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김 상무는 왜 임원 승진 후 고인물이 됐을까?

Ⅳ.시비지심_ Wisdom_1. 성장형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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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덴마크의 조립형 장난감 회사 레고LEGO는 프로그래밍으로 작동하는 로봇 키트 ‘레고 마인드스톰(Mindstorms)’을 출시했다. 사용자는 RCX라 불리는 컨트롤러를 통해 로봇을 제어했으며, 프로그래밍은 레고가 제공한 공식 소프트웨어로만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그런데 출시 며칠 만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다. RCX가 해킹된 것이다. 해커들은 레고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마인드스톰을 개조했고, 그 방법과 결과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했다. 이는 레고의 통제를 벗어난 행위로, 저작권 및 라이선스 침해 소지가 분명한 사안이었다.


레고는 즉각 대처방안을 검토했지만, 해커들에 대한 제재나 법적 대응 대신 대화를 먼저 선택했다. 그리고 이어진 놀라운 결정, 마인드스톰의 일부 소스를 공개하며 외부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확장할 수 있는 방향, 즉 오픈소스로 정책을 전환한 것이다.


이 결정은 오히려 신의 한 수가 됐다. 교육기관과 개발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마인드스톰은 빠르게 자리 잡는다. 사용자들은 레고가 제공하지 않았던 기능을 직접 구현했고, 마인드스톰은 단순한 장난감을 넘어 교육용 로봇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후 레고는 차세대 마인드스톰 제품을 설계할 때부터 외부 확장을 전제로 한 구조를 채택하게 된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레고의 경영진은 자사의 핵심기술 유출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뒤집어 집단 지성이라는 더 나은 가치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금이야 빅테크, IT기업들의 오픈소스가 낯설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당사의 핵심 기술을 대중에게 오픈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화끈하게 오픈소스로 설계엔진을 공개하고 관심 있는 모두에게 참여의 기회를 열어준 발상의 전환, 가진 것을 지키기에 급급한 고정형 마인드였다면 결코 쉽지 않을 결정이었을 것이다.


경험상 대부분의 기업은 자기들이 고객보다 똑똑하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고객이 자신들의 의도와 다르게 제품을 쓰면 '오용'이라며 가르치려 든다. 레고의 경영진과 법무팀도 처음엔 그랬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적 권위'가 침해당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진정한 지혜는 '나 보다, 네가 더 훌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는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더 나은 길이 있다면 배우고자 하는 성장형 마인드에서 기인한다. 레고는 '우리가 맞지만, 너희도 맞을 수 있다'를 인정하면서 상상하지 못했던 큰 성공을 손에 넣은 셈이다.




레고뿐 아니라 거의 모든 기업들이 크고 작은 위기를 겪는다. 레고의 사례가 위대한 결정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예상치 못한 결과도 결과지만 대개의 경우 비슷한 상황에서 안정, 지킴, 수구의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손쉬운'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책임보다 권한을 누리는데 익숙한 리더들이 많은 기업 환경이라면 뻔하다.


현역 시절, 내가 만난 임원, 리더들은 거의 대부분 누리는 권한 대비 책임을 지는 문제에 있어 과감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대개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올라선 높이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라고 리더에게 현재의 직위는 지난 성공의 훈장이지만, 동시에 그 성공 방정식에만 매몰되게 만드는 독이 든 성배가 되기도 한다.


교만에 빠진 리더는 자신만의 안전지대(Safety zone)에 안주하면서 스스로 성장의 끈을 놓아버린다. 이제껏 누려보지 못한 권위의 힘에 취해 스스로를 흠결 하나 없는 완벽한 리더로 착각하기도 한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보이는 건 그보다 더 높은 사람, 인사권자뿐이다. 그 앞에 몸을 낮추고, 혹여 작은 실수, 실패로 그 눈밖에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자연히 과감한 도전은 금물이다. 그 과정에서 실패하고 깨지고 부서지며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인사이트를 기다려줄 인내심도 이젠 없다. 바닥 밑까지 내려가 더 많은 기회를 살필 긴 호흡은 포기한 지 오래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겪어본 리더들의 전형적인 프로파일이었다.


배움이란 것이 통제 밖에서 새로운 기회의 충돌과 함께 가장 활발이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발을 땅에 붙이고도 하늘을 보는 '사회적 거인'은커녕 눈앞의 장벽도 제 손으로 넘지 못하는 '사회적 난쟁이'로 퇴화하는 건 시간문제다.


이런 사람들이 리더로, 임원으로 있는 조직의 미래란 뻔하다.




고이면 썩는다

이들을 보며 배운 게 있다면,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결코 지혜로운 리더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어떤 자리에 올라도 결코 배움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었다. 스스로의 성장을 돌아보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이대로 괜찮다는 자기만족에 멈춘다면, 한계는 명확해진다. '인간은 불완전하다'라는 절대진리,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에 이를 수 없다는 명제를 잊는 순간, 인간은 자만에 빠지고 만다.


이때쯤이면 사람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가 가진 자리가 가진 권위에 몰려드는 불나방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은 리더의 눈과 귀를 가리고 '내 귀에 캔디' 달디단 감언이설만을 늘어놓는다. 인간의 본능이라는 게 진실을 담은 쓴소리보다 거짓이 반쯤 섞인 단소리에 끌리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이들을 경계하고 가려들으려 해도 주변이 온통 이런 이들로 가득 차면 결국 객관성을 잃게 된다. '나 정도면 됐지 뭘 더해'라는 스스로의 안일함, 자만까지 더해지면 반드시 '교만'이라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저 사람 상무 되기 전에는 안 그랬는데 왜 저렇게 변했어?"라는 말을 듣는 이유.


안테나를 세우면 보이는 것들

내 분야가 생기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욕구까지 더해졌다면, 더 배우고 싶어진다. 심리학 용어로 ‘바더-마인호프 현상’. 내 필드가 명확해지면 세상의 모든 정보가 그 분야를 중심으로 수집된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의 눈에 군복 입은 군인들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안전지대에 안주하는 일이야말로 스스로 세운 안테나를 억지로 뽑아버리는 일과 다름없다.


'분야'라는 안테나를 높게 세울수록 이전의 고인 것들이 흘러내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 빈자리에 더해질 새롭고 전문적인 정보와 지식의 보고가 활짝 열리는 순간, 금과옥조인 줄 알았던 이전의 생각, 가치관, 정답들이 모두 쓰레기로 보인다. 미련 없이 과감히 버릴 수 있게 된다.


배움에 조건과 형태가 있을 수 없다. 나 역시 내 분야(조직문화)를 일치감치 정하고 보니 무얼 더 배우고 익혀야 할지 조금 더 명확해졌다.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학습의 도구, 재료로 보이기 시작하는 마법. 책과 강연뿐 아니라 TV에서 흘러나오는 예능, 하다못해 어린 시절부터 즐겨봤던 만화까지 배우지 못할 것, 곳, 형태가 없었다. 길을 걸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아~이거 여기에 맞겠는데? 라는 순간이 선물처럼 찾아온다.


리더의 지혜란 '내가 모든 것을 안다'는 자만심 보다 '혹시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자문하는 겸손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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