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사양지심_ Sacrifice_ 1. 이기주의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영업 3팀 오 과장은 최근 팀에 조인한 박 과장의 비리 정황을 포착한다. 박 과장이 들고 온 요르단 중고차 사업은 이미 최종결재까지 완료된 상태. 협력업체의 이익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점을 이상히 여기고 여러 정황 증거를 찾아 직속 상사인 김 부장에게 보고한다. 김 부장은 곧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오 과장, 이미 처리된 기획안 들쑤시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
보고를 마친 오 과장은 정도를 걷겠다는 개인적 신념과 박 과장 한 사람만의 단죄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한동안 고민을 한다. 그리고 결단을 내린다.
"덮겠습니다.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부장님 아닌, 우리 회사를 위해서...그냥 영업 3팀 안에서 해결하겠습니다..."
"그냥 진행해. 절차대로 해."
김 부장은 뜻밖에도 조사를 지속하라며 판을 깔아준다. 본사 감사팀이 출동하고 영업 3팀 막내 장그래의 활약으로 결국 예상을 뛰어넘는 대형 비리가 적발된다. 박 과장은 물론 결재라인에 있던 사람들은 줄줄이 징계를 받는다. 김 부장 역시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난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 오 과장은 김 부장에 대한 미안함에 마음이 무겁다. 김 부장이 회사를 떠나는 당일 도열한 부서 사람들. 김 부장은 일일이 악수를 하며 고마움을 전한다. 오 과장 앞에 선 김 부장.
"자리 정리되면 연락할 테니까 소주나 한잔 사."
김 부장은 오 과장의 어깨를 툭 치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는 뚜벅뚜벅 돌아나가는 김 부장의 뒷모습을 향해 오 과장은 90도로 허리를 숙인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받아들이는 리더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드라마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정말 그렇다면 드라마가 판타지라고 조롱할 게 아니라 그런 현실을 부끄러워 할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오른 자리에 합당한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 리더의 전형이라면, 그들이 표준이라면, 암담하지 않은가?
실패나 고난을 맞닥뜨렸을 때,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남을 질투하는 것만큼 초라한 일도 없다
'남탓' 이라는 쓸만한 덫
교세라의 창업자이자 세계적인 경영 구루로 알려진 이나모리 가즈오는 남 탓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미 꿰뚫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 여기 이런 리더가 있다. 팀에 성과가 생겼을 때는 뒤로 물러 서서 모든 공을 부하직원들에게 돌리지만, 반대로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는 먼저 앞으로 나서서 책임을 자처한다. 상황에 따라 좌고우면, 이리저리 변하지 않고 일관되게 이런 태도를 유지한다면, 이런 리더는 조직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까? 성과는 묻히고 책임은 커질 테니 무능력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얕은 생각으로는 그럴 것 같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는 평판은 그리 간단치 않다.
반대로 이런 리더가 있다. 잘 되면 제 덕, 안 되면 남 탓으로 일관한다. 당장은 눈앞의 이익을 취하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눈이 있고 귀가 있다. 그 행적들이 하나하나 쌓여 결국 ‘저밖에 모르고 주변 사람을 이용하거나 희생시키는 이기주의자’라는 평판을 듣게 될 테니 결국 지는 게임을 하게 되는 셈이다. 동화적 결말인 ‘권선징악’이 인간관계에서 종종 현실화되는 이유다.
누구나 자기중심적이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나 역시 한때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타인의 입장을 헤아릴 줄 모르고 잘되면 내 덕, 안되면 남탓 하기 바쁜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승진을 하고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커질수록 과정보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일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과연 이게 잘하는 일인가? 장기적으로 무엇을 위한 건가?' 라는 현타. 그러다 어느 순간, 마치 눈을 가리고 있던 흐린막이 걷히는 것처럼 결과가 나쁘면 자기 합리화에 여념이 없고 보잘것없는 성과를 부풀리는 습관이 개인의 성장은 물론 조직 전체에도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자기 중심성은 사소한 일상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흔히 "옷이 작아졌다"라는 말이 그렇다. 사실 옷이 작아진 게 아니라 내가 커진 거 아닌가? 옷은 죄가 없다. 부부, 연인 간에도 “너만 안 만났으면⋯.”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이런 식의 날 선 말들이 오간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일방적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관계’가 가능할까? 어떤 관계든 매사 상대방 탓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관계는 급속히 무너지게 되어 있다.
5149의 법칙
사회인으로서 좋은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핵심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균형'에 있다. 문제는 어느 한쪽 극단으로 치우칠 때 생긴다. 지나치게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이기주의자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타인을 향한 이타주의자도 문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늘 맡은 일보다 더 가져가고, 거절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라는 말로 자신의 시간을 소진하는 사람이 있다. 겉으로는 헌신적이지만, 그 태도는 종종 헌신한다는 평판도 유의미한 성과도 남기지 못한다. 자신을 우선하지 않는 무분별한 양보는 결국 책임감이 아니라 자아의 소진 혹은 무의미한 번아웃으로 귀결된다. 이른바 '착한 사람 콤플렉스'의 끝은 자기 파괴뿐이다.
직장생활을 포함한 인생 전체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먼저 '확고하고 건강한 이기주의자'가 돼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건강한 이기주의란, 극단적으로 자기밖에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다. 51:49의 균형, 51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향해야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스스로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타인을 사랑하고 그 사람의 행복을 빈다는 말은 얼마나 공허하고 무의미한가? 먼저 나 자신에게 집중해 건강한 자아를 갖는 일이야말로 모든 일의 출발점이 된다. 나의 내면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욕구에 충실하고 스스로의 동력에 의해 움직이고 결과가 어떻든 그 과정에서 배움을 얻고 그런 상태로 내적 충만감과 여유로움이 생길 때, 비로소 타인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진정성이 생긴다. 그런 이타심이야 말로 진짜다.
이기주의에서 이기주의로
진정성 있는 이타주의가 가능해지는 순간, 한 개인의 이기주의는 본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기존의 利(이로울리)에서 以(써이)로, 예컨대 자신의 이로움만을 위한 이기주의에서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의미의 이기주의로 바뀐다. 성공이든 실패든 타인과 환경의 탓으로 넘기지도 않는다. 결과를 순순히 감당하며, 다시 조정할 힘을 내부에서 찾는다. 그 과정에서 내적 동력과 회복탄력성은 자연스럽게 강화된다.
내면은 부침을 겪으며 더 탄탄해지고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도 한층 두터워진다. 스스로의 내적 욕망에 솔직해지면서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날카로운 직관이 강화되고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인간관계 역시 유해지고 너그러워진다. 건강한 이기주의가 이타주의를 추동하는 아이러니.
긴 호흡으로 인생을 보면 ‘~ 때문에’가 아니라 ‘~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인드가 더 유효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이以기주의자가 되는 일, 지고도 이기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