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사양지심_ Humility_ 2. 낮은자세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If you can't measure it, you can't manage it)"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가 남긴 금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검증이 필요한 부정확한 내용과 출처에서 비롯됐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피터 드러커의 저작과 강연 어디에서도 이 문장을 그대로 확인할 수는 없고, 오히려 맥락을 비틀어 인용된 사례로 보는 해석이 많다.
이 문장이 내포한 문제의식은 “경영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수치들은 사실 알 수 없거나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경영은 반드시 그것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고 말한 품질 관리의 대가 에드워즈 데밍(W. Edwards Deming)의 철학에 더 가깝다. 오히려 데이터와 숫자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고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오늘날 수많은 경영자들은 이 정체불명의 금언을 마치 바이블처럼 신봉하며 모든 성과를 지표화하고 숫자로 증명하려 애쓰고 있다. 숫자와 데이터, 이성주의라는 그럴듯한 종교에 매몰되어 정말 그럴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조차 하지 못하게 된 고인물 경영진들은 현장에서 심심찮게 목격된다.
비단 이 말뿐 아니라 자신의 지난 성공에 매몰되어 자신이 무결점의 경영자라도 된 양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배우려 하지 않고 타인의 지적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경영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연말, 기업문화실 K 상무는 구성원들에게 메일 한 통을 보냈다.
[올 한 해도 고생 많았습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여러분의 피드백을 받고 싶어요. 단, 장점이 아니라 단점, ‘이점만은 고쳐줬으면 좋겠다’라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의례적인 연말 인사인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메일을 열어 본 사람들은 당황했다. 처음엔 K 상무의 진짜 의도를 의심했다. 그래서인지 곧이곧대로 단점 위주의 피드백을 보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듬해 연말에도 K 상무는 또다시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이번엔 기업문화실 구성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직접 ‘단점 피드백’을 달라고 요청했다. 분명 어떤 노림수가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를 빌미로 기업문화실 내 불만 세력을 찾아내려는 꼼수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올해는 세 분이 저에 대한 피드백을 보내줬어요.”
전체 송년회에서 K 상무는 건배 제의를 하며 피드백 내용도 함께 공개했다. 그 수위는 생각보다 셌다.
[공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시는 건 알겠는데, 일부 특정 인원에 대한 노골적인 편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구성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려 하시는 건 좋은데 가끔 선 넘는 경우 가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외모 지적 같은 거요]
[오너 패밀리의 무리한 오더에 너무 비판 없이 올인하시는 거 아닙니까? 쳐낼 때는 쳐내셔야지요.]
“물론 처음에는 놀랐어요. 내가 그랬나? 싶었어요. 그렇지만 곧 생각을 바꿨죠. 곰곰이 내 행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 비로소 아~ 하게 되는 부분이 보이더군요. 날카롭고 타당한 지적이었어요. 여러분의 피드백이 없었다면 평생 모르고 지나갔을 부분 아닙니까? 아찔했지요.”
K 상무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리고 지적받은 점들을 실제로 고치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K 상무의 진정성을 조금씩 믿게 됐고, 이후 K 상무가 퇴직할 때까지 ‘단점 피드백’은 매년 계속됐다. 그래서 K상무는 지금 어떻게 됐냐고? 현재 모호텔 대표로 활발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다. 점근선의 원리.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무결점 상태로는 도달할 수 없다. 다만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 인간은 누구나 실수 투성이고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단점, 허점을 보이는 걸 수치스러워하지 말자. 지위가 오른다고 사람이 완전해진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일에 있어서만큼은 실수를 줄이고 완벽을 기하는 자세는 좋지만 그 외의 모든 일에서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은 강박을 부른다. K 상무가 송년회 건배사에서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공개했을 때, 권위를 잃은 것이 아니라 비로소 진짜 영향력을 얻었듯, 때로는 나 자신을 내려놓고 가면을 벗고 민낯을 드러내도 괜찮다. 완벽을 추구하는 AI의 성능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어딘가 불완전하고 비이성적인 '진짜 인간'이 그 자체로 경쟁력의 본질이 될지도 모른다.
내 귀에 캔디, 예스맨은 멀리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쓴 법이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내 귀에 캔디' 듣기 좋은 말만 들려오는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 내 주변에 Yes맨만 남았다는 강력한 증거일 수 있으니 말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특정한 자리에 올랐다고 갑자기 무결점의 존재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스스로는 볼 수 없는 사각지대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때로는 뼈아프게 지적해 줄 Red man의 존재는 필수다. 때로는 듣기 거북하고 마음을 후벼 파는 독설론자들을 의도적으로 가까이 두라. 그들을 신뢰하고 우대하라. 눈을 가리고 현실을 왜곡하려는 Yes맨들은 배제하고 멀리하라. 달콤함에 취하면 남는 건 정체와 부패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