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헌신하면, 정말 헌신짝 될까?

Ⅲ.사양지심_ Sacrifice_3. 자기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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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당대 최고의 기사 조훈현 9단은 9살의 이창호를 자신의 집으로 들인다. 일본의 전통 방식인 '내제자' 시스템으로, 스승과 제자가 한집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 방식. 당시 조훈현의 아내는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한창 예민한 승부사의 집에 어린아이를 들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조훈현은 "바둑계의 대를 이을 재목을 키우는 것이 나의 의무"라며 강행한다. 조훈현과 이창호는 무려 7년간이나 한솥밥을 먹었다. 조훈현은 직접적인 바둑을 가르치기보다, 이창호가 스승의 대국을 복기하고 어깨너머로 배우도록 했다.


1990년, 제자 이창호가 무섭게 성장하여 스승 조훈현의 타이틀을 하나둘씩 빼앗기 시작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제자에게 최고 타이틀인 '국수(國手)' 마저 내주었을 때다. 7년간 자식처럼 키운 제자의 칼끝이 자신을 향했고, 조훈현은 그 칼을 맞고 무너졌다. 언론은 '조훈현이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며 떠들썩했다. 조훈현은 대국 후 복기까지 마친 뒤, 미디어 앞에서는 담담했지만 방에 들어가서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곧 마음을 고쳐 먹는다. 훗날 조훈현은 이렇게 회고했다. "오직 이창호였기에 내가 졌다는 사실이 덜 아팠다. 내 모든 것을 배워 나를 넘어선 제자가 대견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가르친 제자가 나를 넘어설 때 그 기분은 어떨까? 조훈현의 (솔직한, 어쩌면 숨기고 싶었을 수도 있는) 회고처럼 자신의 시대는 끝났다는 자괴감, 내가 직접 가르친 제자가 나를 넘어섰다는 뿌듯함이 공존할 것이다.


직장인들에게 일터에서 조훈현, 이창호 같은 어떤 분야의 대가가 될 일은 글쎄 거의 없겠지만, 적어도 '저 사람은 내가 닮고 싶은 리더야'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분명 있다. 리더의 눈으로도 '쟤는 재능도 있고 태도도 좋고 내가 한번 키워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팔로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리더와 팔로워가 서로를 이끌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하고 마침내 그 리더를 넘어선 더 나은 리더가 끊임없이 양성되는, 그런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조직이 있다면? 그것 참 다닐만한 회사이지 않겠는가?




리더십의 대가 존 맥스웰(John C. Maxwell)은 리더십 단계 중 '피나클(Pinnacle, 정점)'을 마지막 5단계로 정의하며, "나를 넘어설 리더, 혹은 내가 없어도 조직을 더 위대하게 만들 리더를 남기는 것"이야말로 리더십의 종착지라고 했다.


그는

"Success is measured not by what you accumulate, but by what you leave behind.(성공은 당신이 무엇을 축적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겼느냐로 측정된다)"

라고도 했는데, 이는 리더십의 완성이 개인의 성취로 머무는 게 아니라, 자신은 물론 주변인을 돌보고 가꾸는(Nurturing) 과정 속에서 모두의 성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데 그 본질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회사들 역시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 모양이다. 많은 회사에서 차기 팀장으로 키울 핵심 인재, Successor 제도를 도입해서 운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역 직장인일 때, 다양한 회사의 Succssesor 제도를 심도 있게 들여다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관찰한 몇 회사의 Successor 제도들은 무언가 변질된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Successor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한 정의도 없이 그저 스펙, 사내 정치, 임명권자의 호불호에 의해 그 후보자가 결정되고 양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정 롤모델도 없이 획일적으로 직무전문지식과 리더십 항목등을 가르치고 특별 관리대상으로 묶어 평가와 승진에 혜택을 주는 정도 말이다.


오늘날 회사들이 자신만의 리더십 개발과 연속성 유지에 실패하고 그저 '사바사'로 치부되는 가장 큰 이유는 회사 차원의 방향을 상실한 흉내내기 Successor 제도와 리더 개인의 내 리더십에 대한 본질, 문제의식의 부재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리더십이 우리에게 필요한지 명확히 정의부터 하라

리더십은 어려운 문제다. 리더가 100명이면 100개의 리더십이 있다는 말처럼 개인별 특성, 스타일에 따른 리더십의 유형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조직에 소속되어 특정 위치에서 발휘하는 리더십은 그 환경적 영향으로 일괄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세부로 들어가면 리더 개인의 성격, 태도, 역량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부바부, 케바케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이를 개선하려면 다음의 세 단계 리더십 정의를 거쳐야 한다.


조직은 먼저 전체를 관통하는 리더십의 Core를 정의해야 한다. 쉽게 흔들리거나 변질되지 않는 기준점이다. 그다음 각 사업부별로 요구되는 Active 리더십을 명확히 하고, 이를 조직 구성원 전체에 공유하며 의도적으로 '형성'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리더십은 리더 개인의 색깔과 개성의 문제다. 앞선 두 단계의 리더십이 정립되었다는 전제하에 개인의 특성을 살린 리더십은 자유롭게 내버려 둬도 무방하다. 세 층위가 균형 있게 축적될 때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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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스스로 자신의 리더십 유형을 파악하고, 강점은 강화하고 약점은 보완해 가며 자신만의 리더십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막연한 감, 느낌 적인 느낌으로 스스로의 리더십을 두루뭉술 정의해서는 안된다. 내 리더십 유형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강점과 약점을 구분해 강점은 강화하고 약점은 보완하는 방식으로 리더십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다. 다만 '내 리더십은 대체 뭐지?'라는 본질에 대한 질문과 내적 성찰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그 과정이 결국 내 리더십을 성장시킨다. 나만의 리더십 모양이 명확해질 때 팔로워들의 입장에서 어떤 리더십을 따르고 싶은지, 내 롤모델로 하고 싶은지 알아보고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조훈현이 어린 이창호의 떡잎을 알아보고 자신의 집에 들여 가르쳤듯, 인재는 인재를 알아본다. 먼저 스스로 누군가에게 강력한,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람인지 그런 뾰족하고 명확한 리더십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그런 사람이 되면 같은 부류를 알아보는 눈이 저절로 생긴다.



헌신짝 돼도 좋다는 마음으로 헌신하라

내가 가진 노하우를 대가 없이 전수하면 내가 가진 영향력이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두 배 세배 증폭되어 긍정적으로 커져나간다. 오리지널리티, Authenticity는 침범당할 수 없다. 모든 걸 다 내주고 새로운 것을 또 만들면 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끝은 무형의 가치만 남았지만, 아낌없이 주는 리더의 끝은 유형과 무형을 모두 잡는다.


나와 같은 생각, 리더십 유형을 가진 또 다른 이들이 나의 메시지와 철학, 가치관을 퍼뜨려 주는 일이다. 강제로 이끌고 당근과 채찍을 휘둘러 따르게 하는 게 아니라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머리를 돌리듯 스스로 그런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 일이다.


나와 닮은 누군가를 딱 정하고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다 쏟아붓는다는 부모의 마음으로 너처링 하라. 그리하여 나와 닮은 또 다른 리더를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리더십의 궁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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