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시비지심_ Wisdom_2. 비판적사고
“이걸요? 제가요? 왜요?” MZ를 넘어 알파 세대까지, 요즘 직장인들이 일을 받을 때 되묻는다는 이른바 ‘3요’ 현상.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시키는 일이나 제대로 해!”라는 일방향적 지시가 기본값이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사실 직장의 일하는 문화가 본질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3년에 걸친 팬데믹과 AI의 등장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면서부터다.
이전에 상상하기 힘들었던 완전 재택근무 경험이 일반화되고, AI, 로봇 등 기술혁신이 폭발하듯 일상에 적용되면서, ‘어? 이렇게도 일이 되네?’ ‘아, 감시하는 꼰대가 없으니까 오히려 일이 잘되네?’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정답이라고 믿었던 이전의 고정관념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질문의 화살은 본질로 향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일하는가?’, ‘이 일이 나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 인간이 시스템의 부품이 아닌, 주체적 존재로서 ‘가치 노동’을 탐색하기 시작하면서 ‘3요’는 단순히 반항의 언어가 아닌, 인간 중심의 일터를 향한 지극히 당연한 요구로 자리 잡았다.
4050 직장인들에게 이런 변화는 낯설고 충격적이다. 그저 주어진 일을 근면 성실하게 완수하는 것이 ‘일잘러’의 척도였던 세대에게, 매번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은 피곤한 장벽처럼 느껴질 터다. 소위 '눈치껏'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는 고맥락(High-context) 문화에 익숙했던 이들에게, '3요'는 기존질서를 파괴하는 불손한 주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각종 갑질과 불법, 탈법을 자행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그게 사회’, ‘그게 회사’라며 애써 외면하고 체념을 강요했던 그들은 그 세상이 영원할 줄 알았을 것이다.
눈치껏,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그럭저럭 운영되던 고맥락 기업문화는 주기적으로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주로 혹사에 따른 사망사고와 약자를 대상으로 한 갑질문제 등이 단골소재다. 얼마전 직원 사망 사건으로 이슈가 됐던 L베이글 부터, 대리점 갑질과 창업자 손녀의 일탈로 찍힌 N유업, 잊을만하면 터지는 산업재해로 나쁜 기업의 대명사로 찍힌 S베이커리의 사례가 그러하다.
대마불사. 한번 시장에 안착한 대규모 기업집단은 결코 죽지 않는다던 양적 성장 시대의 믿음 역시 이제는 옛말이 됐다. 시장은, 고객은 ‘나쁜 회사’, ‘갑질러’로 한번 낙인 찍히면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발적 불매운동이 이어지고 결국 도태되어 경쟁회사에 밀리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는 기업의 내외부를 막론하고 '이래도 돼?'라는 자정작용과 되물음이 필요없는 '비인간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직 내 부조리와 불합리를 지적하는 내부고발자를 오히려 배신자 취급하는 관행은 여전하지만,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일에 과감히 ‘No’라고 말 할줄 아는 강한 개인의 등장과 확산은 '일'과 '자아'라는 본질에 닿고자 하는 지극히 원초적이면서도 건강한 움직임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3요의 확산은 단순히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비인간적 행위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극히 수동적이면서 방어적인 당연함을 넘어, [파타고니아]처럼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성장만이 새로운 시대의 유일한 가치임을 에둘러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초코파이가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가삿말을 가진 CM송이 있었다. 精으로 유명한 초코파이의 광고. 분명한 건, 우리는 초코파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말하지 않는데 알 수 없다. 특히 일터에서 상사의 지시는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대충 어림짐작으로 일했다가 디테일에 발목잡히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젊은 직장인 뿐 아니라 나이 지긋한 리더들이라도 이걸요? 제가요? 왜요? 3요를 달고 살아야 하는 이유다.
연차가 몇갠데 일일이 다 설명해야 해? 척하면 척이지. 이렇게 말하는 리더가 있다면 경계하고 무시하라. 몇년을 하건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목적을 알 수 없는 일에, 내 일이 아닌 부당한 업무지시에, 명백히 선을 넘는 불순한 명령에 언제든 '이걸요? 제가요? 왜요?' 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리더 역시, 부하직원의 3요에 거리낌 없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은 없다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어린 장그래는 스승에게 바둑을 배우고 있다.
"왜 그 수를 거기에 뒀는지 설명해봐."
"그..그냥요."
"바둑에 그냥이란 건 없어. 어떤 수를 둘때는 그 수로 무엇을 하겠다라는 생각이나 계획이 있어야 해. 그걸 의도라고 하지."
어디 바둑 뿐이겠는가? 우리의 일에는 뭘 하든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선 이기든 지든 배울 게 없다. 3요의 본질은 납득 가능성이다. 그래서 리더는 ‘명분(왜 하는가)·맥락(왜 너에게 맡기는가)·본질(무엇이 달라지는가)’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직원은 질문할 권리를 가져야 하고, 조직은 그 질문에 답할 역량을 길러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될 때 비로소 ‘일’은 지속가능한 가치가 된다.