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사양지심_ Humility_ 3. 운명
마키아벨리 [군주론]은 악마의 금서이자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리더십 교본으로도 유명하다.
군주는 사랑받는 대상보다 두려움을 주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17장)
군주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교활함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18장)
같은 과격한 주장들이 가득해 히틀러, 무솔리니 같은 최악의 독재자들이 즐겨 읽었다고도 알려졌다.
[군주론]의 롤모델 중 한 명인 '체사레 보르자'는 교황 알렉산드르 6세의 아들로, 잔혹하고 냉정한 면모로 악명이 높았다. 마키아벨리는 약체였던 교황군이 어떻게 강력한 군대로 탈바꿈하는지 그 과정을 체사레의 지근거리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그리고 그 해답을 체사레의 리더십에서 찾았다. 그는 목적을 위해 비열한 술수도 마다하지 않았고 행동에 있어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국가 간 질서와 정의, 당위성이 오직 힘과 무력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던 혼돈의 시대, 마키아벨리 자신의 모국인 약소국 피렌체가 살아남기 위해 군주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라는 처절한 통찰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강력했던 체사레 보르자조차 결정적인 순간 열병에 걸려 허무하게 죽는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최후를 보며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를 언급한다. 압도적인 영웅도 운명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깨달음.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는 비르투(Virtù)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했는데, 비르투는 의역하자면 ‘강인함, 밀어붙이는 완력’ 등을 뜻한다. 그는 또 '포르투나 힘은 강력하지만, 어디로 흐를지는 알 수 없는 여신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비르투뿐'이라고도 했다. 내가 이해한 비르투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노력과 실력, 결단력'이다. 평소 묵묵히 실력을 쌓고 과단성 있는 결단을 내리는 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포르투나’라는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을 때 즉시 이를 알아보고 그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성공의 공식 말이다.
2~30대만 해도 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과신했다. 큰 병도 걸리지 않을 것 같았고 웬만한 불운들은 나를 다 피해 갈 것이라는 근자감이 있었다. 그러나 50대에 이른 지금은 안다. 설사 그러했더라도(사실은 그렇지도 않았지만)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결정적 계기는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한 대목을 알게 되면서였다.
“저 점을 보라. 저기 여기에 있다. 저것이 바로 고향이다.
저것이 바로 우리다.
당신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
당신이 알았던 모든 사람,
당신이 들어본 모든 사람,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인간이 저 점 위에서 살았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
수천 개의 확신에 찬 종교와 이데올로기,
모든 사냥꾼과 채집인,
모든 영웅과 비겁자,
모든 문명 창시자와 파괴자,
모든 왕과 농부,
모든 젊은 연인,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희망에 찬 아이,
발명가와 탐험가,
도덕의 교사,
부패한 정치인,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의 지도자’,
모든 성인과 죄인이
— 이 먼지 한 점, 햇빛에 매달린 무대 위에서 살았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떠나며 찍은 지구 사진을 보고 칼 세이건이 한 연설문의 한 대목인데, 나는 그야말로 충격을 받았다. 일종의 허무함이랄까? 한낱 우주의 먼지보다 못한 창백한 푸른 점, 그곳에 우연히 태어나 고작 100년도 못 사는 비루한 존재이면서 마치 1000년을 살 것처럼 온갖 고민과 미움과 증오를 끌어안고 아등바등하지는 않았던가? 싶었다.
이 깨달음은 내 일상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복권을 사지 않게 됐다. 그 이전에도 인생사가 ‘운7, 노력3’으로 이루어진다고 대체로 믿는 사람이었지만, 내 운을 복권 당첨 따위에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로또 1등을 꿈꿔본 적 없냐고? 물론 있다. 좋은 꿈을 꾸면 혹시나 하는 기대로 복권을 안 사본 것도 아니다. 혹여 정말 1등에 당첨된다면 내 운명이 달라질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든 인생의 묘미는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대신 내 분야를 정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실력을 키우기로 했다. 시간이야말로 지나고 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자원이란 사실을 깨달은 후 1분 1초라도 허튼 생각과 행동에 낭비하고 싶지 않게 됐다. 혹여 앞으로 내게 올 운이 있다면 내가 평생 몸담을 내 일에 찾아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데 쓰이길 바랄 뿐. 그러니 그저 묵묵히 읽고 쓰면서 실력을 쌓을 수밖에.
세상사 운칠기삼
세상일이란 게 하나의 요인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서 반드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평생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자존감을 지키고 실력을 기르는 스스로를 탄탄히 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일과 함께 한편으로는 나 역시 자연의 한 부분이며 주어진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진리를 떠올린다. 실력이 압도적이면 선택지가 많아진다. 선택지가 많으면 어떤 악재(불운)가 와도 우회로를 찾아낼 수 있다.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마치 운명조차 그 사람을 피해 가거나, 그 사람 앞에서 길을 내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운칠기삼을 허투루 여기지 않고 묵묵히 만들고 인내해 온 사람의 특별한 보상일 뿐이다.
언젠가 운 좋게 운의 부름을 받았다면 그 사실 역시 겸허히 인정하고 그 사실에 감사하자. 또다시 그런 운이 찾아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지만, 다시 제로베이스의 마음으로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컨트롤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결국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균형을 어떻게 찾느냐의 문제다. 지나치게 과대한 자아도, 거대한 자연과 우주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자아도 안된다. 현재, 지금, 내게 주어진 현상 그 자체에 충실하며 다가올 내일을 한 발 앞서 예측하고 대비하는 정도의 균형. 리더라는 권한과 책임이 커질수록 어느 한쪽의 비대함 혹은 축소를 경계하는 일에 집중할 일이다.
거친 강물처럼 휘몰아치는 운명(Fortuna)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 막강한 운명조차 평소에 둑과 제방을 쌓아둔 단단한 역량(Virtù) 앞에서는 기세를 꺾는다고 단언한다. 요행히 자리에 올랐으나 실력이 없어 무너지는 이들을 보며, 나는 비르투, 그러니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 전문성, 내적 단단함이야말로 운명이라는 불확실성을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본질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됐다. 나를 갈고닦으며 묵묵히 기회를 기다리는 일, 그것이야말로 변덕스러운 운명에 휘둘리지 않고 나라는 '창백한 푸른 점'을 고유하게 지켜내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