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입 닫게 만드는 한마디 "해봐서 아는데~"

Ⅳ.시비지심_ Overall

by 릭스leexㅡ캐리컬처


웹툰 <미생>의 한 장면,


종합상사 원인터 영업 3팀 오 차장은 별종이다. 사내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폼 안나는 일만 떠맡는다. 일에서 의미를 찾고 케케묵은 정의감 따위를 입에 올리는 사람이다. 당연히 고과는 형편없고 부하직원들도 기를 못 편다. 그래도 해야 할 일만큼은 제대로 해내고 인상적인 성과도 만들어낼 줄 안다. 그런 우직함과 평판 때문일까? 어느 날 강력한 줄이 내려온다. 부사장을 노리는 전무가 오 차장과 영업 3팀을 콕 찍어 중국 관련 사업을 맡긴 것이다. 이 일만 잘 처리하면 영업 3팀은 부서 규모도 커지고 무엇보다 화장실 옆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 차장 역시 이번만큼은 부하직원들을 생각해 전무의 줄을 잡겠다 마음먹는다. 그런데 받은 일이 이상하다. 이익률 등 숫자지표가 지나치게 상대업체의 입장에서 설정되어 있다. 중국 사업 특유의 꽌시를 감안한다 해도 선을 한참 넘었다 판단한 오 차장은 사업을 일시 중단시키고 근거를 만들어 전무를 찾아가 사업의 부당함을 지적한다. 전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오 차장의 이야기를 '일단'듣는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래 너도 알고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아는 그 재무제표... 그럼에도 불구하고..."

"..."

"너, 몇 년째냐? 한 십몇 년 했냐?"

"..."

"나 28년째야. 이 회사 이렇게 성장한 회사야."


게임 끝.

재무제표, 관행, 상식을 포함한 객관적, 주관적 지표와 이에 근거한 실무자의 우려도 전무의 입에서 나온 ‘28년’이 언급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결정적 순간 아득히 높은 상급자가 자신의 경험과 업력을 꺼내 들었을 때 하급자들은 무엇으로 그 말을 반박할 수 있을까?


이 사업은 결국 파국으로 끝난다. 꽌시의 규모에 관한 제보가 본사로 들어가고 감사 결과 그룹차원에서 용인가능한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판단이 내려진다. 전무의 이전 사업까지 모두 파헤쳐져 지난 성과들이 재평가된다. 결국 전무의 실적과 성공의 경험은 '적정선을 벗어난 무모함'으로 귀결된다. 전무는 부사장 승진을 눈앞에서 놓치고 좌천된다. 비상장 마이너계열사 발령지를 받아 든 전무는 허탈한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결과로 보여주려 했는데..."




"에이~ 만화니까 가능한 얘기지. 한낱 차장이 전무에게 다이렉트로 업무 보고를 한다고?"

라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직장인 판타지'라는 비아냥도 어느 정도 수긍은 한다. 안다. 쉽지는 않은 일이란 것을. 그래도 뒷맛은 쓰다. 스타트업 기업을 중심으로 수평적 문화, 쌍방향 소통이라는 구호가 난무한 지 오래지만 여전히 대다수를 차지하는 레거시 기업에서 전무급 임원과 실무자의 직접 소통은 현실성 없는 만화 같은 이야기일 테니.


좋다. 층층시하 위계가 분명한 조직분위기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고, 일반 구성원 입장에서 하늘 같아 보이는 임원들은 무결점의 존재들일까? 그럴 리가 없잖은가? 회사라는 경계를 벗어나보면 그들도 평범한 중장년의 인간일 뿐이다. 그들은 과거의 행적(실력이든 운이든)으로 그 자리에 올라있지만 그 자리 자체가 그 사람의 완벽함(실력이든 운이든)을 증명해 주는 건 아니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 그리고 내일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달고 사람치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과거의 궤적에 도취되어 있다면, 쓴소리 해줄 사람없는 예스맨에만 둘러 싸여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면, 언젠가 반드시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고 만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Wisdom)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이 있다. 흔히 누군가의 좁은 식견을 탓할 때 쓰는 유명한 속담인 걸 누구나 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의미를 더 짚고자 한다. 우물 안에만 있는 것도 문제지만, 개구리인 상태 그대로 머무는 것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말이다. 생각해 보자. 개구리가 아무런 준비 없이 개구리인 그 상태로 우물을 떠나면 어떻게 될까? 뜨거운 태양아래 말라죽거나, 포식자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뿐이다. 우물은 시야를 제한하고 행동을 좁히는 족쇄이기도 하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도 생존을 보장해 주는 안전지대이기도 하니까.


