적은 자신의 우월함을 은근히 드러내는 행위를 뜻한다.
L상무의 내면은 콘덴센션, 험블브래깅 이었음이 틀림없다. 재직기간 내내 그런 고압적 태도를 버리지 못했던 그는 급기야 술에 취해 현장 리더를 폭행하는 등 잦은 물의를 빚으며 아무런 업적도 남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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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야 채울 수 있다.
늘 진화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특히 리더의 본질이라면, 비움과 채움이라는 행위를 결코 멈춰선 안된다. 내면의 그릇, 그 크기를 한정 없이 키울 수 없다면 대안은 이전의 것, 죽은 것, 생이 다한 것들을 수시로 비워낼 줄 알아야 한다. 겸손은 기술이 아니라 '상태'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유 공간을 가진 상태. 그리고 그 빈 공간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채워 넣는 일. 그리하여 굳이 스스로를 드러내려 애쓰지 않아도 돋보일 수밖에 없는 실력, 굳건한 내면을 갖추는 일에 매진하는 것. 그러다 보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짜 실력자, 프로페셔널이 되어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빛나는 항성 같은 존재가 된다. 진짜 실력자, 프로페셔널끼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스스로를 낮춰도 상대가 알아준다. 무엇보다 제삼자가 알아준다. 나 이런 사람이에요! 요란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낭중지추 뾰족한 송곳은 주머니에 넣어도 티가 나는 법이다.
"해봐서 아는데..."
리더의 자리에 오를수록 경계해야 할 것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태도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는 급변의 시대에, 과거의 성공 경험에 갇힌 리더는 주변의 입을 틀어막는 벽이 될 뿐이다. 한 치의 오차 없는 데이터도, 내부 규율도, 관행도 물리치게 만드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자만 앞에 무용지물이 된다. 근거 없는 자만과 감은 결과가 좋을 때는 그럭저럭 통용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 그 본색을 드러낸다. 관련된 모든 이들이 피해를 입는다.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근거를 찾지 못하면 결국 무능과 안이함으로 귀결될 뿐이다.
날 때부터 금수저 출신인 귀공자 추사가 유배지에서 과거의 영광을 버리고 온전한 '인간 김정희'를 되찾았듯, 리더 역시 자신의 성공적인 궤적에 기대 안주하고 답습하려는 자세를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어제까지의 정답이 오늘, 내일의 정답이라고 누가 장담할까? 답이 정해지지 않은 오늘은 매일 찾아온다. 마치 '정답'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해답'을 찾겠다는 자세로 오늘 하루를 시작해 봄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