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사양지심_ Sacrifice_ 2. 솔선수범
팀장급 리더십 과정을 진행할 때면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리더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성과지향, 목표의식, 카리스마 등등 다양한 답이 나오지만 그중 가장 많이 들려오는 건 바로 '솔선수범'이다. 그다음 질문은 자연히
"솔선수범 잘하고 계신가요?"
절반정도는 그렇다고 하고 절반은 머뭇거린다. 그렇다고 답한 리더들에게는
"어떻게 솔선수범하세요?"
라고 묻는다. 그들은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누구보다 일찍 나오고 누구보다 늦게 회사를 떠난다'고 한다. '휴가도 되도록 안 쓰고 어떻게 하면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불철주야 고민하는데, 요즘 것들은 자기밖에 모른다'고 한탄도 한다. 그래서 웬만한 건 팀장인 내가 다 한다라고도 한다.
이쯤 되면 거의 대부분의 리더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맞아. 시키면 하세월이고. 이걸요? 제가요? 왜요? 하며 되바라진 표정으로 되물을 땐 자괴감마저 느낀다며 와글와글 소란스럽다. 이런 말 하면 꼰대인 줄 아는데, '나 때는~'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솔선수범하고 헌신하는데 요즘 것들은 왜 저밖에 모를까? 왜 나 같지 않을까?
나는 그 시간을 가만히 관찰한다. 그저 추임새를 넣어주고 강한 긍정의 끄덕임을 보여줄 뿐. 그러나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불만들은 팀 내 리더십이 원활하게 발휘되지 못한다는 시그널이기도 하지.' 팀장이 다 한다는 말은 구성원을 배려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책임을 지는 자세가 아니라 위험을 분산시키지 못한다는 고백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저마다의 울분이 각자의 방식으로 표출되고 잦아들 때쯤 회심의 질문 하나를 던진다.
"여러분은 Lead의 뜻에 대해 아십니까?"
리더들은 멈칫하며 잠시 고민한다.
'정말 모를 거라 생각해서 묻는 건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는 다시 되묻는다.
"Lead의 뜻에 대해 아십니까? 아시는 분 설명을 좀..."
'이끌다 라는 뜻 아니냐'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누군가는 팔짱을 끼고 의자의 등받이를 뒤로 젖힌다. 물을 걸 물어라는 눈빛. 나는 칠판으로 다가가 이렇게 쓴다.
[Lead (앞장서서) 이끈다]
너무나 익숙해서, 뻔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거나 다시 찾아보지 않는 그 단어. 왜 리더들이 이끌다에만 꽂혀 있는지 그 힌트가 대번에 보인다. '앞장서서'는 사라지고, 오로지 '이끌다'에 꽂혀 구성원 위에 군림하려는 리더들이 많은 바로 그 이유.
Lead라는 단어의 어원에 그 비밀이 숨어 있었다. Lead는 'leith', 고대 게르만어 및 인도유럽어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다(go)', '떠나다(leave)', '경계를 넘다(Cross the line)', '길을 보여주다(show the way)'라는 뜻을 포함한다. '아~' 나는 이 대목에서 가벼운 탄성을 내질렀다. 리더란 우악스럽게 힘과 포지션을 이용하여 구성원들을 강제로 끌어당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기는 순간.
우리가 흔히 쓰는 매니저 Manager라는 용어도 의심스럽다. 그들이 구성원을 통제하는 데 쓰는 도구가 '당근과 채찍'인 것 역시 결코 우연히 아니다. 매니저(Manager)의 어원은 이탈리아어 maneggiare다. 본래 뜻은 ‘손으로 다루다’, 특히 말을 길들이고 조종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런 어원에서 기원한 매니저 Manager의 역할에는 사람을 다루는 관점이 은근히 스며 있다. 사람을 이끄는 존재라기보다, 통제하고 조정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 말이다.
이런 인식이 무의식처럼 깔린 조직에서, 과연 구성원을 대신해 위험을 감수하고 앞장서려는 리더는 얼마나 될까? 마음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나는 Boss인가, Leader인가? 지금 내 팀의 구성원들은 나를 떠올릴 때 어떤 그림을 그릴까? 글쎄, 확답하기 쉽지 않다. 아무래도 군림을 카리스마로 착각한 전자에 더 가깝지 않을까?
리더란 위험을 무릅쓰고 먼저 건너가 본 자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 쓰이는 용어들은 전쟁에서 따온 것들이 많다. 전략, 전술, 타깃 등등 여기에 말을 다루는 데서 유래한 매니저까지. 알다시피 말은 전쟁에서도 유용하게 쓰였다. 심지어 회사는 '전쟁터'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니, 사실상 일터는 온갖 미지의 전장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전쟁터 같은 일상에서 자신은 뒤로 빠져있고 구성원들만 총알이 난무하는 격전지에 보내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리더가 있다면 어떨까? 그들 위에 자리만 잡고 군림하면서 이래라저래라 말뿐 사람이 리더라면? 전쟁의 승리, 전투의 승리는커녕 팀 자체의 사기도 바닥으로 치닫게 해 모래알이 되지 않을까?
반면 먼저 전장으로 뛰쳐나가 먼저 고지를 점령하고 이제 안전해졌으니 내 뒤를 따르라고 외치는 리더가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내 한목숨 바칠 각오도 하게 되지 않을까? 설사 자신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더라도 내 부대원을 대신해 희생하고 솔선하고 헌신하려는 진짜 리더가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마음을 다해 따를 수도 있을 것 같다.
Lead의 어원이 길을 보여주다라는 뜻을 가진 Leith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리더란 이끌지 않고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실력도 인성도 모두 출중해서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러려면 안 좋은 일에 몸을 사리고 좋은 일에만 뛰어드는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선 안된다. 궂은일에 앞장서서 나서는 행동이야말로 마음을 움직이는 최선의 길이다.
두려움을 갑옷처럼 칭칭 두른 백전노장이란 말을 좋아한다. 나도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누구에게 떠넘기지 않고 직접 온몸으로 겪어내고, 피칠갑된 손을 내밀어 이제 건너와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 나는 원컨대 그런 리더이고 싶다.
방향을 틀어라
리더의 자리에 올라서면 대개는 솔선과 희생, 헌신을 한다. 문제는 어디로 향하는 가다. 높은 자리에 올라서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고 '자리'가 주는 포지션파워는 꽤나 달콤하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서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 이전까지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정치적 감각이 생긴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줄이란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차츰 솔선과 희생, 헌신이 인사권자, 회사를 향하게 마련이다.
'김 차장 팀장되더니 변했어'라는 수군거림이 도는 이유는 그 방향 전환이 급격하고 깊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도 필요하다. 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말짱 꽝이니까. 그렇지만 애초의 나를 잃을 만큼 급격한 방향전환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갑작스러운 '위'를 향한 충성경쟁이 성공적이 될 수 있을까? 당초 이런 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일 말고 관계를 통해 승승장구해 온 이들이다. 본격적으로 이들과 '관계'로 경쟁해야 한다면 승산이 있을까? 그 일도 쉽지 않다.
그 자리에 나를 앉힌 윗선의 기대에 부응하는 만큼의 헌신은 응당 필요하지만, 나를 버리는 수준이 되어선 안된다. 혼자서 일해오고 성과를 낸 것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 오르도록 만들어준 기반이야말로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에 대한 헌신, 솔선, 희생을 저버리는 건 내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리더란 탄탄한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 윗선을 향해 적당히 자신을 치켜세우면서도 구성원들에게는 몸을 낮추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리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