시비지심은 나를 가두고 시야를 좁게 만드는 세상을 탈출해 더 넓은 곳을 보고 경험하게 만드는 덕목이다. 많이 보고 겪어야 옳고 그름을 알아보는 지혜가 생긴다. 타고난 감각이나 재능이 아니다. 어쩌면 새하얀 도화지 같은 백지위에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점검되고, 수정되는 기능에 가깝다. 그래서 시비지심의 출발점은 언제나 배움이다. 더 많이 아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판단의 기준을 더 풍부하게 갖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선명하고 뾰족한 나만어 내적 기준을 세우는 일. 그렇다고 영원불멸의 절대원칙이리는 말도 아니다. 날카로운 기준은 갖고 있되 언제든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일 양면을 준비하는 일. 시비지심은 줏대 없는 유연함도 아니고, 줏대만 남은 고집도 아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 선택의 맥락은 무엇이었는지,
지금 보고 있는 현상이 전부인지, 일부인지. 시비지심의 리더는 답보다 질문이 많아야 한다. 질문이 많다는 것은 망설인다는 뜻이 아니라, 섣불리 판단하지 않겠다는 의지에 가깝다.


회사라는 안전지대에 머물며 스스로를 개구리인 상태에 못 박아놓고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멈춘 이들, '라떼는 말이야~' 타령이나 하며 과거의 화려한 시절을 들먹이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이들을 리더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냥 개구리에서 적어도 우물 벗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는 슈퍼개구리 정도는 되어야 하는 일이다.


해봐서 아는데 라고 하지 말라(Revision)

아무리 승승장구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모든 것이 완벽한 신은 아니다. 어제까지의 정답이 오늘, 내일의 정답일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자라도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자기인식, 겸손을 잃는 순간 위태로워진다. 자기 자신만 좌천되고 마는 게 아니라 조직전체가 휘청거린다.


그렇다고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우물쭈물 우유부단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판단에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김 부장의 별명은 [문턱주의자]다.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좌고우면 한다. 데이터, 숫자, 주변 사람들의 의견까지 모든 관련 사항을 검토하며 고심하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린다. 이 결단은 무모함이 아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자신감, 정확히 말하면 그 결과의 해석과 후속 행동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다. 잘되면 운으로 돌리지 않고, 잘못되면 변명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그 이후다. 결과가 판단과 배치된다면, 그 즉시 인정하고 자기 판단을 고친다. 후회가 아니라 행동 교정의 근거로 작용한다. 그래야 실패가 다음 성공을 위한 자산이 된다. 리더의 지혜는 그렇게 쌓인다. 리더의 열린 마음이란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자기 판단을 언제든 가설로 되돌릴 수 있는 여백이다.


지혜로운 리더는 자신의 경험을 최종 근거로 삼지 않는다. “해봤다”는 말로 결론을 닫지 않고, 언제든 다시 열어둘 여지를 남긴다. 시비지심이란 결국, 내가 옳을 가능성만큼이나 내가 틀릴 가능성도 동시에 인정하는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가 무너지는 순간, 지혜는 가장 먼저 사라진다.


옳지 않은 과정(非)으로 만들어진 결과는 우연히 좋은 성과로 이어졌더라도 결국 모래성처럼 무너진다는 사실을 아는 마음, 그것이야 말로 리더의 시비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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